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우 Jan 02. 2024

상담자의 미움 극복일기

첫 번째 일기 - 역전이의 첫경험, 나는 왜 내담자들이 미울까?

믿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상담자로서 내가 가장 자주 느끼는 감정은 미움이다. 미움이란 미워하는 일이나 미워하는 마음을 뜻한다. 상담을 하면서 내담자가 밉기도 하고, 내담자의 보호자가 미울 때도 있고 나 자신이 미울때도 많았다. 막연히 마음 속에서 미움이 차오르면 직업에 대한 후회, 자괴감, 죄책감이 나를 덮쳐 왔다. 답답한 마음을 해결해보고자 네이버에 미움을 검색해봤다. 밉다: 마음에 들지 않거나 눈에 거슬리는 느낌. 이상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저정도가 아닌데 하는 생각. 내가 느끼는 감정이 미움이라는 단어로는 다 설명되지 않는 아주 복잡한 감정이구나. 내가 내 마음을 너무 단순히 보고있었구나. 사실 복잡한 이 감정을 설명하는 아주 좋은 단어를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공부를 하며 수도 없이 들었던 그것 '역전이'. 나와 내담자 사이의 아주 복잡하고 미묘한 역동. 역전이라는 미움의 역동 끝에 나와 내담자 사이엔 무엇이 남을지 알고싶었다. 그래서 나는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보기로 한다. 나의 미움 극복일기가 나와 당신의 미움 극복일기가 되길 바라며 글을 쓴다.  


학부시절 한창 꿈 많고 공부도 많이 하던 시절, 전이와 역전이에 대해 배웠다. 내담자가 자신에게 중요한 인물과의 갈등 경험을 상담자에게 투사하는 전이, 그리고 이러한 전이에 상담자의 갈등이 반영되어 상담자에게 여러 영향을 끼치는 역전이. 중요하다고 배웠고, 왜 중요한지도 배웠다. 하지만 경험해 본 적 없으니 와닿지 않았다. 상담을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걱정은 했어도 내가 내담자를 미워하지 않을까하는 걱정은 나의 상상 밖의 일이었다. 일단, 나는 내가 이렇게 화가 많은 사람인지 몰랐다. 평탄한 유년시절, 대학시절을 거치는 동안 누군가를 한 번쯤 싫어하기는 했어도 크게 미워한적은 없었다. 싫어하는데는 나만의 혹은 타인들의 이유가 늘 있었다. 저사람은 저래서 이 사람은 이래서. 싫어하는 이유가 분명하다는 건 생각보다 마음을 편하게 해준다. 그래서 누군가를 싫어할 땐 크게 괴롭지 않았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니 그것도 내담자를, 이 생경한 감정에 어쩔 줄 몰랐다. 인간적으로, 사회적으로 싫어할 이유가 없는 누군가를 향해 이렇게 강한 미움의 감정이 든다니. 심지어 상대는 내가 도와야할 대상이다. 비자발적 내담자, 반사회적 내담자를 만나 인격적으로 모욕을 받았을때의 분노와는 분명히 다른 결의 감정이었다. 오히려 그런 경우, 나는 분노의 감정이 가라앉으면 차분하게 상대를 탐색하고 라포를 형성하기 위해 노력했다. 잘 되지 않는 경우도 많았지만 그렇다고해서 내 탓을하거나 내담자를 향해 강한 미움이 들지는 않았다. 그들도 다 그럴만한 이유와 사정이 있고 마음은 아닐지 몰라도 머리로는 쉽게 납득이 되었다. 


내담자에 대한 미움에 대한 첫 번째로 나타난 나의 반사적인 반응은 탓하기였다. 왜 저럴까, 저러니까 힘들지, 나는 왜 니가 힘든지 알겠는데 너만 모르는구나, 니가 그러니 주변 사람들이 싫어하지. 상담을 하는 내내 내담자를 탓하고 싶은 마음이 광포하게 나를 흔들었다. 내 생각이 정답인데 내담자만 그것을 몰라 저리 힘들어한다 생각했다. 내가 무어라고 정답을 알고 있다 생각했을까. 탓하는 말이 혀 끝을 안달나게 만들고 매번 그것을 집어삼키느라 고역이었다. 당연히 나의 정답을 정당화하기 위해 계속해서 내담자의 흠집을 찾아내고자 하는 욕구는 커져만 갔다. 흠집을 찾아내어 통찰시키는 것이 방법이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에 자리했다. 정답을 알고 있다 생각한 상담인데 점점 꼬여만 갔다. 나는 이 시절의 나를 탓하기 시절이라 부른다.


탓하기 시절이 시작되고 나는 생기를 잃어갔다. 홧병에 걸린 것 같았다. 출근과 상담을 앞두면 심장이 과하게 두근거리고 숨이 막혔다. 매일 하고싶은 말을 참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만들었고 이 시기부터 화와 짜증이 늘어갔다. 어린 시절부터 하고 싶은건 해야만 했고, 잘 할수있다 생각했다. 또 하고 싶은 말은 무조건 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그런 나에게 탓하기 시절은 나를 병들게 만들었다. 이 시절의 나는 왜 내가가 하고 싶은 말을 참아야 하지?에 초점이 박혀있었다. 왜 이런 탓하는 마음이 드는가에 대한 성찰이 이루어지지 못한 시기였다. 성찰이 없었기에 답이 없었고 답이 없는 문제 속에 갇힌 나는 내담자를 탓하는 것을 넘어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보고 탓하기 시작했다. 


망했다. 살아가며 처음으로 죽고싶다는 마음이 든 것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