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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콜럼버스 May 25. 2020

손정의의 '원칙'과 소프트뱅크의 부진





■ 땅따먹기와 비즈니스


어린 시절 흙바닥에서 많이 하던 땅따먹기, 다들 기억 하실 겁니다.


손가락으로 돌을 쳐서 돌이 이동한 거리까지 선을 긋고, 세 번 안에 돌이 안전하게 시작점으로 돌아오면 이동한 면을 내 땅으로 삼는 게임이죠.


돌이 이동한 지점은 점, 이 점을 이으면 선, 선을 이으면 면이 됩니다.


이제 생각해보면 참 세상의 이치와 비즈니스 전략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 손정의 회장의 '군(群) 전략'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이 요즘 어려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소프트뱅크 창사 이래 가장 어려운 시기라는 평가를 내놓기도 합니다.


손 회장은 어째서 어려운 상황에 놓였을까요. 그의 점, 선, 면이 무엇이었을까 생각하게 됩니다.


손 회장의 '군(群) 전략' 경영 방식으로 유명합니다.


하나의 산업을 공략하기 위해 그와 연관된 기업군을 묶어 집중 투자, 육성하는 것이죠.


처음에는 아무런 관련 없는 기업들처럼 보이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어떤 식으로든 시너지 효과가 발생합니다.


기업군은 점이고, 시너지 효과는 선이며, 이게 통틀어 산입이라는 면이 되는 것이죠.





대표적인 게 모빌리티입니다.


손 회장은 일찌감치 우버·디디추싱·그랩 등 세계적인 승차공유 회사에 투자했습니다.


그리고 스프린트 같은 미국의 이동통신 회사를 인수했죠.


다른 한편에서는 ARM홀딩스, 엔비디아 같은 반도체 기업을 사들였습니다.


4~5년 전만 해도 이를 일관성 없는 투자라고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각 점을 이어 봅시다.


승차공유는 모빌리티의 혁신과 자율주행차 시대를 가져왔고, 이를 구현하기 위한 반도체 기술이 필요해졌으며, 안정적으로 받쳐줄 인프라를 확충해야 했죠.


손 회장은 밑그림을 그려놓고 산업 생태계를 육성 혹은 선점할 수 있는 요소요소에 포석을 깔아둔 것입니다.



출처= 위키피디아



이런 여러 군들은 시대와 기술의 변화에 따라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게 됩니다.


일종의 자체적으로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하는 것이죠.


손 회장의 이런 빅 픽처에 무릎을 탁 친 사람들이 많아졌고, 이런 투자 방식이 언젠가부터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느샌가 손 회장은 세계 최고의 벤처캐피탈리스트로 추앙받기 시작했습니다.




■ 손정의 디스카운트는 왜 사라졌나


일본 증권가에서는 '손정의 디스카운트'라는 말이 있습니다.


손 회장의 종잡기 어려운 행보와 모험적 기질, 미래 기업에 대한 과도한 투자가 부채비율을 높여 소프트뱅크의 기업 가치를 실제보다 더욱 떨어트리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나 알리바바 투자 성공 등으로 손 회장이 자신의 꿈을 실제로 구현해나가자 소프트뱅크는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기업이 됐고, 비전펀드에도 막대한 투자금이 몰려들었습니다.


일본 도요타가 70~80년대 공업화 사회에 정점에 올랐듯, 소프트뱅크는 디지털로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통해 2000년대 이후 최고 기업에 올랐습니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와 풍부한 자본 덕에 다양한 사업을 마음껏 펼칠 수 있기도 됐습니다.


손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의 수혜지인 셈이죠.




출처=위키피디아


■ 무리한 전략의 실체적 위험


소프트뱅크그룹(SBG)이 올해 1~3월 1조4381억엔(약 16조500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습니다.


창사 이래 최대 손실임은 물론 전체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당시 도쿄전력 홀딩스(1~3월 적자 1조3872억엔)를 넘는 일본 기업 중 역대 최악의 분기 실적입니다.


