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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Nov 21. 2021

글 쓰는 마음, 말하는 태도

말하기와 글쓰기의 결정적 차이




2018년에 낸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종합 베스트셀러가 되자 얼떨떨하면서도 두려워서 새벽마다 자고 깨고를 반복했습니다. 선잠이 계속되는 와중에 알아차렸죠. 그 어떤 행복에도 불순물은 끼어들기 마련이라는 것, 큰 기쁨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간절히 원하던 일이 이루어지더라도 내 몫이 아닌 듯 어색해한다는 사실을요. 


십만 부, 이십만 부, 삼십만 부…… 책의 판매량이 늘어날수록 겁이 났습니다. 자격이 없다는 비난을 받을까봐 두려웠습니다. 운이 좋았을 뿐임을 들킬까봐 무서웠죠. 


그건 자신이 이룬 바를 오직 운 덕분으로 돌리는 이들에게서 종종 나타나는 가면증후군의 전형적 증세이기도 했습니다. 언젠가 가면이 벗겨져 맨얼굴이 드러나고, 그게 사람들의 기대나 예상과는 너무 다른 모습이라 실망을 줄 거라는 염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는 조언을 자주 들었으나, 저는 어지러움을 느끼는 이곳이 바다인지 호수인지 우물인지조차 알 수 없었습니다.


도서관이나 서점의 소규모 행사가 아니고서는 대부분의 요청을 거절하고 있던 즈음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이하 〈세바시>) 팀 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책 내용과 관련해서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었는데, 당시 한국형 TED를 표방했던 <세바시>는 발표하는 영상 마다 높은 조회 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되고 있었습니다. 


자신이 없다고 거절 의사를 밝히자 담당자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어요. 책을 홍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니까 당연히 응하리라 예상해서 였겠지요.


며칠 후 당시 다니던 회사의 대표에게 호출이 왔습니다. 〈세바시〉 대표와 인연이 있는데 제가 무대에 서도록 설득해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면서, 본인 생각에도 한번 해보면 좋겠다는 이야기였죠. 대표님은 전부터 제게 새로운 프로젝트나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맡기면서 잘할 수 있을 거라 격려해주곤 했습니다. 


이처럼 믿어 주는 사람이 있으면 상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용기 내게 됩니다. 자리로 돌아온 저는 <세바시>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사실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그래도 한번 해보겠습니다.”


A4 용지 기준 네 장 정도를 쓰면 십오 분 내외로 말할 수 있는 분량이 나옵니다. 사전 면담에서 방송작가는 개인적 이야기에서 시작해 다 함께 생각해볼 수 있는 주제로 구조를 넓혀가며 강의안을 써보라고 조언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친근한 에피소드로 청중의 몰입을 돕고, 그후 본론으로 들어가라고도 했죠. 회사에서 카드뉴스를 많이 만들어봤기에 이 같은 스피치 구조를 짜는 방식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작성한 대본을 입으로 여러 번 소리 내 읽어보았습니다. 그렇다고 줄줄 외우지는 않았습니다. 직접 쓴 제 이야기니까 스스로 가장 잘 알고 있고, 설사 긴장해서 몇 가지 표현을 잊어버리더라도 전체적인 흐름에서 벗어나지만 않으면 되니까요. 


대본을 손에 들고 있으면 제스처가 제한되기도 하고, 자칫 대본에 지나치게 의존할 수 있으니 녹화 당일에 아무것도 챙기지 않았습니다. ‘나는 전문 강사가 아니고 작가야. 아무도 나한테 큰 기대를 하지 않을 거야. 좀 못해도 상관없잖아?’ 스스로를 다독이면서 불안한 마음을 달랬죠.


곧 무대에 올라갈 테니 준비하라고 신호를 보내는 피디를 보면서 퍼뜩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여기 와 있는 관객들은 대부분 제 얼굴을 처음 볼 테고, 그들이 알고 있는 정보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라는 책을 쓴 작가가 나온다는 정도라는 사실이었죠. 책 제목은 들어봤더라도 읽지는 않은 사람이 상당수일 터였습니다. 책 제목을 보고서 저자가 조금은 까칠한 성격이라고 예상하고 있을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차가운 이에게 마음을 열지 않는 법이죠. 어떻게 하면 청중이 품었을 선입견을 초반에 깬 뒤 제 이야기를 편안하게 듣도록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잠시 후 조명이 켜지자 저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한 뒤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정문정입니다. 생각보다 너무 예뻐서 놀라셨죠?” 


와하하, 청중 사이에서 웃음소리가 터져나왔습니다. 이 강의 영상은 현재까지 유튜브에서 이백만이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하고 있는데요. 영상이 공개된 이후 강의 요청이 쏟아지기도 했습니다. 이후 용기를 내어 삼백 명 이상을 대상으로 하는 대규모 강의도 진행 해봤고, 연예인을 청중으로 하는 강연 프로그램도 녹화해봤죠. 그러면서 말을 잘한다는 칭찬을 자주 듣게 되었는데, 전에는 거의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습니다.



