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향지 Jun 06. 2023

시대는 변하고 있으므로

"아무것도 없으면 잃을 것도 없어

이제 눈에 띄지도 않고 감출 비밀도 없는 사람이지."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뒤 학교에 갔을 때 책상 위는 깨끗했다. 아이들은 민진을 힐끗대기만 할 뿐 그녀에게 직접적인 가해를 하진 않았다. 가해를 한다고 해도 이제 그 정도는 이제 민진에게 큰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민진은 이제 누구의 시선도 별로 신경쓰이지 않았다. 그녀는 성큼성금 선예에게 다가갔다. "나... 할 말이 있어."


선예는 주위 눈치를 보며 쭈뼛거리더니 예전과 사뭇 다른 눈빛으로 민진을 바라봤다.

"너 그 동안 어떻게... 연락하려다 말았어."

"아니, 그 말을 하려는 게 아니고... 이재 오빠에 관한 건데... 나 그 오빠한테 차였어. "

"응?"

"너랑 오빠가 사귀기 며칠 전에 나 오빠한테 고백 받았다고 생각했는데... 네가 오빠랑 만나길래 혼란스러웠어. 네가 진짜 오빠와 사귀는 게 맞는지, 이재 오빠가 너한테 진짜 고백한 게 맞는지 의심이 들더라. "

"고백을 받았다고 생각했다고?"

"어. 고백인 줄 알았지. 근데 아니었어. 사귀고 싶다기보단 그저 챙겨주고 싶은 후배였을 뿐이래. 진짜 고백이 아니라 장난같은 거였나봐. 아무튼 너와 오빠와의 관계 의심해서 미안해."

"민진아..."

선예는 무릎을 꿇고 앉더니 펑펑 울기 시작했다.

"미안해. 그때 너한테 거짓말 해서... 그 오빠가 나한테 고백한 건 아니야. 내가 일방적으로 만나자고 했었어. 미안해. 자존심이 상해서 그랬어."

민진이 울어대는 통에 민진이 차마 그간 있었던 일들을 말할 겨를 없이 쉬는 시간이 끝나버렸다.


교실로 들어온 담임 선생님은 수업이 끝나고 민진을 교무실로 불렀다.

교무실 문을 열자 몇몇 아이들이 또 다시 민진을 힐끗거렸지만 민진은 그다지 신경쓰이지 않았다.

선생님은 민진을 가련하다는 눈빛으로 올려보더니 전과 다르게 의자를 가져와서 민진을 앉히곤 손을 잡았다.

"시간이 지나면 다 괜찮아 질거야. 그리고 나는 믿어. 너는 그냥 사고를 당했을 뿐이라는 걸. 그렇지?"

민진은 입을 앙다물며 말했다.

"지금 의심하시는 거에요? 사고 맞아요. 그리고 저는 괜찮으니 신경쓰는 척 하지 않으셔도 되요."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다. 평소에 입을 꽉 다문채 어떤 개인적인 이야기나 감정을 말하지 않아왔던 민진이었다. 더구나 이런 중차대하고 조심스러운 문제 앞에선 더더욱 말을 삼갈 것이라고 생각했던 담임이었다. 담임은 민진이 나가는 모습을 빤히 바라보며 생각했다. '대체 저 아이의 내면에선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건가?'


민진은 교무실로 나오려다가 자신을 지켜보다가 숙덕이는 두 명의 아이들의 대화소리를 들었다.

"뭔가 무섭지 않니? 어떻게 괜찮다고 말해?"

"사실 쟤가 아빠를 죽인건데 엄마가 뒤집어 쓴거라며?"

"그럼 엄마가 딸 대신 감옥에 가 있는거야?"

민진은 교무실을 나가려다 말고 눈을 질끈 감고나서 돌아서서 쏘아붙였다.

"누가 누굴 죽여? 너희가 보기나 했어?"

그리곤 교무실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향해 있는 힘껏 말했다.

"사고였고요. 저랑 엄마는 피해자입니다. 더 이상 이런 일로 관심 가져주는 척 하지 마세요."


민진이 돌아서는데 교무실 벽 옆에 있는 포스터에 자연스레 눈이 갔다. 이재 오빠가 말했던 대회였다. 포스터엔 전국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백석 글짓기 공모전' 내용이 자세히 쓰여있었다.  

작가의 이전글 우린 승리하리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