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생명을 얻다
아이를 기다리며 뉴스를 검색해 보다가 무슨 뜻일지 알 수 없는 ‘아만자’라는 드라마의 클립을 보았다. 어느 날 갑자기 암 선고를 받은 청년의 이야기란다. 웹툰이 원작이라길래 정보를 살펴보니 제법 오래된 유명한 웹툰이며, 서점에서 제목만 보고 이게 뭐야 하며 지나쳤던 책이기도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아마도 암환자는 ‘갑.자.기’ 선고를 받는 경우가 대부분일 거다. 내게도 그렇게 갑.자.기. 선고가 내려졌던 것처럼...
몸이 나빠지기 시작한 건 2015년쯤부터였다
다행인 건 몸의 이상을 자각하고 몇 가지 병명을 확진받으면서 다이어트도 하고 운동도 하고 영양제도 챙겨 먹었다. 당연히 열심히 병원 투어를 하며 진료도 받았다. 다이어트로 체중을 6킬로쯤 줄여서 건강검진을 했을 때 병원에서는 병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을 했다.
하지만, 실은 어플을 깔고 식이조절을 해서 감량 했던 것이었고, 가능한 운동량을 늘려가면서 조금 더 감량을 했었다.
2017년은 내 생에 최악의 해였다. 스트레스가 엄청났고, 내 정신을 붙들고 있기 어려워 밤낮 아이들 몰래 울기도 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늘어갔다. 작은 아이는 학교 생활을 힘들어했는데, 내가 어렸을 때 버텼던 것처럼 버틸 수 있기를 바랐다. 내 힘듬을 감추기 급급해서 아이의 아픔을 온전히 보듬어주기 어려웠다.
2019년은 스트레스 수치가 좀처럼 내려가지 않던 해였다. 인간관계에서도, 아이들의 교육에 있어서도, 심지어 회사일에 있어서도 극도의 긴장감을 떨치지 못했다. 정부과제를 신청하기로 했고, 연구과제에 대한 자료는 턱없이 부족했다. 담당자도 달랑 한 명. 나.
족저근막염은 여전했고, 동네 외과에서는 수술은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턱관절 전문치과에서는 중증 악관절염이라고 했다. 건강검진에서는 미란성위염으로 생검을 진행했고 다행히 악성은 아니었다. 피부과에서는 손톱과 손톱 밑의 하조피가 붙어 자라는 역조갑익상편이라는 이름도 어려운 자가면역질환이라고 했다. 한 번 걸렀던 갑상선 초음파 검사에서는 형태가 좀 나쁘다고 했지만, 오래전부터 있던 결절이라 관찰하기로 했다. 그런데 체중이 계속 증가했고, 무슨 짓을 해도 내려올 줄 몰랐다.
다행스럽게도 계속 신경 쓰던 일이 연말에 몇 가지 해결되었고 한숨 돌리게 되면서 새해에는 나를 살리는 작업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2020년.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엄마로 직원으로 바쁘게 살던 봄날, 약속했던 갑상선 추적관찰을 했다. 담당 선생님은 심각한 얼굴로 세침검사를 권했고, 하시모토 갑상선염도 있다고 했다. 내 모든 몸의 이상이 이해되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2주 후, 9년간 멀쩡하던 작은 결절이 갑상선 유두암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수술밖에 답이 없다는 말을 들었다.
어쩌면 나는 그 이전부터 몸으로는 알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숱한 검색을 하고 병원 예약을 하고, 20년 만에 의사와 환자의 모습으로 꽤 명의가 된 아는 오빠를 만났다.
“멘털 관리가 관건이야.”
정말 그랬다.
멘털을 붙잡고 일상을 유지하면서 병원을 정해야 했다. 가족들은 이런저런 의견들을 내놓았고, 엄마는 매번 사십넘은 딸과 병원에 동행하고자 하셨다. 코로나는 주말부부인 우리의 사정을 봐주지 않았고, 어느 날 갑자기 수술 날이 잡혔다. 암이 확진된 날로부터 딱 2개월 후였다. 남은 3주 동안 모든 정리를 해야 했고, 내가 부재중일 때 집과 회사에 문제가 없게 준비해야 했다.
치과, 외과, 턱관절치과, 여성병원, 피부과, 안과를 나누어 다니고 아이들 수업 스케줄을 조정하고 몇 년간 쓰지 못한 남편의 휴가도 내면서 수술을 위한 검진을 계속했다. 머리도 싹둑 커트로 자르고 염색도 하면서, 수술 후의 생활을 위한 준비도 했다.
