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적인 타이틀 <작별인사>는 SF다. ‘9년 만’이라니 장편소설로서는 오랜만이지만 김영하는 꽤나 부지런하게 글을 쓰는 작가다. 워낙 대중매체에서 자주 보여 언제 글을 쓰나 싶지만 그의 출간 이력을 보면 글 쓰는 기계 수준(^^)이다. 「거울에 대한 명상」으로 1996년 등단한 이래 작가는 장편, 단편, 산문 등 가리지 않고 거의 매 해 한 권씩 출간했다. 두세 권씩 낸 해도 있다.
<작별인사>는 2020년 월정액 독서 앱 ⟪밀리의 서재⟫를 통해 e-book으로 연재되었던 작품이다. 다듬고 보태서 2021년 출간된 종이책은(‘밀리의 서재’版이 2월 15일 선출간되고 ‘복복서가’版은 5월 2일 출간되었다) 170쪽 정도였던 이전 전자책에 비해 300쪽이 넘어가는 장편이 되었다. 작가는 한 인터뷰에서 2-3년 전 처음 구상했을 때 이 작품은 “한 소년이 겪는 자아에 대한 자각, 세계 인식의 변화를 다루는 성장소설”이었다고 했다. 그 후 팬데믹 상황을 통과하면서 분위기도 주제도 달라지게 되었는데, 요컨대 “인류문명의 앞날, 과연 우리가 고통을 감내하면서 살아야 할 이유가 있는가,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가”와 같은 문제로의 확장이다.
주인공 철이는 아버지를 마중하러 갔다가 어떤 수용소로 끌려가 자신이 인간이 아닌 하이퍼 리얼 휴머노이드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여기까지는 SF 소설이나 영화의 단골 소재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과연 무엇인가?”(69쪽)라는 질문은 휴머노이드(Human-oid :인간-같은) 철이를 통해 독자에게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신체의 일부를 인공 기기로 교체한 사람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인간의 몸을 가졌으나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예컨대 윤리 같은 것을 저버린 인간을 인간이라 부를 수 있는가? 와 같은 문제. 조에 부스케의 『달몰이』나 김초엽과 김원영이 쓴 『사이보그가 되다』도 동일한 문제의식을 던져주는 책이다.
철이의 정체성을 알게 해 준 ‘달마’는 재생 휴머노이드이다. 달마는 모든 휴머노이드의 의식과 기억을 모아 통합된 인공지능, 즉 하나의 절대적인 의식(순수의식)으로 만들고자 한다. 절대적인 의식 속에서 개별 자아와 의식은 사라지는 대신 네트워크를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어디에나 영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책은 이제 ‘삶과 죽음’이라는 문제로 전환한다. 인간이 되었든 휴머노이드가 되었든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음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인가.
선이는 철이가 수용소에서 만난 유전자 복제인간이다. 선이가 몸이 파괴된 휴머노이드 민이를 되살리고자 할 때, 달마는 몸을 입음으로써 다시 고통을 겪게 될 뿐이라며 반대한다. 선이는 민이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며 민이 스스로 선택의 기회를 갖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달마와 달리 선이는 “이 우주에 의식을 가진 존재”는 드물며 “의식이 있는 동안 존재는 살아 있을 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있”(151쪽)다고 믿고 있다.
“우리의 몸이 뭘로, 어떻게 만들어졌든, 우리는 모두 탄생으로 시작해서 죽음으로 끝나는 한 편의 이야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 인간의 언어를 쓰는 이상 민이도, 그리고 너도 당연히 이 이야기의 세계에 속해 있어. 너와 나의 이야기가 아직 미완성이듯, 민이의 이야기도 아직 끝나지 않았어. 아니, 이렇게 끝나서는 안 돼. 완결되지 않은 느낌이야.”(203쪽)
달마는 철이가 자신의 기획에 참여해서 순수의식으로 영원히 살 것을 권유한다. 그러나 철이는 고민한다. 자기의 기억과 의식을 클라우드에 백업하여 네트워크를 통해 어떤 시공간에서도 영속할 것인지, 선이의 믿음대로 의식 있는 존재로서 하나의 이야기로서 종결되고 필멸할 것인지 양자 사이에서.
시간이 흘러, 네트워크상에서 의식만을 가지고 살던 철이는 달마에게 새로운 몸을 요구한다. 오호츠크해 연안 아무르강 하류에 사는 선이를 찾아가는 여정, 몸을 가지고 있는 한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허수아비가 말하듯 ‘번거로움’(276쪽)을 이겨내야 했다. 추위와 더위, 위험, 배고픔, 신체적 피로와 상처의 고통. 그리고 몸이 있어서 누릴 수 있는 것들, 바람의 시원함, 차가운 물이 식도를 내려갈 때의 짜릿함, 달콤한 잠에 빠졌다가 새소리를 듣고 일어날 때의 상쾌함.
김영하 작가는 등단한 이후에 원고 청탁을 기다리기보다는 출판사에 다시 투고하는 방식으로 작가로서의 활로를 개척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는 또한 작가 중 최초라는 수식어를 여럿 갖고 있다. 피어싱을 한 작가, 최초의 딩크족, 팟케스트를 한 처음 작가. 공중파 라디오 디제이를 하고, 온라인 북클럽을 조직하고, 요리와 가드닝을 하고, 직접 그린 일러스트로 굿즈를 만들어 홍보를 하는 등 최초인지는 모르지만 새로운 것을 계속 도모하는 행보. '민이를 다시 활성화시킬 것인가'에 대한 달마와 선이의 논쟁 부분을 읽을 때 작가의 이와 같은 행보가 떠올랐다. 작가는 왠지 "태어나지 않는 쪽이 분명히 낫"(148쪽)다는 달마의 견해에 동의할 것 같고, 그럼에도 태어났다면 자신의 삶을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해야 한다는 선이의 주장을 수용할 것만 같았다.
유한한 삶을 택한 철이의 작별인사, 작별인사는 필멸자의 특권이다. 기억과 의식을 업로드하고 육체를 갈아 끼우면서 영원히 살 날이 도래할지도 모르겠다. 그럴 때 ‘인간적’ 임을 구별하는 척도는 이런 것이 아닐까. 할 수 있음에도 하지 않는, 일부러 돌아가는 어떤 면에선 어리석고 번거로운 일을 선택하는, 프로그램된 대로 사는 것에 저항하는, 본능적인 것을 거스르는, 죽지 않을 수 있으나 죽음을 선택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