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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Jun 02. 2024

너는 나의 진진

(002)2024.6.2





금요일에 오랜만에 진진과 마음 편한 통화를 했다.

늘 진진에게 전화를 걸면, 진진은 숨찬 목소리다.

마감을 한 시간 앞둔 상황이어서 택배 포장 중이거나, 둘째 아신이를 데리러 유치원에 가는 길이거나. 그 숨찬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아프다. 나는 알 수 없는 그 고단한 엄마, 사업자의 삶.

그런데 오늘따라 수화기 맞은편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오독오독하는 소리가 들린다.

그래도 나는 평소와 같이 묻는다. "안 바빠? 통화하기 괜찮아?"


오늘의 진진은 전혀 바쁘지 않다며, 목소리로 손사래를 쳐준다. 그리고 지금 피스타치오를 씹고 있다고.

벌써 닷새쯤 편도선이 붓고 온몸이 아파서 고생을 했단다. 물을 삼키는 것조차도 힘들었던 시간. 입맛도 싹 달아났었는데, 이제야 조금 입맛이 돌아와서 피스타치오를 씹고 있단다.


"아프고 나니까, 아픈 사람 마음을 알겠다."

큰아들 산이가 아플 때, 남편이 아플 때 하루는 정성스레 간호를 하고 또 하루는 걱정을 했다. 그러나 그다음 날부터는 '벌떡 일어나라'는 소리가 나왔다는 진진. 왜 아직도 못 일어나고 저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단다. 그런데 본인이 아파보니, 그때의 산이와 남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더라는 그 촉촉한 음성이 귀여웠다. 진진의 남편은 정말 마석도 같은 타입의 남자여서, 왜 못 일어나나 싶은 마음이 들 법도 하거든.


역시 사람은 자신이 똑같이 아파봐야만 아는 법이라고. 그러지 않으면 알 수가 없다고 역지사지하는 진진.

그래서 나의 아픔에 대해서도 늘 말을 아낀다. 나와 똑같이 아파보지는 못했기에, 감히 이해한다고 나설 수 없다는 깊은 마음.

말을 하면 목이 아픈 것 외에는 이제 많이 나았다고 하는데, 목이 아프면서도 거리낌 없이 나와 이야기 나어주는 마음이 고맙다.

나의 건강에 대해 마음은 써 주지만, 호들갑 떨지 않는 진진.  내가 늘 이겨내리라고 묵묵히 믿으며 곁을 지켜주는 진진. 그러나 결코 나를 환자 취급하지 않는, 아픈 것이 내가 무언가를 이루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는다고 믿는 진진이라 늘 고맙고 힘이 된다. 


이런 진진이기 때문에 우리는 20년을 넘게 함께 할 수 있는 것이다. 20년 동안 계속해서 서로의 삶이 달라졌음에도, 서로의 다름에 대해 고민하게 한 일이 없는 진진은 내게 대단한 마음들을 당연하게 건네어주곤 한다. 그 마음들이 새삼스레 눈물 나는 날이다.






표지사진은

2022년 6월

진진과 부산 태종사에서 함께 본 수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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