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경 Feb 16. 2020

모기 : 인류 역사의 씬스틸러

티모시 와인가드 교수의 책 <모기>를 읽기 전에는 이 작은 벌레가 인류 역사에 이렇게 깊이 관여됐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모기는 밤 잠을 설치게 하고 온 몸을 가렵게 만들어 열 받게 하는 벌레일 뿐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 인류가 수 천년 동안 모기가 옮기는 질병에 신음하고 고통받은 사례들을 읽고 나면 잠을 설치게 하고 몸을 좀 가렵게 하는 것뿐인 요즘 모기들은 귀여운 수준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것이다.


모기는 인류 역사의 중요한 순간순간마다 조연으로 등장했고 그때마다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겼다. 지금부터 그 어떤 생명체보다 인간에게 큰 고통을 안겨준 모기의 하이라이트 장면을 되돌아보자.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5656191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막아선 모기

광대한 영토를 정복한 현명하고 용맹한 왕 알렉산드로스와 그의 군대는 끝없는 연승 행진을 이어 나가며 아시아까지 뻗어나가 인도의 인더스강까지 진출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기나긴 원정으로 지쳐있었고 물자 보급도 어려워지고 있었다. 여기서 설상가상으로 치명적인 모기와 말라리아까지 마주치게 된다.


봄철 우기와 모기의 계절인 여름 동안 늪지대와 강가에서 행군하고 야영했던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말라리아로 인해 쇠약해지고 죽어나갔다. (...) 한때 활기가 넘쳤던 알렉산드로스의 군대는 이제 걸어 다니는 해골이나 다름없었다. - <모기> 中


결국 알렉산드로스 대왕이라 할지라도 이런 복합적인 문제를 해결하긴 어려웠고 회군을 결정했다. 만약 그가 정복욕에 휘둘려 억지로 전쟁을 계속해나갔다면 그의 무패 신화는 산산조각 났을지도 모른다.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바빌로니아로 회군하던 중 모기떼가 우글거리는 습지를 지나게 된다. 그리고 며칠 뒤 몸을 가누지 못할 만큼의 간헐적 발열이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덮쳤다. 


알렉산드로스가 유해한 늪지대를 건너 바빌로니아에 입성한 시점, 증상을 보인 시점과 발열 주기 그리고 12일 만에 죽음에 이른 시점까지 짐작해봤을 때 열대열말라리아로 인한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말라리아 때문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결국 거대한 제국을 건설한 전설적인 왕 알렉산드로스는 조그마한 모기 때문에 32살 젊은 나이로 단명했다.

영화 <알렉산더>  - 네이버영화


한니발의 눈을 앗아간 모기

카르타고와 로마의 제1차 포에니 전쟁에서 패배한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제2차 포에니 전쟁을 일으킨 한니발은 6만의 병사와 전투코끼리를 끌고 알프스 산맥을 넘어 로마를 침공했다. 그러나 한니발이 넘어야 할 것은 험난한 알프스 산맥뿐만이 아니었다. 바로 로마 주변의 모기가 들끓는 늪지대였다.


한니발은 늪지대를 건너는 데 성공했지만 알프스 산맥을 넘을 때만큼이나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늪지대의 모기들은 수많은 카르타고의 병사와 한니발을 말라리아에 감염시켰고 한니발은 심한 고열을 앓고 오른쪽 눈의 시력을 상실했으며 같은 질병으로 아내와 아들까지 잃었다.


<삼국지>의 무장 하후돈은 날카로운 화살촉 때문에 눈을 잃었지만 한니발은 날카로운 모기의 침 때문에 눈을 잃게 되었던 것이다.


또한 한니발은 로마와의 전투에서는 이겼지만 끝내 로마시를 완전히 점령할 수는 없었다. 한니발의 군대는 로마시를 포위할 장비와 물자도 부족했고, 카르타고군이 연중 내내 말라리아가 창궐하는 습지에 자리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모기는 한니발과 그의 군대로부터 로마를 지켜내는 데 일조했으며, 로마가 지중해 세계와 그 너머를 지휘하는 초석을 놓아주었다. - <모기>


만약 로마 주변이 습지가 없는 마른땅이었다면 로마는 거대한 제국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카르타고의 속국이 되지 않았을까?


미국의 남북전쟁의 승패를 가른 것은?

1863년 1월 1일 노예 해방 선언으로 인해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법적으로 자유의 몸이 되었다. 또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참전이 공식 허용됐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입대를 적극 받아들인 북부연방과 달리 남부맹방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남부 측은 "노예들은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없다"라고 얘기하며 그들의 참전을 거부했지만 내 생각엔 노예제를 유지하고 싶은 남부인들이 자신의 노예들에게 "노예제 유지를 위해 나가 싸워라!"라고 하는 건 전혀 명분도 없고 반란의 위험도 있다. 그래서 끝까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받아들이지 않았나 하는 추측을 해본다.


아무튼 남북전쟁의 승패를 가른 첫 번째 이유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참전이다. 두 번째 이유는 바로 항말라리아 의약품, 퀴닌과 키나나무 껍질이다.


북부연방은 말라리아로 인한 병력 손실을 막기 위해 퀴닌과 키나나무 껍질을 병사들에게 넉넉히 보급했지만 남부맹방은 북부 측의 해상봉쇄로 인해 충분한 양의 퀴닌을 보급하지 못했다. 퀴닌이 구하기 어려워지자 밀수꾼들은 암시장에 어마어마한 가격으로 남부 측에 퀴닌을 팔아 이득을 챙겼다.


이러한 두 가지 요소로 인해 북부는 더 유리한 환경에서 전투를 치를 수 있었다. 그리고 1865년 마침내 남북전쟁은 북부의 승리로 끝이 나고, 대통령 링컨은 연방 수호와 노예제 폐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았으나 그 대가로 남북을 통틀어 75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북부의 경우 사망자 36만 명 중 약 65%가 병사했고 남부는 75%나 질병으로 사망했다. 이중 말라리아로 인한 사망자도 상당했다.


말라리아 매개 모기는 남부의 병력을 약화시켰고, 북부의 승리와 연방의 보존, 노예제의 해체를 이끌어냈다. - <모기> 中



이 책의 조금 아쉬운 점이 있다면 역사의 인과율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기 마련인데 모기의 활약을 부각해 '기승전모기'로 마무리 짓는 느낌도 다소 있었다.


하지만 모기와 모기로부터 오는 질병들이 인류 역사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를 새롭게 알게 되어 흥미로웠고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나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재밌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책 티모시 와인가드 교수의 <모기>도 추천드린다.



https://www.youtube.com/watch?v=u_HXoW5WSn4 

'사피엔스'를 읽었다면 '모기'도 읽어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발 하라리가 들려주는 자본주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