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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리 Aug 04. 2024

추위와 찬물 (3)

맥그로드 간즈

치통은 추위와 만나면 더욱 극심해졌다. 원래도 추위가 싫었지만 치통이 생긴 이후 추운 곳은 일단 피하고 봤다. 치통이 한번 올라오기 시작하면 약기운이 돌 때까지 1시간은 더 버텨야 했고 아예 약발이 들지 않는 날에는 거의 잠에 들지 못했다. 식당에서 찬물이 나오면 마시지 않았다. 치통은 두통과 잘 구별되지 않았고 두개골과 얼굴뼈 전체에 감돌았다. 그래도 머리는 감아야 했다. 대낮의 불볕더위를 지낸 뒤 몰려오는 시큼한 냄새를 참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악! 어떡하지? 바보 같아! “ 남은 물을 가슴 위로 다 끼얹어버린 순간 알아차렸다. 양치를 위한 단 한 컵을 남겨놓지 못한 실수를. 가녀린 내 몸은 추위에 사로잡혔고 잠시도 참을 수 없었다. 분주히 옷을 입으면서 생각했다. ‘할아버지에게 한 동이 더 부탁하면 혼나겠지? 할아버지 너무 무서워…‘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싶었다. 그만큼 치통 앞에 나의 의지는 나약하기 짝이 없었다. 어느 밤에는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두통을 힘들게 감당하고 있던 몸이 내미는 열증같은 것이었다.

나는 고통을 잘 참는 편이다. 내 뱃속에 작은 혹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나는 덤덤했다. 내 삶에 붙어살고 있던 통증을 미워하지 않았다. 출산 역시 떠올려보면 두 번은 겪고 싶지 않지만 끝내 사라질 고통이란 생각으로 버텨졌다. 그러나 치통은 싫다. 추운 겨울날의 치통은 죽이고 싶을 정도로 싫다.


침대에 걸터앉아 생각했다. 이마를 타고 흘려내리는 물을 닦아내며. 얼른 말할 용기는 생기지 않았다. 머릿속이 바빴다. ‘할아버지 제가 치통이 있어서요. 찬물로 양치를 못해요. 도와주세요. 할아버지.’ ‘제가 몸이 안 좋아요 할아버지…’ 이러면 병원에 갈 일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따뜻한 물을 마시고 싶어요” 할아버지는 잠시 나를 노려보았다. 아마 내가 불쌍해 보였을 것이다. 석연치 않은 표정으로 돌아선 할아버지는 잠시 후 물주전자를 끓여 돌아왔다. 천사 같았다.


치아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여행을 시작한 지 일주일 남짓 지나면서였다. 어느 날 갑자기 한쪽 어금니가 푹 꺼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 통증은 그런대로 견딜만했다. 동행자들과의 일정을 소화하는데도 무리는 없었다. 한국에서 챙겨간 진통제는 게보린 한 타스가 전부였는데 생리통을 대비해 가지고 간 걸 그렇게 다 써버리고 한국 여행자를 만나기만 하면 진통제를 구걸했다. 치통이 얼마나 무서운 통증인지 태어나서 처음 경험하게 된 것이다. 등산객에게 얻은 독한 술을 진통제 대용으로 마시던 어느 날, 좋아하던 만년설 바람을 뒤로하고 나는 맥그로드 간즈를 떠났다. 가지고 있던 옷을 모두 포개어 입어서 홀쭉해진 가방을 메고 동네의 모든 개가 마중 나온 새벽에, 도망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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