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를 관통하는 평행이론
중2 겨울방학. 친구네에 놀러 갔다가 서가에서 발견한 책이었다. 세계명작 전집에 있을 법도 한데, 집에 있던 목록에는 없었다. 친구는 친절히 빌려주었고, 나는 단숨에 읽었다.
꽤 호흡이 긴 소설이었지만, 치밀한 묘사에 빠져들었다. 오만하지만 열정적인 캐서린과 히드 클리프의 사랑이 왠지 모르게 가슴에 콕 박혔다. 내 책이 아니어서 다독을 하진 않았고, 책을 좋아해서 다른 소설들도 꾸준히 읽었지만, 대입에 합격하고 갔던 영어학원에서 닉네임을 ‘캐서린’이라고 지었다. 당연히 폭풍의 언덕에서의 그녀 이름이었다.
그리고 작가 에밀리 브론테를 기억했다.
그 해는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해였다. 대한민국은 온통 긴장 속에 행사 준비를 하고 축제를 마쳤다. 들뜨고 신난 나라 분위기와는 다르게 나의 생활은 여전히 숨 막혔다.
지금과는 다르게 학교에서는 매달 시험을 치렀고, 성적은 오르내렸다. 그거야 당연한 것 아닌가. 시험은 잘 치를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는 거지. 그러던 2학기 첫 시험을 치른 후, 생전 내 공부나 성적에 관심도 안보이던 아빠가 몇 개를 틀렸는지 물었다. 이 과목은 어떻고 저 과목은 어떻고 미주알고주알 하나하나 들으시더니 정말 몰라서 틀린 건 하나네. 그럼 한 대는 맞아야겠다 하더니 종아리를 걷으라 했다. 그리고 매라고 가져온 것은 동생이 가지고 놀던 알루미늄 야구배트였다. 그 한 대를 맞고 퍽 주저앉았다. 독하게 이 악물고 울지도 않았다. 다음 날부터 종아리엔 피멍이 선명했고, 우리 학교는 교복자율화이긴 했지만, 반드시 스커트를 입어야 하는 학교였다. 아직 찬바람이 불기 전. 학교 가는 게 죽기보다 싫은 마음인데,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내 나이 만으로 열 셋이었다.
큰 아이가 중2가 되는 해에 코로나는 전 세계에 확산이 되었다. 아이들 학교는 온라인 수업과 등교 수업이 교차되며 일정이 엉망이 되었다. 늘 조금씩 스스로 학습하던 아이라 온라인 수업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아침 등교시간에 종종거리지 않으니 점심시간 맞추어 식사 준비를 해주어야 한다는 것만 제외하면, 오히려 더 나은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조금 아슬한가 싶긴 했지만 아이는 성적이 곧잘 나왔다. 자율 동아리도 결성해서 나름대로 잘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나는 암 선고를 받았다. 계속해야 하는 상담과 검사가 이어졌다. 다행히도 수술 날은 방학 때로 잡혀서 어떻게든 일정 조정을 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들의 학습 상황은 우선순위가 아니었다. 그저 엄마의 상황을 이해하고, 생활에서 고스란히 받아주는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래도 방학에는 아이가 집안일에서 손을 놓을 수 있기를 바랐다. 입원기간 동안에는 남편이 있을 거라, 이후에 시누이가 와주기로 했다. 우린 누구보다 좋은 자매다. 큰 조카는 내 두 아이의 중간 나이라 늘 잘 어울리고, 작은 조카는 어리긴 해도 큰 아이를 좋아하고 잘 따랐다.
시누이는 천성이 착하고 부지런하다. 그런데 나와 있을 때면 어린애가 되곤 했다. 본인의 집에 있을 때조차 종종 보이던 모습이었다. 그래도 내가 아픈 상태이니까 평소 자기 가정을 꾸리는 것처럼 어른의 몫을 하리라 기대를 했다. 그러나, 정말 크나큰 오판이었다. 누워있는 내게 매 끼 계속해서 메뉴와 양을 물어보는 것을 보다 못한 큰 아이가 본인이 요리를 도맡기 시작했다. 내 계산으로는 이 여름에는 해야 할 공부가 좀 있는데, 아이는 요리와 동아리 활동과 바다에 모든 시간을 투자했다. 시누이는 아이의 요리를 격찬하며 함께 바다에 나가 으쌰 으쌰 즐기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작은 조카가 큰 아이에게서 떨어지려 하지 않아서, 큰아이는 종종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다.
방학이 끝나가면서 시누이 가족이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도 일상으로 돌아갔다. 수술한 지 한 달이 되어 검진을 다녀온고 난 후부터는 출근을 하기로 했다. 체력은 생각보다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약과 영양제로 버티고 있었지만, 이전처럼 아이들을 케어하는 것은 무리였다
아이가 풀어둔 수학 문제를 채점하다 보니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첫 번째 푼 것은 맞는데, 두 번째 세 번째 복습을 한 것은 틀린 경우가 있었다. 이건 무슨 의미일까? 물어보니 답안이 맞는 것조차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한다. 답은 나오지 않고 속만 답답한데, 중간고사를 치렀다. 아이의 수학이 펑크가 났다. 상상해본 적이 없는 점수가 나왔다. 본인도 당황하고 있었다. 다독여서 잘해보자 했지만, 기말고사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처진 학습은 문제점을 찾아서 다시 공부하면 된다. 성적은 다시 올릴 수 있다. 하지만, 내심 목표로 하고 있던 학교에는 지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학교 선생님조차 많이 아쉬워하셨지만, 큰 아이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어쩌면 예견된 것일지도 모른다. 사교육을 하지 않고 선행도 많이 하지 않던 상황에서 여름방학을 통째로 놀아버렸다. 어쩌면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제대로 수업을 한다고 생각했던 것이 오산일지도 모른다. 아니다. 내가 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챙길 수 있었던 것 아닐까? 그 사건만 아니었다면, 내가 이렇게 정신을 놓게 되진 않았을 텐데… 자문자답과 끝없는 자책과 분노가 연속적이며 동시에 밀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