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년 동안 매주 유튜브 촬영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제 촬영본 편집을 담당한 피디가 함께 식사를 하다가 이런 말을 했어요.
“편집하면서 보니까 자주 쓰시는 말이 있더라고요. ‘예를 들면’이라는 말이요. 알고 계셨어요?”
제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나’ ‘그렇다면’ 이런 말도 많이 쓰지 않아요?”
피디는 맞다면서 맞장구를 쳤지요.
한국어에는 다양한 접속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데, 그러나, 그래도, 그래서, 또는, 게다가, 따라서, 오히려, 비록, 그렇지만 등등. 이런 접속사는 앞뒤 문맥의 관계를 나타내면서 이야기를 부드럽게 이어주지요.
대화나 발표에서 접속사를 사용하면 듣는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강조의 효과까지 더해집니다.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주는 거죠.
청중과 소통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게 하기에 화자가 친절해 보이게도 하고, 말의 흐름을 논리적으로 만들어주기에 화자가 지적으로 보이게도 하지요.
저는 사람들 앞에서 길게 설명해야 할 때 의도적으로 접속사를 적극 활용합니다.
설명이 충분치 않다고 여길 땐 ‘예를 들면’, 반전의 효과를 주고 싶을 때는 ‘그런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과관계를 강조할 때는 ‘그렇기 때문에’, 마무리에서 강조하고 싶을 때 ‘하나만 더 덧붙이면’을 쓰는 식이죠.
이런 표현을 적재적소에 넣으면 다음에 무슨 말을 하려는지 청중이 예상하기 쉽게 도와주어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좋습니다.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탐사 보도 프로그램에서도 한 진행자가 ‘그런데 말입니다’라는 표현을 자주 썼습니다. 여기까지 시청했다면 대략 이런 이야기라고 짐작하고 있겠으나 지금부터 반전이 시작된다든지, 추가로 새로운 의혹이 발견되었다는 말을 하기 전에 사용했지요.
뒷이야기가 뭘지 궁금하게 하는 표현을 반복해 사용함으로써 사람들의 뇌리에 강렬히 남았기에 이 말이 유행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아나운서들이 뉴스에서 말하는 내용도 잘 들어보면 ‘말씀드린 것처럼’ ‘어찌됐든’ ‘한편’ 같은 표현을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접속사가 지닌 힘을 알고 있기에 말에서는 제대로 활용하려고 합니다만, 글을 쓸 때는 접속사를 최소한으로 씁니다.
특히 퇴고를 하다가 문단의 시작 문장에서 접속사를 발견하면 가능한 한 빼고 다시 쓰지요. 글쓰기 초보를 위한 책들을 읽어보면 공통적으로 나오는 조언 중 하나가 접속사와 부사를 줄이라는 것이에요. 문장과 문장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썼다면 삭제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가독성도 높아진다는 이유에서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글에서 접속사와 부사를 최대한 없애라’는 조언을 하는데, 심지어 스티븐 킹은 “지옥으로 향하는 길바닥은 부사로 포장되어 있다”라는 말을 남길 만큼 부사에 극도의 경계심을 보였습니다.
실제로 글쓰기 초보들의 잦은 실수 중 하나가 접속사와 부사를 과도하게 사용하는 겁니다. 초등학생이 일기를 쓴다면 아마 이런 식으로 글을 쓸 확률이 높을 거예요.
일요일에는 너무 심심했다. 그래서 집 앞 놀이터에 갔다. 갔더니 반 친구들이 있어 엄청 기분이 좋았다. 공놀이를 했는데 정말 재미있었다. 그런데 조금 뒤에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밀린 숙제를 해야 하니 집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너무 아쉬웠지만 친구들에게 다음에 또 놀자고 하고 집에 돌아갔다. 하지만 다음에는 더 길게 놀고 싶다.
글쓰기 수업에서 만나는 수강생들 중 평소에 글을 거의 써보지 않았다고 하는 분들의 글도 이와 비슷한 양상을 띠곤 합니다. 접속사, 부사가 많고 한 문단 안에서도 이야기가 메뚜기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곤 하지요. 여기서 접속사와 부사를 빼기만 해도 훨씬 깔끔한 글이 나옵니다.
일요일에는 심심했다. 집 앞 놀이터에 갔더니 반 친구들이 있어 기분이 좋았다. 공놀이를 했는데 재미있었다. 조금 뒤에 엄마에게 전화가 와서 밀린 숙제를 해야 하니 집에 들어오라고 하셨다. 아쉬웠지만 친구들에게 다음에 또 놀자고 하고 집에 돌아갔다. 다음에는 더 길게 놀고 싶다.
사유가 촘촘하게 이어지도록 글을 썼다면 접속사가 필요 없다는 것, ‘부사’로 감정이나 상태를 강조하는 대신 ‘묘사’로 보여주라는 것이 글쓰기 작법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침입니다.
반면 말하기에서는 “너무너무 좋아”처럼 부사를 많이 쓰면 감정이 풍부해 보일 수 있고, 접속사를 잘 활용하면 설득력 있게 다가갈 수 있지요. 저는 이 같은 차이가 말과 글이 각각 무엇을 지향하는지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공감과 배려 vs 논리와 정리
말하기에서는 공감과 배려가 최우선입니다. 듣는 사람이 어디까지 이해했을지, 오해할 만한 부분은 없을지 시시각각 체크하면서 길을 안내하듯 말하는 게 중요하지요. 중간중간 멈춰서 현재 와 있는 지점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짚어주기도 하고, 중요한 이야기는 반복하기도 해야 합니다. 종종 질문을 던져서 생각의 주도권을 넘길 필요도 있고요. 청중의 몰입을 위해서 특정 에피소드를 극적으로 단순화해야 할 때도 많습니다.
글쓰기에서는 공감과 배려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습니다. 논리와 정리인데요. 얼마나 논리정연하고(흐름이 매끄러운지) 정돈된 문장으로 쓰였는지가 중요합니다. 독자의 이해도에 맞춰 그때그때 표현을 수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럴 수 없기도 하지만요. 글을 어렵게 느끼는 독자가 있다면 재차 정독하면서 이해할 테니까요.
글을 쓸 땐 핵심 타깃을 설정해두긴 합니다만, 쌍방향으로 즉시 소통 하지는 않기에 작가가 믿는 바를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쉬운 표현만을 찾기보다 작가만의 색깔을 보여줄 수 있는 표현으로 가다듬는 게 필요하고요.
말을 하면서는 더욱 친절한 표현을 찾도록 애쓰고, 글을 쓰면서는 세심한 표현을 찾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느낍니다. 말하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도 결국 그 이야기를 글로 쓸 가능성이 크고, 글쓰는 일을 주로 하는 사람도 그 내용을 말로 전달할 일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아무리 최고의 강사라 하더라도 강의한 내용을 그대로 옮기기만 해서는 책이 될 수 없어요. 그 차이를 느끼며 연습해본다면 말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글쓸 때 좀더 유려해지고, 글을 전문으로 하는 사람은 말할 때 덜 지루해지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면 말은 좀더 감성의 영역에 가깝고, 글은 이성의 영역에 가까운 듯하기도 해요. 둘 중 하나가 유독 어렵게 느껴졌다면 이 차이를 참고하여 부족한 부분부터 연마해보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