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보문고 eBook 10minutes 초단편 오디오북
우연히 콘크리트 조각을 먹어 보았다. 철거 현장을 지나다 길가에 떨어져 있는 콘크리트가 맛있어 보인 것은 배가 무척 고팠기 때문이었다. 젊을 땐 돌을 씹어 먹어도 소화가 된다는 할아버지의 말이 생각났다. 손바닥 크기만 한 콘크리트 조각은 오징어 먹물을 들인 백설기 갈았다. 자갈이 여러 개 박혀있었는데 작은 것은 콩 같았고 큰 것은 대추 같았다. 손을 굴려 가며 입김으로 먼지를 털어 내고 혀끝으로 자갈이 떨어져 나가서 둥그렇게 파인 부분을 조심스럽게 핥아 보았다. 콘크리트는 침을 빨아들였다. 혀끝에 콘크리트 입자가 달라붙었다. 송곳니로 입자를 하나하나 으깨보았다. 바지락 거리는 것은 모래 알갱이 같았고 으스러져 버리는 것은 시멘트 같았다. 모서리 부분을 입에 넣고 침으로 불려서 한입 베어 물었다. 별사탕을 같은 덩어리가 들어오자 입안에 침이 가득 찼다. 깨물어 먹고 싶었지만 참았다. 잘못하면 어금니가 깨질 것 같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콘크리트는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얼음조각을 입에 물고 혀로 살살 굴려 조금씩 녹이듯이 그 맛을 감상했다. 콘크리트를 무슨 맛으로 먹느냐고 묻는다면 담백한 맛의 깊이를 아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심오하고 묘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페이스북에 콘크리트 사진과 맛에 대한 느낌을 올렸다. “처음 시작하시는 분은 가루를 내서 드시는 것이 좋습니다.”, “오랜 세월 건물을 지탱했던 콘크리트를 골라 가루를 낸 다음 물에 타서 매일 마셨더니 과민 대장 증후군이 사라졌습니다.” 반응은 뜨거웠다. 어느 페친은 밤에 정과 망치를 들고 신축 건물의 기둥을 쪼아서 먹어 봤다고 했고 또 다른 페친은 재료를 구해서 반죽한 다음 햇볕에 말리는 사진을 올렸다. 나는 직접 만들어 먹는 것도 좋지만 오랜 세월 풍화를 겪은 콘크리트가 더 깊은 맛이 날 거란 댓글을 달았다. 내 친구는 남들과 다름을 추구하고 남들보다 먼저 발굴하길 좋아하는 성격이 시대를 만난 거라고 하며 패키지를 예쁘게 개발해서 온라인판매를 해보자고 했다. 멋진 생각이지만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다. 안정적인 재고 확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는 요리법과 소스의 개발, 경쟁자가 생긴다면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의 문제 등 골치 아플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제일 큰 문제는 원산지 증명이었다. 소비자에게 상품에 대한 믿음을 어떻게 줄 수 있을까.
일단 저지르기로 했다. 시골에 계신 부모님은 내 사업구상에 걱정이 많았다. 요즘 사람들은 유행하거나 건강에 좋다고 해서 무작정 사 먹지 않는다는 부모님의 걱정에, 젊은 사람들은 환경과 세상에 미치는 영향까지 생각하기 때문에 성공할 거라고 안심시켰다. 친구는 열심히 패키지를 개발했다. 나는 매일 같이 망치와 정을 들고 철거 현장을 누볐다. 땀을 흘려 일해본 지가 얼마만인지 몰랐다. 내 곱던 손에 굳은살이 베이고 어깨는 쫙 벌어지고 피부는 구릿빛으로 변했다.
한 달 정도 지났을까. 가방 한가득 콘크리트 조각을 구해서 아지트로 돌아오자 친구는 울상이 되어 있었다. L그룹에서 식용 콘크리트 사업에 진출한다는 기사 때문이었다. L그룹 대체 푸드 사업팀은 수십만 평의 부지를 확보하고 식용콘크리트 연구에 들어간다고 했다. 대자본은 시멘트 공장에서 갓 나온 고운 분말을 쓰고 모래는 세척하여 소금기를 제거하고 다양한 소비자의 기호에 따라 매끄러운 자갈과 모난 잡석을 사용한 무공해 제품을 생산할 것이다. 친구는 행정고시를 준비한다며 고시원에 들어갔다. 나는 콘크리트를 포기하고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플라스틱을 종류별로 모아서 맛을 보고 있다. 구부렸을 때 부러지지 않고 하얗게 변하는 플라스틱 조각을 화분에 심고 물을 줬더니 새순이 돋았다. 새순을 잘라 입에 넣고 씹었다. 아주 질겼고 씹을수록 지독한 쓴맛이 우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