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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대웅 Feb 02. 2020

인류의 역사를 꿰뚫어 보는 이 책

이 책을 세 번째 보면서 느낀 점은 '마치 졸업 앨범 같은 책'이다. 가끔 추억에 젖어 졸업 앨범을 펼쳐보면 다시 봐도 처음 보는 것 같은 낯선 얼굴들을 마주하게 된다. 책 <사피엔스> 역시 처음 일독할 때 빨간펜으로 줄을 쳐가며 읽었음에도 다시 볼 때 "이런 내용들이 있었나?" 하는 부분이 많았다. 그래서 세 번째 봐도 새롭고 몰입해서 읽게 된 부분들을 공유해보려 한다.



직립보행과 커다란 뇌의 대가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크게 구분되는 두 가지는 '직립보행'과 '큰 뇌'이다. 직립보행은 인간이 손으로 복잡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게 만들었고 큰 두뇌로 여러 가지 창의적인 도구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직립보행과 큰 뇌는 치러야 할 비용이 상당했다.


첫 번째로 큰 뇌는 연료를 많이 소모한다. 뇌는 몸무게의 2~3% 정도밖에 안되지만 뇌가 소모하는 에너지는 휴식 상태일 때 25%나 된다. 반면 다른 유인원들은 8% 정도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래서 인류는 식량을 찾아다니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썼고, 뇌의 에너지를 많이 투입한 탓에 근육은 퇴화됐다. 수렵채집 시절의 인류에게 큰 뇌는 오히려 짐이었을 수도 있다.


두 번째로 직립보행의 경우 인간은 손을 자유자재로 쓸 수 있게 됐지만 허리가 아프고 목이 뻣뻣해졌다. 또한 직립보행은 남성보다 여성이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만들었다.


똑바로 서서 걸으려면 엉덩이가 좁아야 하므로 아기가 나오는 산도도 좁아지는데, 하필이면 아기의 머리가 점점 커져가는 기간에 이런 일이 일어났다. 분만 중 사망은 인간 여성에게 주요한 위험이 되었다. 아기의 뇌와 머리가 상대적으로 작고 유연할 때 일찍 출산하는 여성이 더 살아남기 쉬웠고, 더 많은 아기를 낳을 수 있었다.

(...) 인간은 생명유지에 필요한 많은 시스템이 덜 발달된 미숙한 상태로 태어난다. (...) 인간의 사회적 능력이 뛰어난 것도 이 덕이요, 특유의 사회적 문제를 안게 된 것도 이 탓이다. (...) 애를 키우려면 가족의 다른 구성원 및 이웃의 지속적인 도움이 필요하다. 인간을 키우려면 부족이 필요했고 따라서 진화에서 선호된 것은 강한 사회적 결속을 이룰 능력이 있는 존재였다. - <사피엔스> p28-29


즉 인류가 사회적 동물이 된 가장 큰 두 가지 요인은 직립보행과 점점 커져가는 뇌였던 것이다.



교배이론 VS 교체이론

10만 년 전 지구에는 최소 여섯 가지 이상의 인간 종이 살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존재하는 종은 '호모 사피엔스' 단 한 종뿐이다. 그렇다면 우리 호모 사피엔스들은 순수한 순종인가? 아니면 다른 종들과 피가 섞인 혼종인가?


교배이론은 여러 인간 종들의 피가 서로 뒤섞였다는 설이다. 이것이 사실이면 유라시아인의 경우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의 혼혈이다. 중국인과 한국인의 경우는 사피엔스와 에렉투스의 혼혈이 된다.


교체이론은 여러 인간 종들이 서로 사이좋게 지내지 못하고 인종간 학살이 일어났다는 설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인간 종들은 해부학적으로 달랐고, 서로에게 성적인 관심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면 현대 인류의 조상은 7만 년 전 동아프리카에 기원을 두고 있는 순수한 사피엔스다.


이 논쟁은 2010년 네안데르탈인의 게놈지도가 발표되면서 끝이 났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중동과 유럽에 거주하는 인간 고유의 DNA 중 1~4%가 네안데르탈인 DNA로 밝혀진 것이다! 또한 호주 원주민의 DNA 중 최대 6%가 데니소바인의 DNA인 것으로 나타났다. 교배이론이 맞았다. 하지만 교체이론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었다.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은 오늘날 우리의 게놈에 아주 작은 양만 기여했기 때문에, 사피엔스와 다른 인간 종의 합병을 이야기하기는 불가능하다. (...) 말과 당나귀처럼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진화한 두 종이라면 다들 어느 시기에는 불도그와 스패니얼처럼 같은 종의 두 집단이었다. (...) 그러면서도 드물게 서로 성관계를 해서 번식 가능한 후손을 낳을 수 있는 시점이 있었을 것이다. 그 후 또 다른 돌연변이가 일어나서 최후의 연결선은 끊어졌고, 집단들은 각기 다른 진화적 경로를 밟게 되었다. - <사피엔스> p37-38


결론은 이들 집단이 합병한 것은 아니고 일부 운 좋은 다른 인간종(사피엔스가 아닌)의 유전자가 사피엔스의 유전자에 편승한 것이다. 즉 현재의 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과 데니소바인과 미미하게 섞였지만 그들은 사피엔스들과의 경쟁에 밀려 멸종했다.


성경의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처럼 우리의 선조인 사피엔스(카인)는 네안데르탈인, 데니소바인(아벨)등의 다른 형제들을 살해하고 결국 혼자 남게 되었다.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 마주친 결과는 틀림없이 역사상 최초이자 가장 심각한 인종청소였을 것이다. - <사피엔스> p39


만약 네안데르탈인이나 데니소바인 등 다양한 인간 종이 현재에도 생존해있다면 어떨까? 굉장히 흥미로운 생각이지만 우리의 조상들이 멸종시켜서 화석으로만 만날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 씁쓸하기도 하다.



이 책이 대단한 이유는 저자 유발 하라리가 인류 역사의 흐름을 과학, 종교, 정치, 경제, 문화, 철학 등등 다양한 관점으로 자연스럽게 녹여냈다는 것에 있다. 한 명의 전문가가 이렇게 다양한 분야를 모두 공부하고 한 권으로 담아낼 수 있다는 것도 놀라운데 심지어 재미있다.


이 서평에서는 책 앞부분의 초기 인류의 모습에 대해서 적었지만(분량 조절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책의 중반, 후반부에도 굉장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내용이 많기 때문에 사피엔스를 아직 읽지 않은 분들이나 읽다가 책장에 꽂아두고 장식품으로 두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꼭 읽어보시길 바란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97807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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