 글과 말의 결정적 차이, ‘


그날 이후로 저는 일주일에 한 번 이상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주변 작가들에게 물어보면 강의를 좋아하고 즐기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작가들이 대부분 수줍음 많은 내향인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강의를 계속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작가로서의 태도와 강연자로서의 태도에는 큰 차이가 있음을요. 글쓰기와 말하기에는 각기 다른 에너지가 사용됩니다. 이를 알게 된 후 저는 강의가 있는 날에는 글을 쓰지 않습니다. 더불어 읽고 쓰는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한 달에 여덟 번 이상 강의 일정을 잡지 않지요.


예컨대 글쓰기의 중요한 태도 중 하나는 확신하지 않는 것입니다. 학술적인 목적의 글쓰기라면 다를 수 있겠지만요. 에세이 같은 글은 고민에 천착한 과정과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이해해보고자 노력한 흔적을 섬세하게 표현할수록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선언하듯 단호하게 쓰면 읽는 이가 부담스럽게 느낄 수 있죠. 꼭 결론을 낼 필요도 없습니다. 다르게 생각해볼 여지를 주면서 여운을 남기는 것도 괜찮아요. 작가는 하나하나 설명하거나 설득하는 사람이라기보다 독자에게 스스로 감상하고 사유하는 길을 알려주는 안내자에 가까우니까요.


반면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강의를 할 때는 주제의식이 명확해야 합니다. 청중들의 집중력은 그리 강하지 않아서 강사의 이야기를 더 들을지 말지가 초반 오 분 내로 결정이 납니다. 강사가 처음부터 호응도를 끌어올려서 기세를 몰고 가지 못하면 청중의 눈빛에 서려 있던 호기심과 호감이 금방 사그라들고 말지요. 말이 중심이 되는 세계에서는 화자와 청자 간에 일종의 기싸움이 팽팽하게 벌어지곤 하거든요.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기 생각을 말할 때는 기승전결이 분명한 연극을 준비한다고 상상하면 좋겠습니다. 앞부분에서 공감대를 이끌어내고, 중간에서 주제의식을 강조하여 설득하고, 마지막에는 지금까지 한 이야기를 정리하는 식의 전형적인 타임라인이 필요하지요.





그러니 강의 시작 전에는 스스로 강하고 중요한 사람이라고 마인드 트레이닝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글은 어떤 ‘척’에서 벗어나 야 쓸 수 있는데 말, 특히 강의를 할 때는 ‘척’의 오라를 뒤집어쓴 뒤에 연기하듯 눈빛과 손짓, 호흡과 발성을 조절해야 하죠.


글을 쓸 때 저는 계속 의심하고, 말을 할 때 저는 확신하고자 노력합니다. 이처럼 상반되는 장르를 병행할 때 만들어지는 나름의 개성이 있는 것 같습니다. 한 가지에 몰입해야만 전문가의 역량이 길러지는 건 아닐 테니까요. 물론 이건 제가 둘 중 한 가지에 압도적인 재능이 없으므로 하는 자기합리화이기도 합니다.


강의를 할 때 작가의 자아가 위에서 내려다보며 지금 좀 우스꽝스럽지 않으냐고 비웃는 경우가 있습니다. 글을 쓸 때는 강의할 때의 정서가 글에도 스며들어 논조가 강해지기도 하고요. 


그러나 말과 글을 병행하는 것에는 단점보다 장점이 더 많습니다. 말은 즉시성과 현장성이 있어 폭발적인 에너지가 발생하지만 금세 휘발됩니다. 반면 글로는 말이 닿지 못하는 심도 있는 논리를 차분히 세울 수 있죠. 또 페이스트리처럼 얇게 겹쳐진 감정의 결들을 다듬을 수 있고요. 말의 세계에선 더 무거워지고 싶고 글의 세계에선 좀더 가벼워져야 할 것 같은 기분을 매번 느끼니, 이중언어를 하듯 두 세계를 보다 폭넓게 조망할 수 있습니다.


또다른 차이도 있는데요. 말은 하면 할수록 확실히 느는데 글은 아무리 써도 느는 기분이 들지 않는다는 겁니다. 글쓰기는 어떻게 이럴 수 있나 놀랄 정도로 매번 꾸준하게 두렵고 괴롭습니다. 컴퓨터 앞에 앉는 걸 미루고 미루다가 ‘말하듯이 쓰자’ ‘쉽게 읽히도록 쓰자’ 하면서 나 자신을 다독여야만 간신히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흔들리는 대로, 칸막이가 정확히 나뉘지 않아 양념과 냄새가 조금씩 섞여버린 반찬통을 들고 걸어가고 있습니다. 어쩌다보니 글쓰는 것과 말하는 것 둘 다 직업이 되었는데, 글쓰기에서는 외로움을 즐기고 말하기에선 유대감을 즐기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최대한 오래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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