연간(2019회계연도, 2019년 4월~2020년 3월) 적자는 9615억엔이고, 연간 매출은 6조1850억엔으로 전년 대비 1.5% 늘었습니다.


소프트뱅크가 큰 적자를 기록한 것은 '비전펀드'의 손실이 커지는 바람에 투자 사업에서 약 1조9000억엔의 손실이 발생했기 때문입니다.




출처= 블룸버그



위워크의 투자 손실이 커졌고, 투자 중이던 위성통신 벤처기업이 파산했습니다.


궁지에 몰린 소프트뱅크는 가까스로 인수합병에 성공한 미국 3위 이동통신회사 T모바일의 보유지분을 독일의 도이치텔레콤에 매각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


앞서 소프트뱅크는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앞으로 1년 동안 최대 4조5000억엔의 자산을 매각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손 회장은 앞으로 투자 기업 중 15개는 도산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 통찰력과 현실, 그리고 시점


통찰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적 흐름에 빗대어 현재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내릴 것인가.


정부·국회·언론·금융·증권 등 영역에서 정치·사회 영역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대책을 내놓을 때의 사고방식입니다.


이에 비해 사업가들은 다소 다릅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어떤 판단을 내려야 미래 가치를 차지할 수 있을까.


창업자들이 남들보다 더 많이 공부하고, 세상을 알기 위해 애쓰고, 균형감각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미래에 대한 통찰력을 사업적으로 발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시점입니다.


내가 10년 뒤 미래를 바라보고 있다면 투자를 늘릴 시점이 3년 뒤인지, 5년 뒤인지, 7년 뒤인지 판단해야 합니다.


그리고 10년 뒤 세상이 내가 바라본 대로 바뀔지 아닐지에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생각을 가다듬어야 합니다.


만약 틀렸다고 판단이 서면 그에 맞춰 행동을 바꾸는 융통성과 용기가 필요합니다.






■ 소프트뱅크의 300년 왕국 야망



손정의 회장은 소프트뱅크를 창업할 때 애초부터 300년 왕국을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300년을 30년 단위로 10번을 쪼개 개별 시대별로 사업적 전략을 갖고 전개하겠다고도 했습니다.


유명한 일화가 있죠.


소프트뱅크에는 30년 비전을 만드는 '비전개발팀'이 있는데, 팀원들이 미래 설계를 잘 못하고 고민하고 있자 손 회장이 이렇게 조언했다고 합니다.


"혼란스러울 때는 멀리 봐야 해. 30년 단위로 잘라서 예측하니깐 어려운 거야. 우선은 과감하게 300년 앞을 내다보고 그것으로부터 거슬러 올라와 30년 후를 예상해 봐."


멋진 말입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할지라도 300년 뒤 세상이 어떤 모습일까 희미한 그림은 그려집니다.


이를 30년 단위로 앞당기면 어떤 산업과 기술이 필요해질지 그림이 조금씩 구체적으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려운 게 사실이죠. 300년 뒤라는 전제 자체가 애매모호하기도 하고요.



https://global.softbank/




■ 저금리의 축복과 모험



소프트뱅크는 1981년 설립됐습니다.


제 생각엔 소프트뱅크는 1981년부터 이런 비전을 그리지는 않았을 거라 생각합니다.


첫 30년 주기는 소프트뱅크가 본격적으로 닻을 올린 1990년부터 2020년까지라고 생각합니다.


조립 PC에 소프트웨어 세팅 → 전자박람회 회사 인수 → IT 스타트업 연쇄 인수 → 일본 보다폰 인수 → 수익 확대 → 해외 기술 기업 인수 → 비전펀드 출범.


다음 30년인 2020~50년은 AI 기술의 발달과 모빌리티 산업의 구체화, 로봇 기술의 발전 등에 승부를 걸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손 회장은 저금리와 풍족한 자본의 수혜자입니다.


과거 창업자들이 사람과 PC만 갖고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있던 데 비해 이제는 자금이 넘치다 보니 오프라인과 심층 기술 영역까지 건드릴 수 있게 됐습니다.


