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정연 Aug 22. 2024

카레의 요정





전에 내가 요리를 할 때는 얼마나 귀찮고 대단한 일인지 생각을 하지 못했다. 이제는 거의 하지 않게 된 요리. 그런 요리를 요즘 정남이 해줄 때마다 정말 고마운 마음이 크다. 물론 정남이 요리를 할수록 나의 설거지거리도 늘어나긴 한다. 그러나 꽤 오래 가정의 설거지 담당으로 살아왔고, 무언가 더러운 찌꺼기들을 씻어내고 깨끗한 식기로 변모하는 그 과정을 즐기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늘어난 설거지거리도 견딜만하다.

게다가 맛있는 밥을 먹고 하는 설거지는, 밥값하는 즐거운 느낌이 충만하다.


오늘의 메뉴는 일식 카레다.

채친 양파를 카라멜라이징 될 때까지 볶다가. 아, 정남이 보여주었던 레시피 영상 내용이 생각이 잘 나지 않는다. 맙소사. 워낙 요리를 안 해 버릇했더니 보지 못한 요리과정을 묘사하기란 무척 힘들다. 정남은 양파에 우삼겹만 추가해서 볶았다.

양파 볶다가 우삼겹을 더해 볶다가 육수를 추가해서 보글보글 끓였겠지? 아차 영상 속에서는 버터와 초콜릿으로 풍미를 더했다는데, 사실 토종 한국인인 나로서는 버터와 초콜릿이 어떤 역할을 할지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저, 퇴근 후에 오면 일식 카레가 준비되어 있으니 먹으라는 정남의 기별만 왔을 뿐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정남은 김치 냉장고에 보관해 두었던 카레 냄비를 꺼냈다. 일식 카레라 그런가, 특이하게 굳어있어서 정수기에서 따뜻한 물을 조금 받아 부어서 카레를 풀어가며 데우는 정남의 모습이 멋지다. 역시 요아정.

 

정남은 예쁜 접시에 밥을 담고 카레를 적당히 부어주더니, 파슬리 가루까지 소로록 뿌려서 내왔다. 정말 파슬리 가루는 또 어디서 난 거야. 정말 너무 웃겨서 콧김이 뿜어져 나왔다. 가정에 파슬리 가루를 가지고 있는 사람, 나는 정말로 처음 보았다. 원통형의 후추통처럼 생겼다. 정말 미치겠네.

 


사실 일식카레를 좋아하지만 맛이 너무 세서 먹고 나면 속이 편치가 않다. 그래서 자주 먹을 수가 없다. 그런데 정남의 카레는 너무도 신기했다. 일식 카레의 특유의 녹진한 맛에 끝에는 살짝 얼큰해서 목구멍을 개운하게 치고 가는 깔끔한 맛. 카레를 좋아하면 똑똑하다는데, 어릴 때부터 노오란 카레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정남의 카레는 딱 일식 카레와 한국식 카레의 중간치 되는 딱 그런 맛.


정말 너무 맛있다고 엄지를 척 세워가며, 정남에게 리필을 부탁했다. 사실 정남이 아예 카레 냄비를 가져다주었는데, 양이 그리 많지 않다며 다 먹을 것을 권하기도 했다. 그래서 아주 당당하게 요구했다.

"맛있는 밥 해주신 김에, 리필까지 다 해주시지요."

정남은 나비처럼 날아와 가볍게 나의 접시를 가지고 가서 밥을 추가해 주었다. 나는 정남의 카레를 모조리 접시에 붓고 정남에게 냄비를 치우라고 했다. 아무 말 없이 싱글싱글 웃으며 냄비도 치워주는 정남.


누군가가 해주는 밥을 이토록 맛있게 먹어보긴 오랜만이다. 나는 정말 접시를 싹싹 비운 뒤, 정남에게 너무 맛있다고 소리를 쳤다.


그러고 나서 정남은 커다란 버터 덩어리를 소분해서 보관하는 일까지를 마치고야 휴식을 취하러 방에 돌아갔다. 나는 냉장고를 보다가, 기함할만한 진실을 마주하고 말았다. 정남이 분명 일본에서 온 고형카레를 써서 일식 카레를 만들었으리라 생각했는데, 우리나라의 밀어도 다시 일어나는 회사의 고형카레를 사용해서 만들었더라. 그 회사에서도 고형카레가 생산되는지 태어나 처음 알았다. 이래서 일식 카레와 한국 카레의 중도를 걷는 맛이 나왔던 거군. 조금 당황스러운 웃음을 짓느라 한참을 냉장고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