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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May 26. 2024

위로를 꾸역꾸역 삼킨다.


4월부터 좋지 않은 일이 많았다. 주변이 모두 편치 않았다. 그렇다고 손 놓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것이, 책 홍보를 위한 강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줌으로 하는 강의는 처음이라서 설레는 마음도 있었지만, 정말 떨리기도 했고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서 막막함에 들기도 했었다.

 

게다가 투석 혈관에 문제가 있어서 시술을 해야 하는데, 막상 시술을 하려고 대학병원에 연락을 하니 파업 때문에 시술을 받을 수가 없었다.

줌 강의를 하기 전에 깔끔하게 시술을 먼저 하려고 했는데, 그냥 시술을 포기했다. 그렇게 강의 준비에만 몰두했다.


강의 준비를 하면서, 또 다음 책 기획에 대해서 친구 민정과 회의도 두어 차례 했다. 와식 생활 전문가 이정연 치고는 매우 생산적인 생활을 한 편이다.


계속 힘든 일의 연속. 그렇다 보니 강원도 할머니조차도 내게 전화를 하셔서는 "어째 힘든 일이 끊임없이 일어나느냐"라고 걱정의 말씀을 하셨다. 기도하러 가자고도 얼마나 말씀을 하셨는지. 다음에는 꼭꼭 함께 기도를 하러 가기로 약속을 하였다.


힘든 일들이 있는 중에도 좋은 친구들과의 만남이 있어서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열심히 준비한 두 번의 줌 강의도 다행히 잘 끝냈고, 그 강의를 잘한 덕분에 서평단을 직접 모집하겠다고 나서주신 사랑님과 인연이 닿았고 모 월간 잡지에 광고를 넣을 수 있었다.

그럼에도 중요한 일들 잘 되지를 않아서 나를 힘들게 했고, 가끔은 뺨을 맞아 얼얼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안 좋은 일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 며칠은 더욱 힘들었다. 평소 울지 않는 내가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어제는 특히나 평소보다 더욱 바쁜 데다, 마음이 힘든 상태여서 하루종일 굶었다. 끼니를 챙길 시간적 여유도, 마음의 여유도 없었다. 정말로 배가 너무 고파서 위장이 요동을 치는 것이 느껴졌지만 기분이 좋지 않아서 위장을 달래주고 싶지가 않았다. 평소보다 퇴근은 훨씬 늦었다.


정남은 평소와 같은 자리에 주차를 하고 퇴근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에 올라타니 정남이 나의 무릎에 김밥 도시락을 내려놓았다. 우리 동네에서 소문난 김밥이었다. 식자재 마트에서 파는 김밥인데, 사실 평소에 돈이 있어도 사기 힘든 김밥이다. 수요는 차고 넘치지만 공급이 없다. 그런데 나를 데리러 오기 전 잠시 들른 마트에서 우연히 이 김밥을 만나고, 누나 생각이 나서 서둘러 샀다는 정남의 말에 코끝이 찡해졌다.


"내가 좽일 굶은 거 어떻게 알았...?"

"내가 그걸 어떻게 아노? 그냥 보이길래 샀지."

(우리는 가정 내에서, 가족끼리는 촌스러운 경상도 사투리를 그대로 쓴다.)

정남은 이렇다. 이렇듯 저렇듯 계산하거나 배려하는 것 없다. 그냥, 이다. 있는 그대로의 진심. 맛있는 것이 있으면 먹이고 싶은, 좋아하는 것을 보면 사다 주고픈 그냥 그런 마음. 나는 허기진 마음에 정남의 진심을 꾸역꾸역 집어삼켰다. 


나는 강인하지만, 강인한만큼 약하다. 강인한만큼 큰 폭으로 나약하게 떨어진다. 때로 세상은 나를 야멸차게 미워한다. 나는 멍하니 있다가 세상의 공격을 받고,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어버리고 만다. 그렇게 울어버리는 나를, 온 우주가 짓밟을 때 그래도 정남은 변치 않고 나를 데리러 온다. 그 언젠가 죽고 싶었던 나에게 짬뽕을 사주었듯이, 야멸찬 세상에게 미움받아 종일 굶은 내게 김밥을 먹인다. 그래, 세상아 나를 마음껏 미워해라. 그래봤자 너는 정남이가 아니니까.

네가 아무리 나를 미워해도, 늘 정남이는 나를 집으로 데려다 줄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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