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비가 내리는 오늘은, 사랑하는 그대의 생일날.'
정남이의 생일이다. 정남이는 어제도 택배로 선물을 받았고, 생일이라고 목요일 저녁에도 밥을 얻어먹고 왔다. 그리고 어제는 정남이 생일밥을 내가 사주었다. 작가가 되었다고 받은 용돈이 있어서 투석이 끝난 점심에 함께 밥을 먹었다. 정남이는 무려 메뉴를 두 가지 시켰다. "누나... 내가 돈 줄게. 나 두 가지 시켜도 돼?" 귀엽긴. 누나가 사줄 테니까, 신경 쓰지 말고 맘껏 먹어.
핸드폰으로 기프티콘 선물도 여럿 받는 것을 보고, 우리 정남이가 사람들에게 예쁨을 받는구나 싶어 기분이 좋았다. 나이가 들수록 타인이 나의 생일을 기억하고 챙겨주는 일은 쉽지가 않다.
정남이가 너덜너덜해진 지갑을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띄어, 지난달에 생일 선물로 지갑과 벨트를 미리 사주었다. 내가 선물한 것을 잊을까 봐 종종 지갑은 잘 쓰고 있는지, 벨트는 감기는 맛이 어떤지 묻곤 했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말은 내 사전에 없다. 나는 오른손이 일을 하면 왼손뿐만 아니라 오른발, 오른 손도 알게 하는 사람이니까.
생일인 오늘, 정남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샤워를 하고 식사를 했다. 그리고 오늘도 어김없이 정연을 출근시켜 주었다. 이른 아침에 카페에 출근할 때 우유를 사서 가는데, 그 무거운 우유도 덜렁 들어서 카페 냉장고에 채워준 다정한 정남.
그런 정남에게 생일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 하지 못한 생각이 나서 미안한 마음이 밀려왔다.
오늘 정남은 서울에서 친구 사 군과 오랜만에 약속이 있어서, 나를 카페에 내려주고 다시 전철역으로 향했다. 전철을 타고 서울 홍대까지 갈 생각이라 하였다. 약속은 9시 반. 아침부터 만나서 노는 남자애 둘이라니... 어지간히도 할 말이 많은가 보다.
어쨌든 업무를 보다가, 정남에게 생일 축하 이모티콘을 두 개 보냈다. 그러고 나서, 정남에게 적지만 용돈을 보냈다. 정남은 '돈은 왜...ㅠㅠ'라고 답장을 보내왔지만, 내가 보낸 용돈 봉투는 제대로 받았다. '생일인데 친구랑 밥이라도 먹어~'
사랑은 돈으로 표현하는 거다. 아프고 5-6년 동안 백수로 살 때, 주변 사람들에게 마음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1년에 사람을 두어 번 만날까 말까 하며 살았다. 정말 팍팍한 세월이었다. 가족들의 생일도 챙기기가 버거웠다. 이렇게 밥벌이하면서 사는 것의 좋은 점은, 도리를 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 마음을 표현하면서 살 수 있다는 것.
오늘 아침에도 출근 중인 차에서 정남은 나에게 '공으로 생긴 신세계 상품권'이 있는데, 누나 쓰라며 주었다. 그런 고마운 정남에게 축하한다는 말만 건넨 것이 아니라 적은 용돈봉투를 전송할 수 있어서 다행이다.
참 박복한 인생이지만, 남들 다 있는 친척도 내겐 하나도 없지만 정남이 하나가 내게 큰 복이고, 큰 의미가 되어준다. 정남이가 오늘 하루 즐겁게 보냈으면. 사랑하는 정남아, 생일 축하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