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 40분, 이를 닦는다. 새벽 6시, 집을 나선다. 영하 5도. 또다시 익숙한 추위가 찾아왔다. 곧 도달할 버스를 만나기 위해서 빠르게 정류장까지 나오느라, 분홍색 바라클라바를 잊었다. 전기 버스의 뒷좌석에는 절대 앉지 않는다. 소한이 전기 버스의 화재 폭발 위험성에 대해 일러두었기에 결코 뒤쪽으로는 가지 않는 내가 오늘은 뒷 쪽 좌석에 앉아버린다. 가방 속의 책을 꺼내 읽는다. 읽으면 늘 쓰고 싶어 진다.
그간 나는 읽지 않았고 쓰지 않았다. 쓰고 싶지 않았다.
새벽이다. 익숙한 새벽이다.
20대에도 이런 어두운 새벽에 버스를 탔다. 건강했던 시절이다.
어느 새벽에는 깨어 있는 채로 쓰레기 수거차량의 소리를 듣곤 했다. 알바를 하느라 밀린 공부를 하고, 리포트를 쓰느라 밤샘을 하기도 했고 그보다 더 전에는 읽고 쓰느라 밤을 지새우며 새벽의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휴학을 하고서, 아예 돈 버는 일에만 집중해서 살던 20대 초중반의 그때에 나는 늘 이른 아침 집을 나섰다. 시내로 나가서 버스를 갈아타야만 갈 수 있었던 나의 일터. 새벽이 걷히고 아침이 서서히 밝아오는 것을 보면 미친 듯이 글이 쓰고 싶었다. 그 광경을 문장으로 표현해 낼 수 없음이 분했다. 언제쯤이면 나는 속에 있는 것을 글로 마음껏 표현할 수 있을까. 늘 토하고 싶었던 20대. 요즘 늘 속으로 웅얼거리는 나날이 반복되었다. 그때처럼. 그러나 쓰지 않았다.
반추해 보면, 어느 날은 새벽 버스에서 아빠에 대해 무수히 많은 생각을 하며 글을 구상하였으나 엎어버리기를 반복했고 머지않아 아빠의 죽음을 맞았다. 절대 내 글에 아빠는 출연시키지 않겠다던 다짐이 무참히 깨졌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그를 생각한다. 나를 만든 그를. 생각만 해도 애틋한 그를. 살기 위해 미워했던 그를. 그러나 알고 있다. 나의 외로움은 그를 닮았음을. 내가 써야 할, 내가 쓸 무수히 많은 문장들은 결국 그와 연결되어 있음을.
다시 써 내려 가려한다. 아마 전과는 다른 문장을. 그러나 어느 때보다 더 전과 같은 문장을. 어쩌면 나의 원형과, 나의 시작과 가장 맞닿은 문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