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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연 Aug 31. 2024

초가을로 접어들면서 중간결산





8월의 마지막 날. 지금은 남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20대 때 이모와 정말 가깝게 지냈다. 정말 힘든 상황에 놓여있었고 상의하거나 의지할 어른이 이모뿐이었다. 그래서 이모와 메일도 많이 주고받았고, 어떤 통로로든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던 시절이었다. 이모가 말했다. 지금 너의 인생은 시속 22km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그 속도가 빨라진다고. 그때는 이모의 말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서른을 넘기고 그 서른에서 계속 나아갈수록 나는 자꾸만 이모가 말했던 속도를 온몸으로 느낀다. 이렇게 한 해의 2/3가 지나가고 있다.


지난 8개월 동안 무얼 하며 살았을까. 매일 똑같은 하루를 성실히 보내려고 노력했지만, 몸이 아파서 주저앉은 날들도 많았다. 이번에 챌린지를 시작하면서 절대로 아픈 것으로 핑계를 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친구 민정은 '예준이는 아프면 쉬어요.'라고 다독여주었지만 이번에는 물러날 수 없었다.(예준은 민정만이 날 부르는 애칭이다)

어제 정말 몸이 많이 아팠다. 병원 치료를 끝내고 돌아오는 내내 주저앉기 일쑤였다. 주저앉아서 이대로 집에 갈 수는 있을는지가 미지수인 그런 날. 무한정 앉아 있다가는 정말로 온 병원 건물에 불이 다 꺼질 때까지 주저앉아있을 것만 같아서 조금 버티고 내려가고, 또 조금 버티며 몇 걸음 걷고 하는 식으로 전철역에 가고, 철을 타고 동네 전철역 앞에까지 나왔다.

나도 몸이 아픈데, 역 앞에 주저앉아 계신 할주머니께서 부축을 해달라고 부르셔서 또 입술을 꼭 깨물고 그분을 부축해 드렸다. 넘어져서 어디가 잘못된 거 같다고 하신다. 택시 정류장까지만 부축해 달라고 하셔서 열심히 부축해 드리고, 내 한 팔을 잡고 계시라고 내어드리고 택시 뒷문을 열었다. 그런데 택시 문을 잡던 그분이 그 자리에서 고꾸라지셨다. 겨드랑이에 손을 끼우고 그분의 양 팔뚝을 잡고 일으켜 보려고 무진 애를 썼다.

겨우 그분을 택시 좌석에 실어드리고, 문을 닫아드렸다. 마스크 속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이제는 제법 가을 같은 바람이 분다 하였는데, 너무도 더운 한낮의 더위에 기진맥진할뻔하였다.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아 집까지 왔다. 내가 아프다고 아픈 어르신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 겉보기에는 멀쩡하고 젊은 내가 도와야지. 그래도 타인을 도왔다는 사실이 조금 기뻤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 점심을 챙겨 먹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가 깨어났다. 정말 몸이 많이 아프지만, 몸이 많이 아팠던 날들이 있었지만 올해를 돌이켜보면 또 글을 못 쓸 만큼 심하게 팠던 날은 딱히 없다. 감사한 일이다. 무엇보다도 100일 챌린지를 하는 동안에는 크게 아픈 일이 없었고, 그사이에 혈관 시술을 두 번이나 받았음에도 글쓰기에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


올해 1월 소한은 국가고시를 치르었고, 2월에는 당당하게 장관 직인이 찍힌 면허를 발급받았다. 많은 곳에 이력서를 넣었고, 면접을 보러 전국을 다녔다. 정말 힘들었던 소한의 모든 순간에 나는 되도록이면 함께 하려고 노력했다. 소한이 여기저기로 이동을 많이 하는 바람에 나 또한 새로운 경험들을 많이 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도 소한은 힘든 과정을 지나고 있다. 하늘을 날면서, 소한의 힘든 순간들에 계속 함께 하면서 소한에 대한 나의 감정이 다른 차원으로 변화되는 것을 느꼈다.


봄에 나의 첫 책이 나왔고, 수도 없이 열패감에 시달렸다. 지금도 수많은 낮과 밤을 열패감에 시달리고 있다. 그렇지만 책을 통해 또 새로운 인생의 장을 열 수 있었다.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소설가 선생님에게 책 리뷰를 받았고, 나의 존재를 그녀에게 알릴 수 있었다. 심지어 선생님을 실제로 뵐 기회도 있었다.


올해에는 오랫동안 글로만 소통하던 친구들과 실제로 만날 일이 꽤 많았다. 그리고 그 친구들은 글도, 실제의 사람도 모두 따스하고 매력적이었다. 앞으로도 쭈욱, 느슨하고도 단단하게 인연을 이어가고픈 친구들이다.

 때문에 새로이 인연이 이어진 경우도 있었는데, 앞으로가 기대되는 다정하고 좋은 친구들이다. 내게 밀물처럼 밀려들어온 인연들이 있다면, 또 썰물처럼 빠져나간 인연들도 있겠지. 그런 이들은  미련 없이 보내주었다. 계속 같은 자리에 머무르는 인연은 없다는 진리를 또 한 번 깨달은 계절들이었다.


이제 나의 인생의 속도가 너무 빨라져서 정신없이 한해의 2/3가 지나가 버린 것이 아찔했다. 그러나 지나온 8개월을 돌이켜보니,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하고 멋진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언제나 그랬듯 견디기 힘든 순간들은 늘 함께 했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정말로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해지고 싶다는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두근거리는 초가을로 접어드는 우리의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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