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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Mar 02. 2021

명동 뒷골목 스케치

<마음으로 보는 그림 이야기>


∙ 단상_흡연구역


  소공동 롯데백화점 주차장 가는 길,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웨스턴 조선호텔이다. 어렸을 때부터 명동과 롯데백화점은 가끔 왔지만 이쪽 길은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이곳을 지나다가 굴국밥집 간판을 보고 늦은 점심을 먹으려고 편의점 골목으로 들어갔다. 여름이면 작은 식당 사이에 자리 잡은 에어컨 실외기가 후끈한 열기를 뿜어내는 전형적인 구도심의 뒷골목이었다. 명동이기 때문에 유동 인구가 많아 음침한 뒷골목에도 식당이 들어설 수 있었을 것이다. 모퉁이를 돌자 남해 굴국밥집이 보였다. 순간 식당 앞으로 걸어갈 수가 없었다. 마치 봄날에 벚꽃 잎이 떨어진 것처럼 바닥에 무수히 많은 담배꽁초 때문이었다. 담배꽁초는 한쪽으로 몰려 있는 게 아니라 넓게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큰길에서 굴국밥집으로 진입하는 골목에는 담배꽁초가 없었다. 모퉁이를 돌면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는 것은 쓰레기를 버리는 심리와 같을 것이다. 깨끗한 길에 함부로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은 없지만 쓰레기가 있으면 부담 없이 버리게 된다. 더구나 이곳은 큰길에서 보이지 않는 빌딩의 틈이기 때문에 눈치 보지 않고 편하게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공간이 된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담배꽁초의 양으로 봐서는 많은 직장인이 점심을 먹고 뒷골목으로 들어와 담배를 피우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듯했다. 요즘 업무공간에 흡연실이 있는 직장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점심을 먹고나서 퇴근할 때까지 필요한 니코틴을 보충하기 위해 한 개비가 아니라 연속 두 개비를 피우고 사무실로 들어가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내가 바닥에 담배꽁초를 관찰하는 도중에도 몇몇 행인이 벽에 기대서서 스마트폰을 보며 담배를 맛있게 피우고 거리낌 없이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고 사라졌다. 식당의 입장에서는 자기 가게에서 밥을 먹고 나간 손님에게 대놓고 골목에서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다음날이면 다시 밥을 먹으러 올 손님이니까. 뒷골목에는 재떨이가 없었는데 설치하지 않은 것은 좋은 생각이었다. 재떨이가 있었다면 더 지저분해졌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고 나면 으레 침을 뱉기 마련이므로 재떨이에 시커먼 재와 침이 범벅되어 말라붙으면 청소하기 더 힘들어진다. 아마 식당에서 빗자루를 들고나와 주기적으로 낙엽 치우듯이 청소하는 게 현명할 것이다.  

  일 년 후 취재를 위해 그 뒷골목에 다시 갔다. 골목의 입구부터 금연표지판이 여러 군데 붙어있었다. ‘담배연기 싫어요. 간접흡연으로 이웃들이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중구보건소.’ 그동안 누군가 민원을 넣었고 보건소에서 계도를 하는 듯했다. 또 변한 것은 재떨이가 4개나 생겼다는 것이다. 커다란 업소용 고추장, 식용유 깡통에는 담배꽁초가 가득 차 있었다. 재떨이의 등장으로 바닥에 담배꽁초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밟히는 것이 담배꽁초였다. 흡연의 마무리는 담배꽁초를 바닥에 던지고 발로 비벼 꺼야 제맛인 것이다. 나는 골목 안쪽 계단에 앉아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그들은 검지와 중지에 낀 담배를 엄지로 밑에서 톡톡 튕기고,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이고 눈을 찌푸린 채 뿜어내면서 한결같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한 사람이 뒷골목을 떠나고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해가 넘어가는 뒷골목에 청회색 빛 담배연기가 어두워지는 차가운 공기 속에서 끊임없이 맴돌았다.    길에서의 흡연이 혐오의 대상이 되었고 죽음을 앞당긴다고 경고해도 흡연인구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흡연자가 꼭 폐암에 걸리는 것도 아니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고 폐암에 안 걸리는 것도 아니다, 니코틴 중독자들은 날카롭고 격한 삶의 현장에서 집중력을 발휘해야 할 때, 그리고 긴장을 풀고 잠시 휴식할 때 담배가 없으면 정신세계가 붕괴된다. 담배 연기를 빨아들여 폐 속 깊숙이 집어넣었다가 한숨 쉬듯이 길게 뿜어내야 한다. 

