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대본
안녕하세요.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대표작이고 최근 신작 <다정하지만 만만하지 않습니다>를 쓴 작가 정문정입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 앞에서 말도 잘 하고 글도 잘 쓰는 법을 알려드리려고 나왔습니다.
여러분 다들 말을 잘 하고 싶으시지요? 글을 잘 쓰고 싶으시지요? 제가 궁금한 게 있어요. 말을 잘 하면 글을 잘 쓸까요? 글을 잘 쓰면 말을 잘 할까요? 여러분도 이미 답을 알고 계시지요? 다들 아시다시피 그렇지가 않습니다. 말을 할 때 필요한 에너지와 글을 쓸 때 필요한 에너지가 완전히 다르거든요.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말할 때 필요한 에너지로 글을 쓰고, 글 쓸 때 필요한 에너지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완전히 반대로 하고 있는 것이죠.
저는 평범한 직장인으로 회사 생활을 10년간 했습니다. 회사 생활을 하면서 짬짬이 책을 썼고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지금은 전업 작가가 되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별명이 책벌레였을 정도로 책을 좋아했고 글쓰기로 상을 한 달에 하나 이상 받곤 했어요. 글쓰기는 상대적으로 편했지요.
반면, 말하기는 무서웠어요. 글쓰기는 천천히 생각해볼 수 있는데 말은 즉각적으로 반응을 해야 하잖아요. 제가 사회초년생일 때, 발표하는 게 너무 무서워서 선배에게 대신 좀 해달라고 한 적도 있고요. “넌 말을 너무 어렵게 해”란 핀잔을 받은 적도 있어요.
특히 회사 생활을 하면서 제대로 말하는 법을 연마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틈틈이 연습했지요. 특히 말 잘 하는 사람을 자주 관찰했어요. 그러면서 저는 말과 글의 큰 차이를 알아냈어요.
이금희 선생님 말씀하시는 걸 자세히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이금희 선생님은 지금의 계절적 특징과 상대의 안부를 결부시키며 말문을 열어요. 12월에 그 분이 말씀하시는 걸 바로 앞에서 들은 적 있는데 이렇게 이야기하시더라고요. “12월은 쿵과 붕이 동시에 그리고 연달아 일어나는 달 같아요. 벌써 이렇게 한 해가 갔구나 싶어서 마음이 쿵, 했다가 크리스마스 트리를 보면 또 어쩔 수 없이 마음이 붕- 하는 거죠. 여러분의 마음은 지금 어떠신가요?”
설민석 선생님이 강의하시는 걸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분은 항상 그날의 주제에 관한 질문으로 시작해요. “정조에 대해 얼마나 알고 계십니까?” “양귀비가 사실 뚱뚱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 또한 배우처럼 표정을 풍부하게 써서 연기하듯 말해요. 연기하듯 손짓도 굉장히 많이 쓰고요.
이처럼 말 잘 하는 사람을 관찰해보니 표정이 풍부한 건 물론이고 상대를 고려한 질문에서 시작하더군요. 상대가 지금 어떤 상태일거라 가정하고 시작하더군요. 말을 잘 하는 사람은 상대의 지금 상태가 어떨지, 상대가 어떤 게 궁금할지, 같은 말도 어떻게 하면 더 집중시킬지 고민해보는 사람입니다.
반면 말을 못하는 사람은 주변을 신경 쓰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하는 사람입니다. 단순히 잘 몰라서 말을 못 하는 게 아니에요. 예전에 주현영 씨가 snl 코리아에서 말을 못하는 ‘인턴기자’ 역할을 해서 화제가 된 적 있는데요. 그 인턴기자는 “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같이 부적절한 표현을 남발하고 눈빛 발성이 다 불안하고 어색하잖아요.
