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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Jul 10. 2024

내 딸 정연이

내 딸 서영이 패러디 해보고 싶었어요.





저는 이정연이 아닙니다. 아마 글로 몇 번 말씀드린 적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이정연의 존재에 대해서는 털어놓은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정연은 저의 필명이고요, 어디에서 온 이름인지는 한 번도 말씀을 드리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름에 얽힌 이야기는 저의 북토크 같은 곳에서 하려고 그동안 꼭꼭 숨기고 있었거든요.

저하고 비슷한 사정을 갖고 계신 배 oo 작가님께만 말씀드린 적이 있어요. 저하고 같은 이유로 작가명을 만드셨길래, 제 이야기를 꼭 들려 드리고 싶었더랬습니다.

지금은 브런치 활동을 전혀 하고 계시지 않아서... 어디선가 잘 지내고 계시길 늘 빌고 있는 소중한 브런치 친구분이기도 합니다.


이정연은 저의 딸입니다. 물론 이 세상에 생겨난 적이 없는, 앞으로도 영원히 태어날 일이 없는 그런 저의 딸입니다.

25살에 발병하기 이전에도 저는 참 고달픈 삶을 살았습니다. 쉴 새 없이 아르바이트하며 대학 공부하기가 참 힘들었어요. 이번 생에는 거저 얻는 복이 없는 것이 나의 삶이려니 받아들이고 그래도 씩씩하고 즐겁게 살았습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 있었던 건 이루고픈 꿈이 있었기 때문이고, 언젠가는 정연이를 만나리라는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운명적인 사랑을 믿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20대 초반에 일산 외곽의 초라한 집에 살면서도 '언젠가는'이라는 생각을 참 많이 했습니다. 언젠가는 운명적인 사랑을 만날 테고, 그러면 그이와 결혼도 할 테고 기왕이면 예쁜 딸아이를 낳아서 정말 맑은 사람으로 키우고 싶다.

저는 겉 보기에는 밝지만, 이런저런 상처를 많이 받고 살았거든요. 친척들한테도 서러운 일 많이 겪어서 연락 끊고 살고요. 빵도 구워보고, 커피도 만들어보고, 도넛도 팔아보고, 편의점에서 소주박스도 나르고요. 알바계의 베테랑이었습니다. 악착같이 살았습니다. 술 취한 손님이 유리 하나를 두고 저한테 맥주 던진 적도 있고요, 저한테 먹던 빵 던진 적도 있습니다. 제가 행동이 재빨라서 피했길 망정이지 드럽게 남의 타액 묻은 빵이 닿을 뻔했다고요! 술 취한 아주머니가 제 손에 5천 원짜리 지폐 쥐어주신 적도 있습니다. 당시 시급이 3400원이었으니, 그 5천 원에 눈이 번쩍 뜨이기도 했답니다. 좋은 일도 많았지만, 정말 말 못 할 일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제 딸만큼은 매서운 세상모르게, 세상의 아름다운 면만 보고 맑은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해주고 싶었어요. 정말 뜬금없이 그렇게 제 자신을 치유하는 마음으로 딸을 갖고 싶었습니다. 어느 책에서 보았던 정연이라는 아이가 정말 사랑스러웠어요. 정말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고 자라서 자존감도 높고, 타인에게 다정함을 베풀 줄 아는 아이였어요. 그래서 딸 이름은 정연이다, 혼자 정했지요.     

내 딸 이름을 정연이로 정한 이후, 옥편을 찾아가며 한자도 찾아두었어요. 불용 한자인지도 확인하고요. 남편 성이 없으니까, 일단 정연이는 이정연으로 정해두고 그 아이에게 편지도 썼습니다. 인생이 버겁고 힘들 때, 정연이를 생각했습니다. 나의 내일에 정연이가 기다리는데 포기할 수 없다, 멋지게 성공해서 정연이를 만나야지. 연이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줘야지.

                                                                                                                                                                                                                                                                                                                                                                                                                                                                                                                                                                                                                                                                                                           

그런데 25살이 되자마자 인생이 또 한 번 고꾸라지더라고요. 그렇게 정연이는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 내 목숨 하나 구할 힘도 없는데, 정연이 생각을 하고 있을 틈이 어디 있겠어요?

내 병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울고, 나의 청춘이 서글퍼서 울고. 죽는 줄 알고 무서워도 했다가, 결국 서른을 넘긴 어느 날  브런치에서 글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작가명이 필요하더라고요? 혹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제 책에 나와요) 우리 큰아버지는 진돗개에게 진돌이라고 이름 붙이는 분입니다. 저는 곰인형에 곰순이라고 이름 붙여주는, 작명 센스라고는 없는 집안입니다. 런 제가 작가명을 어떻게 짓나요. 그런데 브런치 작가 신청을 위해서 글을 여러 편 써두고, 작가명만 채우면 되는 순간 거짓말처럼 '정연'이라는 이름이 떠오르는 거예요. 그래, 어차피 이번 생에는 태어날 수 없는 정연을 내가 작가명으로 쓰자. 그렇게 세상을 한번 살게 해 주자. 어차피 태어나지 않을 너이지만, 정연이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글을 엄마가 쓸게.

어쨌든 제가 사랑하는 딸의 이름이잖아요. 이 이름으로 세상에 해가 될 글을 쓸 수는 없지 않겠어요? 글 잘못 써서 정연이를 욕먹게 할 수도 없고요. 그렇게 저는 2020년에 태어나지 못할 딸을 세상으로 내놓았습니다.


정연이는 어차피 태어나지 못해요. 저는 이미 노산이고요, 결혼 계획도 없고요. 일단 제가 저를 책임지는 것만으로도 버거워 강아지를 그렇게 좋아하는데도 가족으로 들이지 못하는걸요. 그러니 이번생에는 출산도 엄마가 되는 일도 포기했습니다.

이렇게 담담해지기까지 무척 많은 시간과 노력과 눈물이 필요했음은 또 다른 글로 이야기를 드릴게요.

저는 말이 많으니까, 이야기꾼처럼 자꾸만 여러분이 듣고 싶어 지도록 한 번에 다 이야기하지는 않을 거예요. 다음에 저를 또 보러 오실 수 있도록이요.


그렇게 제가 세상으로 내놓은 정연이를, 여러분이 오늘날까지 만나고 계십니다. 우리 딸 오래오래 살도록, 여러분이 계속 만나러 와 주시고 응원해 주세요.

오늘따라 정연이가 정말 정말 많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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