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주를 위해 할머니가 팔 걷어붙였다!
손주를 맞이할 준비로 병원에 갔다. 파상풍, 백일해, 디프테리아를 예방하는 주사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파상풍 때문에 맞는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손주를 위해 중요한 건 백일해 예방이라고 한다. 물론 한 번의 주사로 세 가지를 모두 예방할 수 있지만, 나에게는 한 번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팔이 묵직하고 2-3일 정도 그 느낌이 갈 수 있다고 한다. 주사는 역시나 아팠다. 아이들이 맞을 때 가장 아파하고 열이 많이 나는 접종이라니, 역시 어른도 아플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그래도 이 묵직한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손주를 위해 할머니가 이 정도쯤은 할 수 있다는 마음이 들어서 오히려 뿌듯했다.
내 아이들도 어렸을 때 이 주사를 맞혔던 기억이 난다. 첫째 때는 그래도 정신이 있었지만, 둘째가 태어나고 나서는 정말 혼이 나갔던 것 같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야말로 정신없이 살았던 시기였다. 토요일에도 일하고, 남편은 늘 바빴고, 그러다 보니 두 아이를 모두 데리고 병원에 가는 일이 얼마나 벅찼는지 모른다. 첫째 민에게 "엄마 옷 꼭 잡고 따라와" 하며 둘째를 안고 병원에 들어가던 기억이 선명하다. 병원에는 늘 엄마들이 가득했고, 아이들은 병원 여기저기서 뛰어다녔다. 그때는 온갖 병이 병원에서 다 옮겠구나 싶기도 했다. 정신없이 두 아이를 키우던 그 시절이 아득하면서도 마치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이제 그 정신없이 키웠던 딸 민이 엄마가 된다. 나는 27살에 딸을 낳고, 30살에 아들을 낳았으니, 지민이 33살에 첫 아이를 낳는 건 나보다 좀 더 늦고, 나이에 비해 여유가 더 있을 것 같다. 그런 점이 오히려 나에게는 위로가 된다. 나보다 성숙하게 아이를 키우겠지, 정보도 많고 본인이 소아과 의사니 훨씬 유리한 조건이다. 그녀가 지금까지 본 신생아가 1000명이 넘는다는데, 얼마나 많은 경험을 하고 있는 걸까? 정말 다행스럽다.
하지만 꼭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쉬운 건 아니다. 나에게는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친정 엄마와 시어머니가 있었다. 급하면 이웃에게도 아이를 잠깐 부탁할 수 있었고, 놀이터에만 나가도 또래 아이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다. 대화 속에서 얻는 정보도 있었고, 어딜 가든 도움의 손길이 있었다. 요즘은 컴퓨터만 켜면 리뷰로 넘치는 정보들이 많지만, 정작 사람 간의 연결은 끊어진 시대다.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모두 휴대폰만 바라보고,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아이가 놀이터에서 넘어져도 아무도 보지 않을 정도로 모두 자기만의 세상에 빠져있다. 예전의 따뜻한 정이 넘치는 시대가 그리울 때, 나도 '라떼는 말이야~'를 떠올리며 옛날이야기를 하게 된다.
딸 민은 남편과 둘이서만, 가족도 없고 친척도 없는 뉴욕에서 아이를 낳는다. 뉴욕 한복판에서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다. 시어머니도, 친정엄마도 곁에 없는 상황에서 믿을 만한 사람을 찾는 것이 가장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리뷰에 의지하는 세상에서, 이제는 플랫폼 서비스를 찾아 뉴욕에도 믿을 만한 아이 돌봄 서비스가 있는지 검색해 보는 게 현실적인 해결책이 될지도 모른다. 지금부터라도 지민이 신뢰할 수 있는 돌봄 서비스를 찾는 일을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손주를 맞이할 준비는 이렇게 예방접종에서 시작됐다. 이제는 남편도 함께 해야 할 때다. 그에게도 이 주사를 맞게 해서 손주 맞이 준비에 동참시키려 한다. 아이를 키우는 건 혼자가 아니라 함께 해야 하는 일이니까. 왼팔의 묵직함을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기대와 설렘으로 달래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