주현영 씨가 그 말 못하는 인턴 기자 역할을 위해서 누구를 참고했는지 아시나요? 주현영 씨 인터뷰를 찾아 보니 ‘대학토론배틀’의 참가자들을 참고했다고 합니다. 경직된 상태, 과도하게 긴장한 상태의 사람들을 참고하면서 연기를 해나갔다는 것이죠. 그런데 대학토론배틀 참가자는 지식수준으로 치면 얼마나 똑똑한 사람이에요? 그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말하기는 많이 안다고 해서 잘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요.
특히 요즘은 다들 말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말씀하세요. 글쓰기는 언제나 어려웠다고 치고, 말하기는 요즘 들어서 스스로 생각해도 바보 같을 정도로 힘들다고 말씀하세요. 왜냐하면 말하는 시간 자체가 극도로 줄어들고 있거든요. 사람들과 접촉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고, 대면하거나 전화 통화를 하기보다 대부분의 용건을 텍스트로 전달하면서 사람을 마주 보고 앉아서 말하는 시간이 아주 적어졌죠.
제가 대학생일 때만 해도, 연애 초기에는 볼이 시뻘개져서 잠들고 그랬어요. 연인과 무료 통화가 한 달에 600분 제공되는 서비스, 이런 거 신청했다가 일주일도 안돼서 다 쓰고 그랬거든요. 요즘 연인이랑 600분이면.... 1년 이상도 쓸걸요?
표현도 대부분 유행어나 이모티콘으로 대체하고 있어요. 친구가 제 책을 읽었다면서 이러더군요. “대박!” 또는 이렇게도 말해요. “짱짱!” 이처럼 평소에 말다운 말을 잘 하지 않으니 과도하게 긴장하죠. 긴장하니까 실수하기 쉽고요.
말하기가 상대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한다면, 글쓰기는 자신에 대한 질문에서 시작합니다. 말하기가 상대에게 어떻게 부드럽게 말을 해줘야 할까, 라고 고민하는 거라면 글쓰기는 내가 어떻게 하면 정확하게 내가 하고 싶은 말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을까를 생각하는 겁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전제로 시작하는 거예요.
이 차이를 분석하면서, 글쓰기와 말하기에는 크게 다섯가지의 차이가 있다는 걸 정리했습니다. 초점, 접속사, 솔직함, 요약, 결론이죠.
첫 번째, 초점부터 말씀 드리죠. 글 쓸 때는 내게 중요한 것, 내가 하고 싶은 말에 집중해야 합니다. 나로 시작해서 이야기를 풀어 나가야 합니다. 마치 광부가 된 듯 외롭게 혼자 굴을 파내려가면서요.
말을 할 때는 타인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남이 무슨 이야기를 듣고 싶을지 떠올려 봐야 해요. 상대의 정보나 교양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가늠하고 그에 맞춰 사용하는 예시를 조정해야 합니다. 말하기는 고도의 사회적 기술이니까요.
두 번째, 말을 할 때는 접속사를 적재적소에 쓰면 좋습니다.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다음에 나올 말을 예고해주고 딱딱 정리해주니까요. 한 연예인이 시사 프로그램에서 “그런데 말입니다” 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특히 뉴스에서 아나운서들이 말 하는 걸 잘 들어 보면, “그렇다면요” “정리하자면” “알겠습니다만” 같은 표현을 자주 쓰면서 수시로 청중의 집중도를 끌어올린다는 걸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반면 글을 쓸 때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흔들림 없이 밀고 가면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므로 접속사를 최대한 빼야 합니다. 접속사가 많은 글은 산만해보입니다.
세 번째, 솔직함입니다. 글쓰기 수업을 종종 할 때 저는 수강생에게 이렇게 물어봅니다. “정말 솔직하게 쓰신 것 맞나요?” 글쓰기는 솔직하게 쓰지 않고 어떤 척을 하면 바로 티가 나서 재미가 없어집니다. 특히 에세이에서 작가가 솔직하게 자기 과거를 꺼내놓고, 자기 실수를 이야기하고 상처를 이야기하면 독자는 감동을 받습니다.