이에 손 회장은 ARM홀딩스 같은 회사를 거액에 인수했고, 쿠팡에도 막대한 투자를 집행할 수 있었습니다.


'콜럼버스 프로젝트'란 미국 통신업계 진출 프로젝트도 있죠.


미국 통신업계 진출은 손 회장의 숙원 사업으로, 2013년 미국 4위 통신사 스프린트를 216억 달러에 인수했습니다.


당초 협의 가격보다 15억 달러 올린 가격이죠. 손 회장은 사고 싶은 기업이 있으면 비싼 값을 치르더라도 사고 맙니다.


컴덱스 인수 때도 그랬지만, 담판 승부, 승부사 기질이 손 회장을 설명하는 키워드입니다.


손정의 회장은 300년 기업을 만드는 군 전략에 5000개 기업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현재까지 소프트뱅크가 출자한 기업 수는 800개니 아직 갈 길이 멉니다.









■ 희미해진 원칙


욕망은 자기의 통찰력을 현실화하고 성공을 일구는 강력한 에너지입니다.


동시에 통제의 대상이기도 하죠.


자기중심에 욕망에 휩쓸리기 시작하면, 원칙과 근본을 지킬 수 없게 될 테니 말이죠.


사업가는 자기가 세운 원칙을 철저히 지켜야 합니다.




■ '7의 법칙' 안 통하는 뉴노멀


최근 소프트뱅크의 경영 상황 악화를 보며 우리는 손 회장의 경영 원칙을 공부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손 회장의 여러 경영 원칙 중 하나는 '7의 법칙'입니다.


손정의 회장이 만성 간염으로 투병 중일 때 고안한 것으로 승률이 7할 이상 되지 않으면 승부를 걸지 않겠다는 뜻입니다.


7할 이상의 승산이 있다면 승부를 걸만하며, 3할 이상의 패배 가능성은 감당하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패배란 회사의 부도를 뜻합니다.


승률이 7할 이상이란 것은 객관적 판단이 어렵고 그 근거도 확실치 않습니다.


이걸 제대로 판단하는 것이 리더의 능력이자 자질이라고 손정의 회장은 평가합니다.


일반적으로 VC들이 10개 회사에 투자해 1~2개가 대박 성공해 나머지 투자 손실을 메꾼다는 원칙과는 다소 차이가 있습니다.


특히나 빠르게 변화하고, 변화의 방향을 종잡을 수 없는 IT 업계에서는 7할 승률을 점치기 어렵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레버리지입니다.


2016년 출범한 비전펀드는 1000억 달러로, 이전에 손 회장이 100억 달러 안팎의 자금을 굴릴 때와는 규모 차이가 엄청나게 커졌죠.


이제는 짊어질 수 있는 리스크가 30%가 아니라 3% 이내로 낮추는 새로운 원칙을 제시해야 합니다.


자칫 큰 투자가 전체 회사를 흔들 수 있기 때문에 완충지대를 충분히 만들어야 하죠.


그러나 손 회장이 투자한 우버나 위워크 같은 회사들은 오프라인 비즈니스라 투자금이 많이 들고, 많은 서플라이체인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수익이 창출될 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립니다.


업계 1위 회사라고 하더라도 투자 위험성은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손 회장이 위험성을 과소평가했든, 레버리지의 위험성을 간과했든, 현재 시장 상황이 '7의 법칙'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가 돼 버렸습니다.


또 비전펀드의 절반 가까운 투자자들이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의 재무적 투자자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자금을 통한 미래 비전보다는 지속적인 수익 창출을 희망합니다.


중동의 오일머니는 석유 패권의 종말에 대비하고 있습니다.


