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게 중요한 우선순위
얼마 뒤면 서울 은평구로 이사를 간다. 아이가 입학하게 될 초등학교가 지척에 있고 그 옆에 도서관과 공원이 붙어 있어 마음에 든다. 공원에서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가 발견되기도 하고 여름이면 개구리울음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는 중개인 말이 듣기 좋았다.
우리 부부는 서대문구에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신혼집 앞에도 도서관과 공원이 있었다. 아파트 주소지가 현저동으로 되어 있는 걸 알고 집 안을 보기 전에 살아볼 마음을 먹었다. 소설가 박완서가 서울에 처음 와서 살았던 감옥 위 빈민촌이 바로 현저동이었으니까. 닮고 싶은 작가와 접점을 만들었다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간지러웠다. 작가가 유년의 집을 산꼭대기로 표현한 데엔 과장이 일절 없어서 눈이 오면 집 앞 마을버스가 운행을 멈추었고 음식 배달도 불가했다(지금은 열선이 깔려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대신 안산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쾌적했다. 독립문역에 내려 집으로 올라가다 보면 확 달라진 공기로 집에 가까워졌음을 체감했다. 공원 안 이진아기념도서관에도 숨겨둔 애인이 있는 양 들락거렸다. 책을 빌려 나올 때 서대문형무소 돌담 옆 미루나무들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있어 그 푸른 풍경에 감탄할 때가 많았다. 거기서 사계절을 보낸 후 삼억 오천에 집이 매물로 나왔단 이야기를 들었다. 현저동에 오래 살고 싶던 나는 고민했다. 그때 옆에서 해준 말은 다음과 같았다. “공기 질과 아파트 가격은 반비례한다.” “그런 데는 안 올라. 돈을 더 모아서 오를 곳으로 가.” (지금 그 집 가격은 두 배 올랐다)
그때는 일단 돈이 없었고 확신도 없었으며 무엇보다 스스로 어른이라는 자각이 없었다. 집은 어른이 사는 것인데 나는 아직 어른에 못 미치는 무언가일 뿐이므로 천천히 결정해야 하는 줄 알았다. 망설이던 나는 주변 조언에 귀 기울였다. 부동산 폭등 전이라 다양한 선택지가 열거되었다. 그중 가장 낯설게 들렸던 말은 이것이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사면 안 되고 남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집으로 가야 해.”
남들이 살고 싶어 하는 집에 일단 한번 살아보면 어떨까? 창문 밖으로 한강이 보이는 마포구 고층 아파트를 전세로 구했다. 직장생활을 할 때 출간한 『무례한 사람에게 웃으며 대처하는 법』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목돈이 들어와 가능했는데 허세고 허영이고 돈지랄이었다. 하지만 김두식 교수에 따르면 각자 인생에는 평생 하는 바보짓의 총량이 정해져 있고 그걸 ‘지랄 총량의 법칙’이라 칭하는 걸 감안하면, 그때 평생 쓸 지랄을 썼으므로 앞으로 내가 하게 될 선택들은 거의 현명하지 않을까 한다….
아무튼 새로 안 사실이 있었다. 한강 근처 집에서는 창문을 열고 살기 어렵다는 것. 집이 한강 옆이라는 건 근처에 대형 간선도로가 있다는 걸 의미했다. 매일 청소를 하는데 창틀을 닦을 때 흑연 같은 먼지가 묻어났고 잠시 창을 열면 도로 소음이 맹렬하게 울려 퍼졌다.
내가 고층 집을 힘들어하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았다. 남들이 로열층이라는 곳에 있을 때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야경을 보면 커피를 연달아 마신 듯 심장이 쿵쾅거렸다. 딸린 아이가 셋이라 나의 부모는 일층만 찾아다녔고 서울에 와서도 높은 곳에 거주할 일이 없어 몰랐다. 그 집에 사는 내내 어서 이사 나갈 궁리를 했다.
정착할 집을 찾기 위해 남편과 각자 우선순위를 말해보기로 했다. 나는 손가락을 쫙 편 뒤 하나씩 접어 보였다.
“첫째, 초등학교가 도보권에 있어야 해. 둘째, 도서관이 도보권에 있어야 해. 셋째, 공원이 도보권에 있어야 해.”
남편이 웃었다.
“그거 우리 처음 살던 집 아니야?”
이후 조건에 맞는 저층 집을 찾아 계약서를 쓰고 부동산을 나왔다. 오후 반차를 쓴 남편에게는 하루가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곧바로 집에 가기 아쉬워 우리는 불광천 산책길을 걸었다. 여름에서 가을로 막 넘어가기 시작하던 때라 피부로 닿는 습기가 줄어들었고 가로수 잎의 색이 점차 진해져서 곧 시작될 단풍을 예고하고 있었다.
“인감도장도 찍고 오늘 우리 되게 어른 같았어.”
“어른 맞지 뭐.”
둘 다 흰머리를 가리려 염색하는 주제에 이런 대화를 하고 있는 게 우스웠다. ‘내가 살면서 제일 황당한 것은 어른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진 적이 없다는 것이다’라는 황현산 교수의 책 속 문장이 떠올라 남편에게 말해주었다. 끄덕이던 그가 불현듯 앞을 보더니 말했다.
“근데 사람들이 그러는데 은평구는 집값이 잘 안 오른다고 하더라.”
내가 빠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괜찮아. 우리 오래 살 건데 뭐. 도서관도 있고 공원도 있고. 난 좋아. 여기.”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다. 내가 살고 싶은 집을. 그러기 위해서 한참을 돌아왔다.
[한겨레신문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