대가에게서 배우는 매혹적 화법의 비밀
이금희 아나운서가 사회를 보는 음악회에 간 적이 있습니다.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접하긴 했지만 그의 진행을 바로 앞에서 본 건 처음이었어요. 12월 초였는데 긴 원피스를 입고 등장한 이금희 씨는 청중에게 특유의 인자한 표정으로 말을 걸더군요. 기억에만 의존한 멘트여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적인 내용은 이러했습니다.
12월은 ‘쿵’과 ‘붕’이 번갈아 일어나는 달 같아요. 벌써 한 해가 이렇게 가는구나 싶어서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가, 거리에 가득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보거나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으면 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붕 뜨곤 하죠. 쿵 그리고…… 부웅, 여러분의 마음은 요즘 어떠신가요?”
쿠우웅, 이라고 발음할 때 그는 눈썹을 들어올……렸다가 천천히 내리면서 조금은 슬픈 목소리로 여운을 남겼고 부우웅, 이라고 말할 때 그는 한층 경쾌하게 발음하며 미소 지었습니다. 강조하고 싶은 표현이 있으면 의도적으로 삼 초 정도를 멈추고 좌중을 바라보며 뜸을 들였고요.
마치 악기 연주를 하듯 말의 높낮이를 리드미컬하게 조절하는 모습을 보며 저는 연신 박수를 쳤습니다. ‘좋아하는 연예인에게 조련당한다’는 표현이 이런 거구나 싶더군요.
아나운서이니만큼 계속 듣고 싶을 정도로 목소리와 발성이 편안한 건 물론이고, 쉬우면서 공감되는 표현으로 사람들에게 안부를 묻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연세 많은 어른들이 〈아침마당〉을 가리켜 왜 ‘이금희 방송’이라고 부르곤 했는지 그 이유를 실감했습니다.
이금희 아나운서의 말에 반한 후 그가 진행하는 음악회에 연달아 세 번을 더 갔죠. 음악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이면 그가 했던 말을 소리 내 따라 해보곤 했습니다. 말과 말 사이의 자연스러운 미소와 끄덕임, ‘그렇지요?’ ‘그런가요?’ ‘그러셨군요’ 같이 상대의 호응을 부드럽게 끌어내는 끝맺음을 배우고 싶었거든요.
‘저이처럼 말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사람을 만난 게 오랜만이라, 과거 말솜씨와 말 센스에 반해서 그 비결을 궁금해했던 어른들을 떠올려보았습니다.
선망의 시작은 유시민 작가였어요. 유시민 작가는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마친 뒤 2008년 제가 다니던 대학에서 삼 학점짜리 교양수업인 〈생활과 경제〉 강의를 개설했습니다. 경쟁률이 너무나 치열한 나머지 수강 신청에 실패해 청강을 했죠. 처음 그의 수업을 들었을 때 준비한 대본을 외워서 하는 게 아닌가 의심했습니다.
보통 말이란 생략이 들어가기도 하고 어미가 흐려지기도 하고 어순이 틀리기도 하잖아요? 현장에서 즉시 생각나는 바를 말하다보면 글처럼 논리적으로 매끄럽게 이어지기가 어려우니까요.
하지만 그의 말은 그대로 타이핑해서 읽더라도 크게 고칠 곳이 없는 상태처럼 들렸습니다. 논리는 탄탄했고 문장과 문장의 연결은 매끄러웠으며 모호하게 퉁치는 부분이나 설명 없이 건너뛰는 부분을 찾을 수가 없었죠.
강의뿐 아니라 어떤 자리에서든 마찬가지였습니다. 예를 들어,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한국 사회의 불평등에 대해 유시민 작가가 다른 패널들과 토론한 적이 있었습니다. 함께 출연한 교수가 이렇게 포문을 열었죠.