말하기에서는 솔직함이 글쓰기에서만큼 중요하지 않습니다. 앞에서 글쓰기에서는 저의 상처, 실수를 고백할 때 특히 울림이 있다고 했습니다. 독자는 작가의 얼굴도 모르더라도 책을 읽으며 위로를 받습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처음 만난 사람에게 이렇게 말한다면 어떨까요? “우리 초면이긴 하지만 솔직하게 어린 시절 가족과의 불화를 얘기해볼까요?” 그러면 너무 황당하고 이상하다는 듯이 저를 보겠죠.
말하기는 지금 이 순간 상대와 내가 편안하게 공통의 화제를 공유하는 게 중요합니다. 진실게임을 하자는 게 아닙니다. 말하기는 취미로 배드민턴을 치듯이 서로의 공을 쳐주는 것이지, 혼자 일방적으로 강스파이크를 날려버리는 게 아닙니다.
네 번째로는 요약과 생략이죠. 글쓰기는 한마디로 요약할 수 없는 것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특히 문학은 요약하면 의미가 없습니다. <롤리타>는 어린 여자에게 껄떡거리는 이야기고, <안나 카레리나>는 바람 피는 이야기죠. 글쓰기는 한마디로 요약해버릴 수 없는 것에 대해서, 한마디로 요약해서는 절대 안 되는 것들에 대해 쓰는 것입니다. 소설가 장강명은 ‘5년 만에 신혼여행’이라는 책을 낸 적 있는데 아내와 필리핀 보라카이를 3박 5일 동안 다녀와서 250 페이지가 넘는 글을 썼습니다. 누군가는 “여행 갔다왔음. 짱 좋았음.”이라고 한 마디 하고 마는 것에조차 글 쓰는 이들은 하루 종일 고민하고 고치면서 세밀하게 표현합니다.
말하기에서는 제대로 요약할 줄 알아야 합니다. 요약을 잘 해야 하는 이유는 상대를 고려하는 게 말하기에서는 제일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요약을 잘 할 수 있다는 걸 가장 핵심이 되는 것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고, 전체 맥락을 장악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 생략도 말하기에서는 자주 해야 합니다. 말을 하다가 상대가 좀 지루해하는 기색을 보이면 눈치를 보고 적절히 건너뛸 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결론의 위치죠. 글쓰기에서는 결론이 제일 마지막에 나옵니다. 한 문장으로 요약해서는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끝까지 읽어봐야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책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있더라도 독자는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재밌어하죠.
말하기에서 반전에 반전에 반전이 있으면 어떨까요? “사장님. 그 계약이 성사 될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긍정적으로 진행되었거든요. 그런데 대표가 핵심 조항을 난감해해서요. 갑자기 다시 원점에서 검토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가요. 다시 연락이 와서 조항을 좀 바꿔달라고 하네요.” 이런 식으로 말하면 대표가 어떻게 반응할까요? “도대체 뭐라는 거야? 그래서 결론이 뭔데?” 하겠죠.
여러분이 기억하실 게, 직장에서 상사는 대개 세가지가 없거든요. 항상 시간이 없고요. 동시에 여러 일을 진행하니 정신이 없고요. 결정적으로 체력이 없습니다. 지쳐있는 그들을 위해 배려하면서 나를 어필해야 하죠. 꼭 상사를 대하지 않더라도, 회사 밖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저리주저리 말하지 말고 하고 싶은 바를 정리해 표현해야 합니다. 가능하면 결론부터 말하는 게 좋아요.
이렇게 글과 말의 본질적 차이에 대해 말씀 드려봤습니다. 글 쓸 때는 자신에게 집중하고, 말을 할 때는 상대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글쓰기를 할 때는 잠시 외부 소음을 차단하고, 말하기를 할 때는 온갖 창문을 활짝 열어두어야 합니다. 말을 잘 한다는 건 다정해진다는 것이고, 글을 잘 쓴다는 건 세밀해진다는 것입니다.
말과 글은 방향이 다르지만 결국 언어를 다루는 일이고 언어를 잘 다룰 수 있으면 성숙하고 품격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의 고품격 말하기와 글쓰기를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