드디어 병원에 가는 날.
여행가방 가득 짐을 싸고 아빠가 데리러 오시기를 기다렸다. 2주 전에 본 남편과 접촉하면 수술을 받을 수 없다. 내가 병원에 도착하면 남편이 부산에 도착하게 된다.
이비인후과에 입원 수속을 하고 나서도 무척 바빴다. 이런저런 서류 작성도 해야 하고, 검사도 해야 했다. 게다가 갑자기 잡힌 일정인만큼 수술범위도 확정되지 않았다. 호르몬 검사로는 이상이 없었는데, 초음파상으로 암이었고, CT상으로도 전이가 없는데, 초음파상으로 전이가 의심된다고 했다. 수술 날 아침, 마지막 수술 전 검사에서 전이 소견이 나오면 이발도 해야 한다고 했다. 휴가를 냈어도 남편은 병원에 들어올 수 없었고, 왔다 갔다 하는 멘털에도 엄마 앞에서는 울 수가 없었다.
범위가 정해진 게 아니라서 나는 그날의 마지막 환자였다. 수술 중에 냉동 검사를 해야 했다. 전이는 좌측 중앙 경부에만 있었고, 다행히 경동맥으로 나아간 건 아니었다. 좌측 갑상선 반절제와 중앙 경부 청소술이 행해졌고, 보통의 반절제 환자들보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수술 후에도 배액관의 혈액량이 빨리 줄지 않아서 꼬박 일주일을 입원하고 퇴원했다.
아이를 낳았을 때가 입원한 경험의 전부인데, 그때는 자연분만이라 몇 시간 만에 벌떡 일어나 걸어 다녔었다. 전신마취 수술은 내 기억에 없고 진통제를 달고 있으니 통증은 차라리 견딜만하고 괜찮은데, 혼자 침대에서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 너무나도 낯설었다. 하루 세끼 먹고 하루 세잠 자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수술하는 동안 목을 젖힌 채로 있었어서 목과 어깨가 너무 아팠고,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힘겨웠다.
사흘째쯤부터는 노력하면 혼자 일어날 수 있었고, 나흘째부터는 캔서 블루가 찾아왔다. 엄마는 계속 곁에 있겠다고 하셨지만, 불편하게 주무시는 걸 보는 게 더 불편했다. 우울한 마음을 들키고 싶지 않은 게 더 커서 밤에는 돌아가시라고 했다.
수술 전에도 후에도 멘털 관리가 제일 중요한 게 맞았다.
퇴원한 지 일주일이 지난 후에 내분비내과에서 수술 결과를 들었다.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최종 결과는 조금 달랐다. 좌측 갑상선 반절제를 시행했고, 중앙 경부 림프절을 9개 떼어냈으며, 그중 3개가 전이되었었다고 한다. 갑상선 유두암은 거북이 암으로 유명한데, 내 경우엔 양성의 갑상선 결절이 암으로 악화된 케이스였고, 속도도 거북이가 아니었다. 운 좋게도 겨울까지 꽉 찬 수술 스케줄 속에서 급히 빈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빨리 수술할 수 있었고, 혈액검사에서도 CT에서도 전이 소견이 없었으나 의사 선생님들의 ‘촉(?)’으로 전이를 의심했고, 제거를 완료할 수 있었다. 덕분에 전이가 있었어도 방사선 치료를 받지 않아도 되게 되었다.
수술 전에도 수술 후 검사에서도 여전히 호르몬 수치는 정상이었다. 그래서 호르몬제를 처방받는 대신 대학병원들이 연합하여 진행하는 연구에 참여하기로 했다. 그리고 국가에 중증환자등록이 되었고, 나는 정말 암환자가 되었다
다행인 건 무섭다는 암환자임에도 10년 생존율이 95퍼센트가 넘는 갑상선암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르몬제를 평생 먹지 않아도 되는 경증 환자라는 것이다. 그리고 갑상선 호르몬 고농도 유지 환자로서 전담 연구간호사가 배정되어 주기적으로 케어해 준다는 것이다. 안 다행인 건 오른쪽에 또 하나의 결절이 발견된 것과 암환자인 동시에 하시모토 갑상선염 환자로서 갑상선 호르몬 저하증의 모든 증상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호르몬제 처방을 받지 않았으므로 그 증상들이 완화 또는 제거되기까지 시간이 꽤 걸릴 것이 예측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