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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Sep 05. 2023

크리스마스 케이크

교보문고 eBook 10minutes 초단편 오디오북

  그는 케이크를 들고 영화관으로 갔다. 그녀가 보고 싶어 한 영화의 상영시간은 6시 30분이었다. 그가 영화관에 도착했을 때는 6시 정각이었다. 영화관 로비에는 지방 출장에서 바로 올라온 그녀가 한 손에 보스턴백을 나머지 한 손에 노트북 가방을 들고 힘겹게 서 있었다. 며칠 사이 그녀의 눈가엔 주름이 앉았고 헝클어진 머리카락은 가늘어 보였다. 지방 출장 때문에 크리스마스를 그와 함께 보내지 못한 그녀는 그를 발견하고 반갑게 손을 흔들다 가 그가 들고 온 케이크를 보고 한쪽 입꼬리가 올라갔다

  “나 줄라고 사 온 거야?”

  그의 머릿속에 둘이 먹기에 다소 큰 케이크 상자가 뜬금없어 보일 거란 생각이 스쳤다.

  “응, 너 케이크 좋아하잖아.”

  “요즘 들어 안 하던 짓을 하네.”

  그 케이크는 지난 금요일 회사에서 전 직원에게 선물한 케이크였다. 그는 그날 퇴근 무렵 케이크가 사무실에 배달되었을 때 반갑지 않았다. 케이크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케이크 상자를 들고 만원 지하철을 타는 게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직원들은 케이크를 들고 전부 퇴근했지만 그는 외근 나간 팀장을 기다렸다. 팀장은 퇴근시간이 넘어서야 백화점 쇼핑백을 들고 들어왔다. 팀장은 그가 올린 경비지출에 대해 결재를 하고 퇴근하면서 그에게 말했다.

  “메리 크리스마스.”

  팀장의 한 손엔 백화점 쇼핑백이 또 한 손엔 케이크 상자가 들려있었다. 그는 팀장이 나가고 나서야 자신의 케이크는 없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오늘 출근했을 때 회의실 선반에 케이크가 하나 있었다. 빨간 리본이 묶인 케이크는 금요일 전 직원이 받은 그 케이크였다. 케이크를 보니 의식하지 못했던 소외감과 은근한 기대감이 교차했다. 퇴근 무렵 회의실에서 월요일마다 하는 실적회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케이크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직원 수를 파악하여 케이크를 주문할 때 회사의 유일한 비정규직인 자신의 존재는 없었을 것이다. 그는 선반에 놓인 케이크의 사연이 궁금해졌다. 지난 금요일 누군가 가져가기 싫어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가 오늘 꺼낸 것일 수도 있었다.  

  팀장과 눈이 마주친 그는 고개를 숙이고 서류를 바라보며 회의에 집중했지만 온통 케이크 생각뿐이었다. 회의가 끝나고 나서도 그는 일어나지 않고 케이크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류정리를 끝낸 팀장이 그에게 말했다. 

  “저거 가져가서 먹게. 브랜드 케이크는 며칠 지나도 끄떡없어.”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팀장은 일어나서 선반의 케이크 상자를 가져와서 빨간 리본을 들고 가기 좋게 다시 묶으면서 말했다.

  “누가 챙겨놓은 게 아닐까요?”

  “남은 건 가봐. 가져가. 내가 책임질게.”

  “네……. 잘 먹겠습니다.”

  그는 퇴근하면서 케이크를 길바닥에 던져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렸으나 꾹 참고 지하철을 탔다. 지하철에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자신의 정체성을 느끼게 해준 케이크보다 케이크를 넙죽 받은 자신이 더 싫었다. 케이크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할 수도 있었는데 왜 어벌쩡한 태도로 넙죽 받았을까. 

  그와 그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시네마 빌딩 9층 상영관으로 올라갔다. 그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스마트폰 모텔어플을 열고 자신이 점찍어 두었던 모텔을 그녀에게 보여줬다. 그녀는 힐끔 사진을 보고 나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그녀의 입가에 묻은 생크림을 자신의 혀로 닦아 먹는 모습을 상상했다. 그는 케이크 상자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오늘, 네 생일 할까?” 

  9층 상영관 입구 창가엔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있었다. 그가 창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긴, 완존 스카이라운지네!” 

  검은 유리 밖으로 보이는 거리에는 선술집과 식당이 오밀조밀하게 엉켜 있었다. 그녀가 식당을 바라보며 말했다.

  “배고파. 케이크 먹을까?”

  “포크가 없는데.”

  “케이크 자르는 칼로 먹으면 돼.”

  “알았어, 내가 콜라랑 커피 사 올게.”

  그가 음료수를 사서 왔을 때 그녀는 케이크를 꺼내서 상자 위에 올려놓고 케이크를 노려보고 있었다. 다크 초콜릿 케이크는 반쪽만 남아있었다. 그 반쪽에는 손바닥만 한 케이크 토퍼가 아슬아슬하게 꽂혀있었다. 녹색 바탕의 토퍼에는 빨간 글씨로  ‘메리크리스마스 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대표 김재용’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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