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Aug 08. 2022

메리케이의 글쓰기


『서평의 언어』에 들어있는 단편(Pieces)들은 짧지만 한번 읽고는 맥락을 파악하기 어렵다. 저자의 쓰기 방식이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데, 거기다 주로 언급되는 영국 작가와 작품에 대한 낯섦도 한몫한다. 얼마 전 이 책의 북토크를 진행한 《씨네 21》의 이다혜 기자는 이 책에 대해 "영국의 1970년대 문화계, 사교계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수월하게 읽히지 않는 데 대해 안도! 


<런던 리뷰 오브 북스:LRB>를 창간(1992년) 하고 2021년까지 편집장을 맡았던 메리케이는 가끔 LRB에 직접 글을 썼다. LRB에 실리는 글은 '리뷰나 에세이, 기사가 아니라 단편'으로 불리는데, 그래서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글 형식을 기대하고 읽을 때 어려워진다.  『서평의 언어』의 원제는 Human Relations and Other Difficulties으로 <서평의 언어>는 서평자의 마음, 태도, 습관 등등을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짚어나가는 한 단편의 제목이다. 단편 하나에 레퍼런스가 풍부하고, 저자가 "대상에 대해 갖는 양가적인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게, 그럼으로써 "어떤 문제의 양면"(10쪽)을 바라보게 되는 글쓰기, 우리의 독서를 어렵게 하는 특성이지만 그 어려움 자체가 단순화해서 말할 수 없는 인간과 삶을 보여주기 때문에 결국 더욱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메리케이의 글쓰기 방식을 탐구하는 의미에서 단편 <브뤼셀>을 정리해 본다.   


데이비드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 속 한 문장 "적응은 아무리 편안해 보여도 결코 자유가 아니다(307쪽)"라는 문장을 인용하면서 <브뤼셀>은 시작한다. '자율 대 적응'이라는 화두를 진행하려는 것이다. 두 도시 브뤼셀과 런던이 비교된다. 메리케이는 브뤼셀을 "온건하며 위협적이지 않은 형태의 디스토피아로서 의미를 갖는" 도시로 평가한다. 런던은 어떤가. 저자가 대학을 졸업한 직후 1950년대 후반 혹은 60년대 초반의 런던은 지하철역에서 주기적으로 중산층임이 확실한 옷 잘 차려입은 여자들이 고함을 고래고래 지르는 곳이었고 그러나 "그들에게 눈길 하나 주는 이가 없는 곳(310쪽)"이었다. 메리 케이에게는 "모두가 서로를 몰래 지켜보고, 감시자마저도 누군가에게 감시당"하는 듯한 브뤼셀보다는 그래도 런던, 20대의 메리케이에게는 "런던이야말로 내가 살아야 할 곳"이라고 믿었다. 데이비드 리스먼의 "자율'에 환호했던 때이리라. 


또 한 건의 도시 비교가 이루어진다. 저자가 9살 때까지 살았던 뉴욕 즉 47년 혹은 48년 2차대전이 끝난 시기까지의 뉴욕과 99년(이 에세이가 쓰인) 즈음의 뉴욕의 비교. 


뉴욕은 어린 시절 나에게는 아주 멋진 동화책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뉴욕에 가면 내가 바라보거나 지나쳐 가는 모든 것이 테두리 안에 들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뉴욕의 화려한 부분은 물론이고 너저분한 구역마저도 그렇다.(315쪽)"


이 단편은 도시에 관한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에 의해 쓴 것이다. 저자가 브뤼셀을, 런던을 그리고 현대의 뉴욕과 같은 도시들을 보면서 하고 싶은 말은 다음 문장 속에 함축되어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은 보다 포괄적인 의미로서의 도시적인 억압, 어떤 도시를 방문할 때 드는 마치 형편없는 소설, 심지어 잡지 속에 들어가 버린 것 같은 기분에 관한 이야기였다.(315쪽)"


세계 전쟁의 포화를 비켜나가 중세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브뤼셀, '오피던스 로드, 킹 헨리스 로드'처럼 "유용하고 대단한 일을 한 사람 이름을 따서 길 이름을 붙이는" 런던, 그리고 도시의 모든 부분이 "패션 에디터들의 손에 전유"되어 있는 것 같은, "스타일로 도배되어" 있는 현대의 뉴욕. 


런던의 자율(? 남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는)이 낫다는 20대의 메리케이는 '저마다의 도시들이 저마다 갖고 있는 억압'을 인식하는 노년이 되었다. 그리고 리스먼의 '자율과 적응'의 이분법을 다시 생각한다. 적응보다 '자율'을 택한 이들이 낫다고? …… 


"적응과 자율은 조화를 이루기 어렵다. 하지만 데이비드 리스먼은 자율이 고통스러운 만큼 무의미할 수도 있다는 사실까지는 몰랐던 것 같다."(316쪽)


짧은 글 한편에 세계의 역사와 문화(시간과 공간), 그리고 자기의 삶의 경험과 감정과 판단들을 다 담아낸다. 




매거진의 이전글 유한성에 대한 예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