“어떻게 보면 지금 한국 사회는 돈이고, 권력이고…… 그것을 나쁘다고 하는 게 아니라 돈과 권력을 최고의 가치로 만든 사회적 구조와 그 바운더리 밖에 하나 더 큰 구조를 봐야 하는 게 아닌가. 제가 독일에 있을 때는 가난해도 부자인 사람들과 비슷한 삶의 수준을 가질 수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은 잘사는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한…… 그 어느 나라보다 잘살아요. 정말 좋아요. 그런데 가진 게 없는 사회적 약자들에게는 너무 살기 힘들어요. 제도, 사회의 문제인 것 같아요.”
이 말을 들은 유시민 작가는 곧바로 화답합니다.
나는 모든 문제를 사회구조 탓으로 돌리는 데 동의 안 해요. ‘일체유심조’, 불가에서 하는 얘긴데,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내는 거다, 동의 안 해요. 사회 시스템이 잘못됐다고만 생각하면 내가 뭘 어떻게 하더라도 벗어나지를 못해요. 일체유심조를 믿어버리면 아무렇게나 해도 상관이 없어. 진실은 그 중간 어디에 있어. 우리가 서로를 덜 괴롭히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한 노력도 해야 되고, 동시에 그건 굉장히 오래 걸리는 일이기 때문에 정신적인 해법을 강구해야 돼. 일체유심조를 반쯤 받아야 된다고 봐요.”
유시민 작가가 말하는 내용을 뭐든 타이핑해본 뒤 읽으면 알게 됩니다. 마치 글을 쓰듯 머릿속에서 퇴고를 거치고 말하는가 싶을 만큼 논리가 정연하다는 사실을요.
그러니 처음 그의 강의를 들었을 때 대본을 읽는 건가 의심할 수밖에 없었죠. 무엇보다 경제학 수업을 처음 들어보는 제 입장에서도 그의 말이 대부분 이해될 만큼 쉽게 풀어 설명해서 놀랐습니다.
그 비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첫번째는 역시 방대한 독서량 덕일 것이고, 두번째는 그가 여러 곳에서 강조했듯 사람들에게 쉽게 설명하겠다는 의지가 있기 때문일 것이고, 추측건대 세번째는 본질을 꿰뚫어보기 때문일 겁니다.
유시민 작가가 방송에 나와 토론하는 모습을 보면 상대가 어떤 의도로 그 말을 하는지를 빠르게 분석해서 답변을 내놓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진짜 이유를, 맥락을 찾아낸 뒤 자신이 이해한 바를 선명한 문장으로 표현해낸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일례로 가상화폐 붐이 일었을 때 그는 비트코인을 집으로, 블록체인은 건축술에 비유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죠.
어떤 주장을 펴고자 할 때 탄탄한 근거를 준비하는 건 물론이고 상대가 펼치는 논리의 의도도 간파해야 함을 그에게 배웠어요. 우선은 그처럼 짧게 말하는 연습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글쓰기를 안내하는 책들을 보면 대부분 처음에는 단문을 쓰는 연습부터 하라고 하는데, 짧게 끝내는 연습은 말에서도 중요한 것 같아요.
김영하 작가의 경우엔 감탄의 포인트가 달랐습니다. 저는 고교 시절부터 그의 소설과 산문을 읽어왔습니다. 특히 『검은 꽃』을 읽으며 펑펑 울던 제주도에서의 한낮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언젠가 그가 티브이에 나와 하는 말을 듣고 어떻게 글도 잘 쓰면서 말도 잘하나 신기했습니다.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저 역시 강의를 하러 가서 “작가인데 말을 잘하시네요” 같은 말을 종종 듣는 걸 보면 글쓰는 사람이 말을 잘하는 일이 당연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그렇다면 김영하 작가의 말하기는 왜 매력적일까요? 왜 그의 화법은 위트가 있고 신선할까요?
