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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May 02. 2024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 프롤로그

우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전 입만 열면 멍청해지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하면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나요?”


“처음 보는 사람과 있으면 어색해서 아무 말이나 주절주절 내뱉고는 후회하는데, 그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요?” 


“화가 나거나 당황하면 아무 말도 못합니다. 뭐라고 받아쳐야 하나요?”


“예전엔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글이 안 써지는 건 물론이고 책 한 권을 끝까지 읽는 것도 버거워요. 이럴 땐 뭐부터 해야 하죠?”



저의 첫 책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베스트셀러가 되자 도서관, 대학교, 기업, 방송국 등에서 강의할 일이 많아졌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이면 청중은 주로 말하기나 글쓰기에 대해 질문했는데요. 그중 저를 가장 당황스럽게 한 질문이 있습니다.



작가님은 글도 잘 쓰시고 말도 잘하시는데 비결이 뭔가요?”



평소 말을 잘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 없었던 저는 이러한 칭찬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역시 작가님이라 말을 잘하시나봐요” 혹은 “작가님이 말도 잘하시는 게 신기하네요” 같은, 결론은 같지만 전제가 전혀 다른 칭찬을 건네곤 했지요.


여기에는 글을 자주 쓰거나 책을 많이 읽으면 자연히 말을 잘하게 된다는 믿음과, 말을 잘하는 것과 글을 잘 쓰는 건 다르다는 경험이 들어 있습니다. 이처럼 말과 글에 대한 사람들의 선입견이 다양하다못해 뒤죽박죽 섞여 있음을 체감하면서 글과 말에 대한 저의 오래된 경험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자기계발서는 대개 이런 메시지를 전합니다. 원래는 평범했거나, 평범한 사람들보다도 더 열악한 상황 속에 있었지만 각고의 노력 끝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으니 당신도 나처럼만 하면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다고요. 


다이어트 책은 저자의 비포/애프터 사진으로 시작하고, 투자서는 자기에게도 돈 때문에 허덕였던 때가 있었음을 고백하며 이야기의 물꼬를 트고, 루틴에 관한 책은 과거 저자 자신의 불규칙한 생활 습관을 강조하며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이 책을 쓰면서 그러한 문법을 따르지 않으려고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보았는데 결국 실패했습니다. 아무리 어릴 적 기억을 끄집어내봐도 저는 말을 잘한다는 칭찬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앞에 나서기를 즐기는 편도 아니었어요. 중학교 때부터 교내외에서 상을 받았으니, 글쓰기에는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요. 제가 기억하는 한 언제나 글이 말보다 훨씬 편했습니다.


오히려 말은 오랫동안 제게 공포와 불안의 대상이었습니다. 글은 천천히 생각하고 준비가 됐을 때 시작할 수 있고, 이해가 안 되는 글은 몇 번이고 다시 읽을 수도 있고,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할 때는 다른 책을 참고할 수 있었습니다. 


반면 말하기는 글쓰기와 완전히 반대였어요. 즉각 반응해야 하는 상황에서 저는 자주 긴장했고, 평소보다 실수가 잦아졌습니다. 그럴 때면 스스로를 자책하며 입을 꾹 닫았지요.


저는 오랫동안 ‘글쓰기는 노력 여하에 달려 있지만, 말솜씨는 타고나는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말하기를 잘하려면 우선 자신에게 유독 취약한 상황이나 관계부터 찾아내야 한다는 것을 좌충우돌 끝에 깨달았지요.


한자어를 봐도 대화對話란 상대와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 나눈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Dialogue인데, 어원상 고대 그리스어 dia(통과하다, 사이로)와 logos(말, 말씀)에서 왔습니다. 직역하면 ‘말을 통과하다’ ‘사이로 말하다’로, 말이란 서로를 통과해서 나간다는 뜻이죠. 이렇듯 말하기를 제대로 하려면 일상에서 어느 한쪽이 일방적이지 않게 이야기하는 연습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말하기를 곤혹스러워하는 사람들이 갈수록 늘어남을 체감합니다. 카페 옆자리에 가만히 귀 기울여보면 여럿이 둘러앉아 있지만 각자 자신의 이야기만 쏟아내는 ‘집단적 독백’의 전형적 예시를 접하고는 합니다. 젊은 세대 사이에선 전화공포증Call Phobia을 토로하는 비율이 급증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렇게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이유로 저는 ‘텍스트 위주의 소통 방식 확대’와 ‘의사 표현의 외주화’를 꼽고 싶습니다.


