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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욱 Sep 05. 2023

밥이나 잘 챙겨먹고 다녀라

암마 생각(스마트소설)


  “잠깐 일어나 보세요.”     

  고운 흙이 적갈색이었다. 소나무 그늘에 서서 어머니가 30년 동안 얼마나 고운 흙이 되었을까, 궁금했다. 관은 깊게 묻혀 있었다. 인부들은 흙이 부드럽다며 가뿐하게 삽질을 시작했다가 어깨 정도까지 흙을 파내어도 관이 나오지 않자 말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품삯에 막걸리 값을 더 얹어 달라는 속셈이었다. 요즘은 이렇게 깊게 매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관 위에 뿌렸던 석회층도 단단하고 두터웠다. 인부들은 석회가 시멘트보다 더 단단하다고 가쁜 숨을 내쉬었다. 매장 때 웃돈을 주고 석회를 많이 뿌렸으니 걷어낼 때 역시 웃돈이 들어갔다.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인부는 말도 많았고 땀도 많이 흘리고 곡괭이질을 하고 나서는 달리기를 한 것처럼 숨을 크게 내쉬었다. 묵직한 석회 솜이불을 덥고 편안히 잠을 자던 어머니가 곡괭이와 삽질에 놀라고 햇빛에 눈이 부셨을 때는 개장의 첫 삽을 뜨기 시작한 지 3시간이 넘었을 때였다. 배에서 밥을 달라고 꼬르륵거렸다. 아침을 단단히 먹고 올 걸 서둘러 오느라 챙겨 먹지 못했다.      


  “더 좋은 곳으로 모실게요.” 

    

  유골은 흑갈색이었다. 관으로 보이는 썩은 나무와 같은 색이었다. 뼈의 단면이 섬유질 느낌이 나서 금방 땅에서 캔 칡뿌리 같았다. 인부는 고무장갑을 끼고 아직 썩지 않은 천, 그러니까 수의는 아니고 관을 덮었던 천에 엉켜 있는 유골을 추려냈다. 관이 썩으면서 겉에 싸인 천이 내려앉아 유골과 엉켰을 것이다. 유골은 종이상자에 한지를 깔고 담았다. 막걸리 포장 상자라 모양새가 좋지 않았다. 유골을 추려내는 일은 나이가 지긋한 반장격인 인부가 꼼꼼하게 작은 뼈마디까지 추려냈다. 일이 끝나자 수고비 봉투를 받은 바람잡이는 그 자리에서 돈을 세보더니 일이 힘들었다고 더 달라 하였다. 실랑이하기 싫어 만 원짜리 몇 장을 더 얹어주었다.     

 

  “찜질방 불가마 좋아하셨죠.”

     

  유골을 안고 간 화장장은 쉴 틈이 없이 돌아갔다. 저승 가는 길도 길게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줄 서서 기다리는데 배에서 밥을 달라고 꼬르륵거렸다. 배식대 앞에서 식판을 들고 줄선 기분이었다. 요즘 장례대행업체는 화장 예약을 잡으려고 인터넷 접수를 하는 아르바이트를 쓴다고 한다. 예약하지 못해서 오일장을 치르는 경우도 많다고 하니 죽어서 불가마에 들어가기도 쉬운 일은 아니다. 화장장에서도 기다리는 시신은 냉동고에 있다가 불가마에 들어간다. 어머니는 시신이 아니라서 바로 불가마로 들어갔다. 불가마에 들어갔던 어머니 유골이 회갈색 숯처럼 변해서 나왔다. 1,000도에서 30분간 태워도 형체가 남아있는 것을 보면 인간은 참 질기다. 유골은 다시 분쇄의 과정을 거쳤다. 저승으로 떠난 육신의 잔재가 어찌 이리 끈끈하고 질길까 생각하는데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잘 끝났는지 궁금한 모양이었다. 아내는 외국 나간 자식이 거기서 살지도 모르는데 일찌감치 폐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셔서 화장했다. 어머니 묘를 정리하고 나니 시원섭섭한 기분이었다. 

     

  “편안하게 주무세요. 다시는 안 깨울게요.”      


  분쇄된 유골을 화장장 뒤편 안식처에 뿌리려고 갔다. 그곳 층계에서도 줄을 서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한지에 싼 어머니의 뜨끈뜨끈한 유골 가루를 배에 대고 있었다. 어릴 적 장판이 시커멓게 변한 시골집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린 기분이었다. 줄 서서 기다리는데 배에서 밥을 달라고 또 꼬르륵거렸다. 홀어머니와 함께한 어린 시절은 가난하여 무엇을 받기 위해 항상 줄을 서야 했다. 줄을 서면 항상 배가 고팠다. 안식처로 올라가는 긴 줄에서는 속이 살살 쓰리기까지 했다.

  어머니의 잔재는 화장터 안식처에서 머물러 있다가 이 땅 어딘가에 뿌려질 것이다. 비가 오면 대지에 녹아 들것이다. 커다란 숙제 하나를 끝낸 것 같아 홀가분했다. 어디 가서 소주에 고기를 구워 먹고 싶었다. 살아 있을 때 잘 먹어 두어야한다. 땅도 뭔가를 길러내려면 잘 먹어야 하는데 이 엄청난 뼛가루가 땅에 스며든다면. 문득 나는 죽은 다음 땅에 내 뼈와 살을 제공해서 열매를 맺고 싹을 틔우게 하고 싶단 생이 들었다. 하지만 누가 나를. 더워서 셔츠 단추를 풀고 보니 가슴이 데워져서 핑크빛이다.      


 “생각해 보니 살아계실 때 한번 안아 드린 적이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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