  차라리 담배 종자를 개량해서 향처럼 태우면 좋은 향이 났으면 좋겠다. 담배 연기를 마시면 폐가 튼튼해 졌으면 좋겠다. 문제는 흡연자의 몸으로 들어갔다가 나온 담배 연기는 역겹다는 것이다. 금연구역이 점차 늘어나고는 있지만 길을 가다 원치 않은 역겨운 담배연기를 마시는 경우가 허다하다. 

  얼마 전 보행자들의 간접흡연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흡연실을 설치해 금연과 흡연 공간을 명확하게 구분하는 ‘국민건강증진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되었다. 금연구역이 늘어나고 있지만 흡연을 할 수 있는 흡연실이 미비한 결과 건물 밖 길에서 흡연하는 흡연자가 늘어나면서 보행자가 간접흡연에 시달리는 풍선효과가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보행자가 통행하는 도로에서 흡연을 금지하고 위반 시 과태료를 부과하는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도 발의되었으나 아직 오리무중이다. 

  서로 배려하고 흡연 예절을 잘 지킨다면 흡연은 판타지를 제공하는 좋은 기호식품이다. 공기 중으로 확산하는 연기를 보면 몽환적이어서 잠시나마 현실의 시름을 벗을 수 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등장인물이 적절하게 담배를 피워 물어야 연기가 살아나고 이야기가 더 재미있어진다. 배우가 담배를 입에 물고 볼이 홀쭉해질 정도로 담배연기를 빨아들일 때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들으면 온몸에 소름이 돋고, 담배 연기를 코로 뿜어내며 위스키를 마시는 장면을 보면 머릿속이 몽롱해진다. ■



∙ 스마트소설_연기벌레의 충동


  회사 건물 옥상 물탱크 뒤에 숨어 마지막 담배 한 개비를 꺼냈다. 옥상은 옷에 담배 냄새가 덜 배기 때문에 적당한 장소였다.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미세먼지에 잠긴 도시는 불그스름했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연기를 깊이 빨아들였다가 길게 내 뿜었다. 담배연기가 차가운 대기에 맴돌았다. 마구 손을 휘저어 담배연기를 퍼뜨렸다. 옥상에 올라온 누군가에게 발각된다면 큰일이었다. 담배 연기를 깊게 빨아들여 삼킨 다음 또 한 번 깊게 빨아들였다. 쾌감이 물밀 듯이 밀려들었다. 담배 연기를 입에 머금고 동그란 고리를 만들어 위로 올리자 날아갈 듯 가벼워졌다. 

  미세먼지의 농도가 날로 증가하면서 대기오염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간접흡연에 대한 임상 피해사례가 쏟아졌다. 흡연자는 의지 박약자이고 멸시받고 비난당해도 마땅한 존재가 되었다. 올해부터 담배 금지법이 발효되었다. 담배를 피우는 자, 담배를 재배하거나 유통 판매하는 자, 모두 징역형이었다.  

  퇴근하고 담배 암거래가 이루어진다는 골목을 어슬렁거렸다. 경찰이나 단속반처럼 보일지도 몰라 상점 윈도에 비춰보았다. 직장에서 바로 퇴근한 평범한 회사원의 모습이었다.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지나가는 사내가 딜러처럼 보였다. 사내를 따라 골목 안으로 더 들어가자 푸른빛이 도는 연기가 보였다. 바람을 타고 담배 내음이 휘익 스쳐 지나갔다. 가슴 속에서 푸른 연기의 씨앗이 발화되는 순간 골목에서 튀어나온 사내가 나를 가로 막았다. 

