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상라빛 Sep 28. 2022

희뿌연 시야 속에서

나는 시력이 좋지 않다. 마이너스까지는 아니지만 0.2~0.3 정도로 운전할 때 안경을 끼지 않으면 자칫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시력이다. 시력이 나빠진 건 대학 진학 준비할 시점부터인 것 같다. 학원에서 칠판이 보이지 않아 공부할 때만 안경을 썼다. 그러다 보니 안경은 외출 필수품이 되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안경 쓰는 것이 패션에도 그다지 좋진 않았다. 한참 라식, 라섹 붐이 일어날 때도 시술은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생활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기본적으로 시야가 뿌옇다 보니 사람 얼굴을 인식하지 못해서 오해를 산적도 많다. 5미터 경계에 있는 사람과 사물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치기 일수여서 인사성이 없다는 이유로 선배들에게 꾸중을 많이 듣기도 했다. 그때는 그것이 상당히 신경이 쓰였는데 나이를 먹고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그 불편함이 익숙함을 넘어서 편해지기 시작했다.


적당히 뿌연 시야  덕분에 사람들의 세밀한 표정 변화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사람들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자유로움에 개이득이 된 것이다. 그렇다고 내 MBTI가 지극히 내향성을 가진 성격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기 좋아하고 그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ESFJ "사교형"에 가까웠다. 근데 왜 과거형이냐고? 20년간 사회생활을 하면서 깨달은 불변의 법칙은 사람 마음이 다 내 맘 같지 않다는 것이다. 열린 마음과 순수한 의도를 가진 사람은 없었다.


"길가다 네가 생각나서 전화했어"

설레는 전화를 걸어줄 사람은 없었다.


저마다의 적당한 의도와 수단으로 관계를 맺고 적당한 이익을 쫓아 사람을 갈아타는 방법으로 사회생활 잘한다고 평가받고 있었다. 한번 관계 맺은  인연을 소중히 여기며 의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건 오히려 소외당하기 일수란 사실을 난 마흔이 되어서야 알았다. 친했던 사람들로부터 몇 번의 상처가 이어졌고 마음을 쉽게 주기가 꺼려지게 되었다. 속내를 보여주는 것도 읽히는 것도 신중을 기하며 사는 법을 익혔다. 적당히 인사만 나누며 연락처는 묻지 않는 외톨이형으로 변했다. 안부를 묻고 답하는 일상적이고 지극히 평범한 말들이 의미 없는 메아리로 돌아온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래서 나도  굳이 묻지 않고 필요한 말들만 하게 되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모두가 그랬다.


안도감이 들면서 씁쓸함이 감돌았다.


어쩌다 전원일기처럼 서로의 속내를 다 알고 도움이 필요하면 발 벗고 나서는 그런 관계는 드라마에서나 나오는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지금 시골에서도 그런 모습은 볼 수 없는 판타지 말이다. 서로 신경 안 쓰고 도움 안 받는 안개 낀 현실 속에서 난 오히려 편안함을 느낀다. 오늘도 그렇게 난 하루를 시작한다. 희뿌연 시야 속에서 적당히 안 보이는 그런 사람으로 말이다.




2022년 9월 28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