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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손주를 봐 줘야 하나?

할머니의 두 마음

딸 민이 물었다. 

"엄마~ 짜장면 어떻게 만들어요?"

처음 하는 질문이라 의아했다. 

아 참~ 딸의 배속에 있는 아가가 먹고 싶은 것이구나.  딸이 알고 있는 음식 중에서

아가가 먹고 싶은 것이 만나 엄마에게 전달되어 나온 음식이 짜장면인가 보다. 

미국에 있는데도 짜장면이 먹고 싶은 아가라니 재미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스탄트 짜장면을 사놓긴 했는데  자기도 집에서 만들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딸. 

이 소스에는 MSG가 많은 것 같단다. 그래서 짜장을 사서 볶고 돼지고기 넉넉히 넣어 볶으면 된다고 말해 주었다. 가까이 살면 당장 달려가 짜장면을 만들어 주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엄마가 나중에 산후조리하러 갈 때 짜장면 만들어 줄게." 

이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데 딸이 물었다. 

"엄마, 산후조리할 때 오지 말고 내 출산 휴가 3개월 후에 오시면 안 돼요? 출산 휴가 때는 내가 어떻게든 아기를 볼 수 있는데 그 이후는 ......"

"아기가 태어났을 때 산모가 제일 힘들기 때문에 그때는 무조건 엄마가 있어야 해. 

이 때가 얼마나 힘들면 '산후조리원'이 생겼겠어. 3개월 이후는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 산후 조리부터 생각하자.  이건 무조건 봐 줘야 해. 3개월 이후는 토론토에 계시는 시어머님이 오실 수도 있고 아무튼 좀 궁리를 해 보자"


말은 이렇게 했지만 머리는 갑자기 바빠졌다. 유난히 아기를 좋아해서 4명의 아기를 낳겠다고 했던 딸이었다. 30대 전에 2명, 30대 이후 2명 낳는 것이 인생 계획이었는데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딸은 이미 33살이다. 4명의 아이를 낳겠다고 말할 때, 내가 아기 잘 봐줄테니 넌 낳기만 하라는 식으로 쉽게 대답했었다. 손주를 본 친구들이 늘어나니 나에게 '정신 차리라'고 말했다. 그리고 딸이 나를 믿고 4명을 낳을 생각을 할 수 있으니 지금에라도 엄마 믿고 아이를 낳는 건 아닌지 확인 절차를 가지라고 조언해 주었다. 그때는 아직 결혼도 안 한 상태였는데 나는 조심스럽게 딸에게 물어 봤었다. 


"민아~ 엄마가 할 말이 있는데....."

"무슨 일인데 그렇게 무게를 잡으세요. 어서 말해 보세요."

"아니~ 갑자기 이런 말 하기가 쉽지는 않는데...."

"엄마 빨리 말해 보세요. 뜸들이지 마시고. 건강문제예요? 아니면 돈 문제? 아니면 관계?"

"아니~ 다 아닌데... 너 말이야. 혹시 나 믿고 아이 4명 낳는다고 한 건 아니야. 내 친구들이 이거 꼭 확인하라고 했거든. 엄마가 늘 아기 다 봐준다고 해서 너가 4명을 낳을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야. 엄마가 못 봐 줘도 네가 알아서 키울 거지?"

딸의 웃음 소리가 들렸다. 

"엄마도 참~ 무슨 큰 걱정이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랐네. 엄마도 엄마 삶이 있는데 내 아기만 보고 어떻게 살아요? 제 아기는 제가 다 알아서 키울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너 분명히 말했다. 나 믿고 아기 낳는 거 아니라고."

"네~" 

근 5년 전의 대화였다. 이 대화를 끝내고 난 얼마나 마음이 홀가분해졌는지 모른다. 나에게 조언해 준 친구들에게도 고맙다는 말까지 전했다. 


이제 아가를 키우는 일이 현실로 다가 오고 있다. 아기를 4명 낳겠다는 말은 언제부터인지 들리지 않았다. 몇 명을 낳을 지는 나도 모른다. 다만 넘버 1인 이번 손주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 관건이다. 내 마음은 딱 두마음. 

하나의 마음은 일과 육아로 쩔쩔매는 딸을 보면서 도움을 안 주는 건 말도 안 된다. 또 하나의 마음은 아이는 엄마가 키우는 거다. 내 도움 없이도 닥치면 다 해 낸다. 언제까지 손주를 봐 줄 수는 없는 것. 엄마가 되면 강하게 되니까 다 해낼 거다. 


친구들도 2부류로 나뉜다. 손주를 봐 주는 일은 정말 힘들지만, 값진 일이라고 말하는 친구도 있다. 손주와 관계를 맺으며 할머니 사랑을 받고 자라게 해 준다는 것. 또 다른 부류는 일주일에 단 한 번 봐 주는 일도 체력이 딸려 힘들다고. 잠시 이쁘지만 몸 아픈 건 오래 간다고. 그리고 이런 저런 부대낌으로 섭섭한 일들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난 지금 어떤 결정도 못 내리겠다. 절충안을 찾아서 나의 딸에게 도움을 주면서도 나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는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할 때다. 나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종합해서 나의 상황에 가장 맞는 답을 찾아내야겠다. 현재 상황에서 손주를 맞이할 첫준비로 나는 운동을 정했다. 일단 체력이 되야 그 다음이 있기에. 난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고 오늘도 빡센 근윤 운동을 하고 이 글을 쓴다. 손주를 번쩍번쩍 드는 힘센 할머니를 상상하며 복잡한 마음을 내려놓는다. 

어떻게 잘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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