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가 지나가는 소리가 나서 뒤를 돌아보았더니, 새마을 호의 코가 서울 방향을 향해 빼꼼하고 지나갔다. 나의 별장이다.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아기 잘도 잔다의 그 오막살이,는 아니고 그냥 기찻길 옆 오피스텔이다.
원래 길게 자는 편은 아니지만, 오피스텔에 오면 참 일찍 일어난다. 이정연의 문간방은, 방은 자그마하지만 베란다까지 딸려 있는 데다 베란다로 나 있는 새시의 반은 화장대로 가려져 있다. 작은 방의 운명이란. 방이 어둑한 것까지는 아니지만 엄청 환한 것은 아니라서, 가끔 늦잠을 자고 싶을 때도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리고 베란다로 나가서 밖을 내다보면 풍경이랄 것이 없다. 맞은편 단지만 보인다. 창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우리 단지 뒤편의 주차장들, 울타리 너머로는 도로 그리고 맞은편 단지의 상가가 보인다. 좋은 점은 그 곁으로 있는 택시 승강장과 버스 정류장이 보여서 교통상황 파악에 좋다는 것.
나는 작은 나의 문간방이 좋다. 그러나 여름부터 새로이 생긴 별장도 좋다. 별장은 땀을 뻘뻘 흘리며 들어와도 '아니, 별장지기가 에어컨 켜놓고 출근했나?' 싶을 정도로 건물 자체가 매우 시원하고, 풍수지리적으로 구조가 훌륭하다. 물론 야매 풍수지리학자 이정연의 기준이다.
별장은 창이 크고 풍경이 좋다. 왼쪽으로는 신도시의 예쁜 주택들이 즐비하고, 창의 정면으로는 구도시의 정겹고 오랜 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신도시와 구도시의 경계를 가로지르는 기차선로가 있다. 그 선로로 ITX도 다니고 무궁화 열차도 다니고, 전철도 다닌다. 어릴 때부터 차멀미가 심해서 기차타기를 좋아했던 이정연 어린이는 자라서 전철과 기차를 좋아하는 어른이 되었다. 기차와 전철 사진 찍기를 좋아한다. 기차나 전철 소리가 날 때마다 별장의 창을 통해 내다보기도 좋아한다.
해가 뜨면 온 집안으로 환한 기운이 들어와서 길게 잠들어 있기가 힘들다. 그래서 좋다. 새벽 3시가 되어서야 잠이 들었는데도, 아주 개운한 상태로 7시 30분에 깨어났다. 침대에서 조금 뭉개다가 지난 저녁에 세탁 완료한 세탁기를 다시 돌린다. 헹굼/탈수 상태로 돌려두고 세탁기가 돌아가는 동안 다시 누워서 기다린다. 세탁이 완료되어 세탁물을 건조대에 탁탁 털어서 널고, 마른빨래를 걷어온다. 세탁물을 모두 개켜서 제각각의 자리에 정리해 둔다. 고민을 한다. 배가 고프다. 별장 냉장고에 있는 반찬과 햇반을 하나 먹을까, 하다가 만다. 큰 공기 햇반이라 다 먹지 못하면 아까우니까. 그래서 누룽지 있는 것을 한 주먹만 끓여서 먹기로 했다. 평소에 누룽지를 안 먹긴 하지만, 반찬만 먹을 순 없으니 누룽지를 한 번 끓여본다. 누룽지는 물을 많이 잡아서 끓여야 하는데, 수분섭취에 민감한 투석러 이정연은 물 추가하기를 망설였다. 덕분에 누룽지가 더럽게 맛이 없다. 그래서 몇 숟갈 뜨고 말았다. 아침약을 먹어야 하고, 또 감기약을 먹어야 하기에 위장을 채운 것에만 의의를 두기로 했다.
그리고 바로 설거지를 다 했다. 청소는 어제 했지만, 돌돌이를 들고 눈에 띄는 머리칼들을 수거했다.
이 모든 일을 끝냈음에도 열 시. 샤워를 하기 전에 여유롭게 글을 써본다.
이제 얼른 샤워를 하고, 고속도로를 타야 한다. 오늘은 충남으로 나들이를 간다. 충남에서 다시 KTX를 타고 서울로 돌아올 계획이다. 아주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쐰다. 기왕이면 휴게소에 들러 가락국수와 호두과자도 꼭 먹어주려고 한다. 소한 기사님에게 가락국수와 호두과자를 사달라고 어제 졸라두었는데, 배탈이 나서 걱정이군. 방금 또 기차소리가 났다. 이번엔 KTX가 지나갔다. 별장에서의 아침은 정말 상쾌하고, 오롯이 혼자만의 여유를 즐기기에 정말 잔잔한 행복으로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