  “뭐, 필요한 거 있으세요?”

  사내의 옷에서 담배 냄새가 났다. 사내가 전문 딜러가 아니더라도 사내가 가지고 있는 담배 몇 개비라도 사고 싶었다.

  “담배, 구할 수 있을까요?”

  “담배를요?”

  나는 입이 바짝 말라 타들어 갈 것 같았다.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한 개비라도 좋습니다.”

  사내는 신분증을 꺼내 내 코앞에 내밀더니 내 어깨를 툭 치면서 말했다. 

  “순순히 따라오는 게 좋을 거야.”

  사내에게 붙들려 승용차를 타고 <금연연구소>간판이 걸린 곳으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니코틴 검사 양성이 나왔다. 최근까지 담배를 어떻게 구해서 어디서 피웠는지 조사를 받았다. 다행히 기소되지 않았고 흡연자들을 위한 갱생 수용소로 넘겨졌다. 빛이 하나도 없는 방엔 먼저 잡혀 온 수십 명의 흡연자가 꿈틀대고 있었다. 흡연자들은 신참이 들어오면 몰려들어 몸에 밴 담배 냄새를 들이마시곤 했다.

  며칠 후 입소식이 있었다. 흡연자들은 죄수복을 입고 운동장에 도열했다. 단상에 오른 수용소장이 벗겨진 이마가 빛났다. 그는 금테 안경을 벗어 렌즈를 닦으면서 가느다랗게 뜬 눈으로 흡연자들을 노려보았다. 이윽고 훈화가 시작되었다. 

  “여러분은 오늘부터 산업역군이십니다. 정부에선 담배를 전량 수출하여 부강한 나라를 만들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저 뒤로 보이는 담배 공장에서 하루 2교대로 근무하면서 갱생프로그램을 충실히 이수해야 이곳을 나갈 수 있습니다.”

  흡연자들은 담배공장에서 하루 12시간씩 벌레처럼 기어 다니며 담뱃잎을 가공하고 만들어진 담배를 포장하는 일을 했다. 매일 밤 수용소를 나가 맛있게 담배 피는 상상을 하며 하루하루를 버텼다. 거기서 겪은 갱생프로그램은 생각하기도 싫다. 수용소를 나오며 작성한 비밀유지 서약서도 걸리지만 그때의 일을 떠올리면 수치심과 모멸감이 물밀 듯이 밀려온다.

  일 년 만에 바깥세상으로 나왔다. 정부에서 일자리를 알선해 주었다. 거리 청소부였다. 매일 정해진 구역을 청소한다. 길바닥에 달라붙은 껌 때문에 고생이다. 껌을 종이 싸서 버리는 사람은 없다. 다 씹은 껌을 바닥에 뱉었을 때 바닥에 짝 달라붙는 맛이 예사롭지 않다고 한다. 알고 보면 누구나 독특한 취향이 있다. 독특한 취향들이 조화롭게 공존할 수는 없는 걸까. 

  요즘 껌 좀 씹는 사람들을 ‘찐득이’라고 부른다. 찐득이 들은 혐오의 대상이다. 껌을 씹지 않는 사람들은 찐득이들을 공격한다. 간이 콩알만 한 찐득이들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입을 다물고 오물거린다. 껌은 중독성이 강해 웬만해선 끊을 수 없는 모양이다. 바닥에 달라붙은 껌에 악성 바이러스가 서식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청소하다 바닥에 달라붙은 껌을 뗄 때 무척 조심스럽다. 길 바닥에 달라붙은 껌을 발견 했다는 민원이 들어오면 바로 출동해야 한다. 머지않아 정부에선 찐득이들을 잡아들여서 격리할 것이다. 가끔 담배 대신 껌을 씹어 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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