이슬람은 율법으로 이자 수취를 엄격히 금지하고 있어 이슬람 금융은 지분투자에 따른 자본 소득이나 지분율에 따른 쿠폰 및 배당수익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사우디 왕가는 비전펀드에 거액을 맡기며 안정적 소득을 희망했지만, 비전펀드의 비전을 본격적으로 펼치기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에 비전펀드는 펀드 상장, 우버 상장, 위워크 상장 등 여러 출로를 계획했으나, 금융 시장 악화와 저조한 기대심리 등으로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손정의 회장의 7할의 승부에 대해 오판을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손 회장의 또 다른 경영 원칙은 20대 때 세운 것입니다.


'20대에 사업에 이름을 내건다, 30대에 사업 자금을 모은다, 40대에 사업에 큰 승부를 건다, 50대에 사업을 완성시킨다, 60대에 다음 세대에게 물려준다, 이것으로 소프트뱅크 2.0의 시대를 연다.


1957년생인 손 회장은 올해 한국 나이로 63세입니다.


본인의 원칙대로라면 2017~18년에 은퇴를 하고 후계자에게 자리를 물려줬어야 했죠.





실제 자신도 은퇴를 염두에 두고 2014년 니케시 아로라 소프트뱅크 부사장을 후계자로 지목했습니다.


그런데 돌연 2016년에 자신의 은퇴를 번복하고 아로라 부사장을 내보냈습니다.


"아직 더 하고 싶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패러다임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내가 아직 하지 못한 일이 많다."


복귀의 변은 이랬습니다.


손 회장은 똑똑하고 승부사 기질이 있지만, 독불장군 같은 측면도 있습니다.


비전펀드나 소프트뱅크 투자심사역들이 손 회장을 어려워한단 얘기는 많이 들립니다. 자율성을 발휘하기 어려운 셈이죠.


이런 가운데 본인의 원칙을 번복하고 60대에 접어든 손 회장이 복귀한 데 대한 시장의 의구심도 컸습니다.



아로라 부사장과 손정의 회장. 출처=중앙일보



나이가 많다고 꼭 무능하거나 판단이 흐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손 회장처럼 젊은 사고를 유지하려 부단히 애 쓰는 CEO의 경우는 20~30대보다 더 탄력적인 사고를 합니다.


다만 일을 끈기 있게 끌고갈 강한 체력과 성공한 CEO로서의 업무 관성, 패러다임 시프트에 따른 새로운 룰 등의 문제를 손정의 회장이 얼마나 극복할 수 있을까란 의문은 남습니다.


특히 본인에게 시간이 많지 않다고 생각해 경영 판단이나 업무 추진을 서두른 측면도 있다고 봅니다.




■ 소프트뱅크의 미래와 배울점은



최근의 소프트뱅크의 실적 악화로 회사가 망하거나, 비전펀드가 사라지는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소프트뱅크의 투자가 전방위적이고, 통신·인터넷서비스 등 본 사업의 실적은 여전히 잘 나오고 있어서죠.


다만 최근의 미중 관계 악화, 코로나19, 벤처투자 거품, 언택트 시대의 도래, 공유경제의 실패 가능성과 같은 거대한 패러다임 시프트 속에 소프트뱅크는 1년 이상은 쉽지 않은 길을 걷게 될 거라고 봅니다.


손 회장이 꼭 자신의 원칙을 어겼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고, 본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칠 정도의 원칙도 아니기는 합니다.



손정의 회장과 소프트뱅크 이사회를 떠난 마윈 회장. 출처=AFP



그러나 어디로 튈지 모르는 시장 상황을 다소 안일하게 대처했고, 성급한 측면은 분명 엿보입니다.


땅따먹기에 너무 몰입한 것은 아닌지, 본인 영토로 못 돌아올 정도로 돌을 멀리 보낸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벤처 신화를 쓴 손정의 회장의 근황과 그의 경영원칙 속에서 창업자들이 배워야 할 점이 한 두가지가 아닐 겁니다.


특히 최근 소프트뱅크의 경영난으로 여러 흐름의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마윈 알리바바 창업주의 소프트뱅크 이사 퇴진으로 인한 소프트뱅크의 중국 비즈니스 변화, 미국과의 관계 설정, 그리고 쿠팡의 내년 상장 가능성 등 여러가지 시나리오를 검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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