이제는 연애 초기의 커플조차 휴대폰이 뜨거워질 때까지 몇 시간이고 통화하지 않습니다. 직장 내 소통도 대부분 메신저나 메일 로 이루어지며, 앱에서 클릭 몇 번이면 배달 주문을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 시기 재택근무를 하던 직장인 중에는 “오늘 다른 사람과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 자주 오갔습니다. 그 어느 때보다 말을 적게 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거죠. 


대화란 일상에서 꾸준히 사용하며 갈고닦는 기술인데 이를 위한 절대적 시간이 부족하니 경험이 축적되지 않는 겁니다. 대화가 편안하지 않다보니 말에 과하게 힘이 들어가거나 같은 말실수를 반복하게 되지요.


메시지로 소통할 때조차 유행어와 이모티콘에 표현을 위탁할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함께 길을 걷던 친구가 활짝 핀 벚꽃을 보며 “우와. 너무 이쁘다. 짱짱!”이라고 말하더니 이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 더 좋은 표현을 쓰고 싶은데 생각이 안 난다며 울상을 짓더라고요. 


사랑한다고 말할 때는 하트가 그려진 이모티콘을, 화가 날 때는 머리 위에 불이 타오르는 이모티콘을 보내고, ‘확인했습니다’라는 말 대신 체크 표시를 누르는 데 익숙해지다보면 조금이라도 긴 글을 보내는 일조차 머쓱해집니다.


책을 내고, 강연을 하고, 자기 홍보를 해야 할 일이 늘어나면서부터 말을 잘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를 위해 노력 하는 과정에서 말하기와 관련해 믿고 있던 두 가지 원칙이 깨졌어요. 


‘솔직해야 한다’와 ‘아는 게 많으면 말을 잘한다’인데요. 솔직함을 핑계로 남에게 상처 주는 사람, 지나치게 어렵게 말하거나 우월감을 내세워 오히려 청중에게 외면당하는 사람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지요.


글쓰기에 대해서도 잘못 생각한 것이 있었습니다. 작가가 꿈이던 유년 시절엔 ‘특별한 경험이 많아야 글을 쓴다’거나 ‘불행한 사람이 글을 쓴다’고 믿었습니다. 술술 읽히는 글을 다소 낮추보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평범한 사람도 얼마든지 특별한 글을 쓸 수 있다고 믿고, 누구에게나 일 인분씩의 불행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하죠. 또, 어렵게 쓰기보다는 가독성 높은 글을 쓰고 싶어 제 글을 이리저리 고치고 또 고칩니다.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의 파란 띠지를 걷어내면...


고양이가 손톱으로 날을 세웠던 흔적이 나타납니다




어느 순간부터 작가로 활동하는 시간과 강연자로 활동하는 시간이 거의 비슷해졌습니다.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에 그러한 시간을 거쳐 제가 알게 된 말하기와 글쓰기 간의 차이를 썼고, 이 차이를 활용해 어떻게 하면 자기표현을 부드러우면서도 명확하게 할 수 있을지 정리했습니다. 


말하기 기술을 제대로 연마하면 좀더 따스한 글을 쓸 수 있고, 글쓰기 기술을 제대로 연마하면 논리가 촘촘한 말하기를 할 수 있습니다.


말을 제대로 하는 것도 어렵고, 글쓰기는커녕 책 읽기조차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말과 글을 제대로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앞으로 더욱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정확하게 말하려다 자꾸 뾰족해지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말하려다 메시지가 불분명해지는 사람에게, 말과 글이 재능의 영역이라고 치부해버리는 사람들에게 제 시행착오에서 얻은 깨달음을 나누고 싶습니다.


우리는 부드러우면서도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명확하면서도 날카롭지 않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정하지만 만만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신을 선명하고도 품위 있게 표현하고 싶은 분에게 이 책이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출간 기념 휘클리 북토크 (with 한겨레 권지담 기자)



출간 기념 YES24 북토크 (With 임현주 아나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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