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탐색담 (스마트소설)
그녀가 외출하자 그는 빨랫감을 모아 세탁기를 돌렸다. 작년까지만 해도 주말이면 늦잠을 자고 일어나 세탁기를 돌리고 양지바른 베란다에 앉아 발톱을 깎았다. 세탁기를 먼저 돌리고 그 시간을 활용하여 무엇을 하는 것이 좋았다. 세탁기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발톱을 깎고 나면 시원한 바람이 발가락 사이를 지나가며 지난 한 주 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날려주었다. 하지만 직장을 구하고 있는 지금은 여유롭게 발톱 깎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그는 손톱깎이를 찾으려고 그녀의 화장대를 훑었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 수 없는 도구로 가득한 상자를 수석 거리다 자신이 몇 년 전 그녀에게 선물했던 향수를 발견했다. 먼지를 뒤집어쓴 유리병은 방치된 어항 같았다. 누런 향수를 한번 뿌려 보았다. 김빠진 맥주 냄새가 났다. 향수를 상자에 던지고 손톱깎이를 계속 찾았다. 세탁기에서 딸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주머니에서 동전이 빠진 모양이었다. 둔탁한 소리로 어림잡아 봤을 때 오백 원짜리 동전 같았다.
어지러운 화장대에서 손톱깎이를 찾을 수 없었다. 화장대 서랍을 열었다. 꼬리빗으로 빼곡히 들어찬 잡동사니 해적거리다가 스타킹을 둘둘 말아 놓은 뭉치를 건드렸다. 스타킹 뭉치가 부르르 떨리면서 서랍이 떨리자 잡동사니들도 덩달아 떨렸다. 스타킹 뭉치는 혐오스러운 동물 같았다. 세탁기가 물을 빼내고 빨랫감을 쥐어짜느라 진동하기 시작했다. 진동에 진동이 더해지자 입안이 바싹 마르고 식은땀이 났다. 자세히 보니 스타킹 뭉치는 털 빠진 쥐새끼 같았다. 그것을 조심스럽게 잡은 다음 스타킹을 풀고 안에 든 것을 꺼냈다.
그것은 손바닥만 한 바이브레이터 겸 딜도였다. 마감이 조잡하지 않고 모터의 성능이 좋은 거로 봐서 가격이 제법 할 것 같았다. 건전지로 작동하며 두 개의 촉수가 동시에 움직여 섬세하게 자극하는 방식이었다. 그는 파워 버튼을 겨우 찾아 진동을 멈추었다. 그것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원격으로 작동되는 기능도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것을 통해 서로 교감할 수 있다는 사실에 세탁기의 막바지 진동이 점점 크게 느껴졌다.
그는 탈수가 끝났다는 알람 벨 소리를 듣고 나서도 침대에서 일어날 줄 몰랐다. 그것을 사용하는 그녀를 상상하면서 여러 가지 자세를 취해보았다. 누구나 자위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녀가 원하는 성적 판타지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자신이 그녀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것의 조절 버튼을 이것저것 눌러보았다. 진동이 너무 세밀해서 자리자리하다가 묵직하게 밀려오는 진동에선 자신도 모르게 교성이 삐져나왔다. 포르노에서 봤을 때는 재미있는 도구였는데 직접 작동해 보니 자신을 대신하고도 남을 만큼 위협적인 성능이었다.
그는 그것을 다시 스타킹에 넣어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빨래를 널었다. 세탁기에서 나온 동전은 자유의 여신상이 그려진 1달러였다. 그녀는 최근 팀장으로 승진하여 해외 출장을 다녀온 이후로 야근이 잦았다. 그는 그녀가 그것을 장만한 것이 해외 출장과 관련이 있는지 추리하다가, 자신의 실직과 관련 있을 거로 짐작하다가, 그것을 언제 사용하는 것일까 하는 끝없는 의문에 빠졌다. 그는 동전을 손바닥에 올려놓고 탁탁 올려 쳐 보았다. 동전은 보기보다 가벼웠다.
그녀는 토요일 특근을 마치고 저녁을 먹고 들어왔다. 그는 커튼을 치고 따뜻한 빛깔의 조명을 켜고 식탁엔 그녀가 좋아하는 꿀이 발린 땅콩과 기네스 맥주 캔도 올려놓았다. 그녀는 샤워하고 나와 식탁에 앉아 맥주 캔을 땄다. 그는 영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의 맥라이언처럼 오르가슴을 연기한 적 있어?”
그녀는 맥주를 마시고 나서 입가에 묻은 조밀한 거품을 혀로 핥고 나서 말했다.
“내가 뭣 때문에…. 그런 수고를 해.”
“요즘, 나한테 불만 없어?”
그녀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머리에 감고 있던 수건을 풀었다. 그녀의 풍성한 머리카락이 출렁거렸다. 굵은 웨이브가 살아있는 머리칼은 언제 봐도 매혹적이었다. 그는 그녀를 노려보며 대답을 기다렸다.
“없어.”
그녀는 손에 든 기네스 맥주 캔을 살살 돌렸다. 기네스 특유의 부드러운 거품을 만들어 내는 질소 구슬이 딸그락거리며 그를 자극했다.
“말해봐, 말을 해야 알지.”
“없다니까, 오늘 왜 이렇게 피곤하게 굴어.”
“너는 구렁이를 서랍에 넣어두고 먹이를 주고 있어. 구렁이는 점점 자라 이무기가 될지도 몰라.”
“요즘, 판타지 소설 봐?”
“판타지가 아니라 현실이야.”
그녀는 기네스 맥주 캔을 힘차게 돌리고 나서 남은 맥주를 단숨에 비우고 식탁에 마침표를 찍듯이 내려놓았다. 기능을 다 한 질소 구슬이 텅 빈 캔에 주저앉는 소리가 났다. 그녀가 일어나며 말했다.
“피곤해, 구렁이도 싫고 이무기도 싫어 일찍 자야겠어. 내일도 출근해야 해.”
그는 식탁에 혼자 남아 맥주를 마시다 침대에 누웠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몸을 더듬었다. 그때 윗집에서 세탁기가 돌아가며 일으키는 미세한 진동이 벽을 타고 내려왔다. 그는 손을 빼고 돌아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벽을 타고 내려오던 진동이 사라지고 겨우 잠이 들 무렵 침대 옆 작은 탁자에 놓여있던 그녀의 스마트폰이 힘차게 진동했다. 그는 일어나 스마트폰을 집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였다. 그는 그녀를 깨우지 않았다. 스마트폰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진동했다. 그는 스마트폰을 이불 안으로 넣어 자기 사타구니에 가져다 댔다. 자신이 세탁기 안에서 탈수되는 느낌이었다. 그때 미세한 진동이 어딘가에서 피어났다. 그는 심장박동이 빨라졌다. 화장대 서랍을 노려보며 서랍 속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전에 무슨 수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