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서평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발명은 한 사회가 아직 충족되지 못한 어떤 필요를 느낄 때, 즉 어떤 기술이 불만스럽거나 부족하다는 인식이 만연되어 있을 때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처럼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라고 보는 상식적인 견해를 뒷받침하는 발명품은 많다. 예를 들면 2차 세계 대전 당시 미국 정부는 나치 독일보다 먼저 원자 폭탄을 만드는 데 필요한 기술을 발명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맨해튼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또 영국의 탄광에서 배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임스 와트가 발명한 증기 기관도 이에 해당한다.
이런 사례들 때문에 책 <총, 균, 쇠>의 저자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우리가 그 밖의 발명품들도 모두 필요에 대한 인식에서 시작됐다고 착각하기 쉽다고 말한다.
사실 수많은 발명품, 또는 대부분의 발명품은 호기심에 사로잡히거나 이것저것 주물럭거리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개발했고, 그들이 염두에 둔 제품에 대한 수요 따위는 처음부터 있지도 않았다. 일단 어떤 물건이 발명되면 그때부터 발명자는 그것의 용도를 찾아내야 했다. 그리고 상당 시간 사용된 이후에야 비로소 소비자들은 그것이 '필요' 하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이다. - <총, 균, 쇠> p352
그러므로 항상 필요가 발명의 어머니가 되는 것은 아니다. 좋은 예로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가 있다. 1877년 에디슨이 최초의 축음기를 만들었을 때 축음기가 사용될 만한 열 가지 용도를 제시하는 글을 발표했다. 거기에는 시각 장애자들이 들을 수 있도록 책을 녹음하는 일, 시간을 알려주는 일 등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그중에 음악을 재생하는 일은 에디슨이 제신한 우선순위에서 상위권에 들지도 못했다.
이후 기업가들이 축음기에 동전을 넣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주크박스를 만들어냈을 때 에디슨은 자기 발명품이 사무용이 아닌 용도로 쓰이는 것에 반대했다고 한다.
또 때로는 실패한 발명품이 발명 의도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대중의 사랑을 받는 경우도 있다. 바로 포스트잇이다.
1970년에 3M 사의 연구원 스펜서 실버는 강력 접착제를 개발하던 중 실수로 접착력이 약하고 끈적임이 없는 접착제를 만들고 말았다. 그러나 실버는 실패를 실패로 만들지 않고 사내 기술 세미나에 보고했다. 이후 잊힐 뻔했던 실버의 접착제를 되살린 것은 같은 연구소 직원인 아서 프라이였다. 교회의 성가대원으로 활동하던 프라이는 찬양을 부를 곡에 책갈피를 끼워 놓곤 했는데, 책갈피가 자주 빠져버리는 바람에 항상 불편해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를 고민하던 프라이는 실버의 실패작인 접착제를 사용하여 붙였다 뗐다 할 수 있는 책갈피를 만들면 어떨까 하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포스트잇 개발에 성공했다. 처음에는 이 발명품의 필요성을 아무도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점점 포스트잇의 편리성을 알게 되면서 결국 전 세계의 소비자들에게 사랑받는 제품이 되었다.
이처럼 자신이 만든 발명품이 어떤 수요가 있을지는 발명가 자신도 정확히 알기란 어려운 것이다.
위의 사례처럼 제레드 다이아몬드 교수는 기술이란 대개 어떤 필요를 미리 내다보고 발명되는 것이 아닌 발명된 이후에 그 용도가 새로 발견된다고 말한다.
사무용이 아닌 오락거리로 사용된 축음기와 동료의 완벽한 실패작에서 획기적인 발명품으로 다시 태어난 포스트잇처럼 발명의 역사는 에디슨 같은 발명 천재의 공로도 있지만 그 발명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발견해낸 사람들의 역할도 매우 중요했다.
스마트폰 없이는 일상생활이 힘들 정도로 우리의 필수품이 되었지만 10년 전만 해도 우리는 스마트폰 없이도, 카카오톡 없이도 큰 문제없이 잘 살았다. 우리가 딱히 필요로 하지 않았지만 스티브 잡스의 애플을 비롯한 소수의 기업들이 스마트폰을 발명해내자 사람들의 삶은 완전히 달라져버렸다.
앞으로는 어떤 발명품들이 우리의 삶을 바꿔 놓을까? 전기차와 자율주행일까? 우리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왔던 운전할 필요를 없애주는 이 발명품은 스마트폰만큼 큰 변화를 일으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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