김영하 작가는 반전의 대가입니다. 의도적으로 다소 삐딱하게 말하는 방식을 선호하며, 질문을 받으면 사람들이 하고 있을 법한 예측과 반대로 답한 뒤 본론을 시작하곤 합니다. 예술가의 중요한 작업 요건 중 하나인 ‘다르게 보기’가 그에게는 생활이 아닐까 싶어요.
예를 들어 ‘읽을 책’을 구입한다고 생각하는 우리와 달리, 그는 ‘구매한 책’을 읽는 거라고 설명합니다.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성공한다’는 유의 숱한 메시지와는 달리,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살면 ‘큰일난다’고 하고요.
그는 상대의 질문을 받으면 그 말을 뒤집어 의외성에서 시작하는 말하기를 즐겨 하는데, 이 과정에 흥미를 위한 과장이 맛깔스럽게 섞입니다.
‘항상 매사에 최선을 다하기보다는 평소에 에너지를 좀 비축해놓는 게 좋죠’라고도 할 수 있는, 그랬다가는 뻔하디뻔해지는 말이 그를 거치면 ‘큰일난다’로 바뀌는 거죠.
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하나, 들어보려는 이들의 관심도를 최대한 끌어올린 후 김영하 작가는 조곤조곤 부연합니다.
또다른 예를 보죠. 관광지에 굳이 낙서를 남기는 심리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추억을 남기려고’ 같은 이유를 떠올리는 데 비해 김영하 작가는 ‘불안정’이라는 단어를 꺼내 반전을 선사합니다. 삶의 많은 부분이 불안정하다보니, 바위나 비석 같은 ‘안정돼 보이는 곳’에 낙서를 남긴다는 설명인데요.
역시나 바라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른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죠. 이처럼 우리가 흔히 짐작하거나 예측하기 어려운 반전의 힘이 청중의 집중력을 고도로 모아내는 겁니다.
자기만의 ‘큰바위얼굴’을 찾는 일
유시민 작가 같은 지적인 말하기에는 방대한 독서량이 필요하고, 김영하 작가 같은 반전의 말하기에는 창의력이 필요합니다. 비법을 안다 해도 따라 하기는 힘들죠. 오랫동안 수련을 거쳐 완성된 고수의 내공이니까요.
다만 그런 ‘큰바위얼굴’이 있으면 내가 어떤 식으로 말하고 싶은지 알게 되고, 지금 가장 필요한 연습법이 무엇인지 깨닫게 됩니다.
일상을 채우는 말들 중에서는 닮고 싶은 말을 찾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흥미로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스스로 그런 사람이 되기도 쉽지 않습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적극적인 수집이 필요한 거죠.
유시민 작가를 선망하던 시기에는 논리적으로 말하고 싶었고, 김영하 작가를 부러워하던 시기에는 흥미롭게 말하고 싶었고, 이금희 아나운서의 영상을 자주 보는 요즘은 힘을 빼고 편안하고 부드럽게 말하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닮고픈 선생의 책을 읽는 것도 좋지만 영상을 틀어놓고 자주 보고 들으면 특히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외국어를 공부할 때 드라마를 반복 시청하면 말할 때 나도 모르게 주인공 특유의 어투와 리듬이 튀어나오듯이 모국어도 그렇거든요. 간절할수록 미세하게나마 조금씩 닮게 될 겁니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브룩스는 인간이 AI보다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가치를 정리해 2023년 2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했는데요. 거기에는 이런 특성이 적혀 있었습니다.
“뚜렷한 개성을 지닌 개인의 목소리, 프레젠테이션하는 기술, 어린아이 같은 창의력, 특이한 세계관, 공감, 상황 인지……”
개성 있거나 창조적이거나 독특한 세계관이 느껴지거나 공감하는 말하기는 아무리 시대가 변해도 살아남을 겁니다. 아니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중요한 기술로 여겨지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심을 담아 고유의 목소리를 전달해서 공감을 얻어내는 능력이란 인간적 가치를 더욱 강화할 수 있는 핵심 자질이니까요. 그야말로 대체하기 힘든 인간다움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