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윤석열 나이 좋아합니다. 정치색이나 정치성향 같은 이야기 하자는 것 아니고요, 정말 딱 나이만 이야기하는 거예요. 저 진짜로 윤석열 나이 좋아합니다.
남들이 나이 물을 때 무조건 윤석열 나이로 대답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할 거라서, 오늘 글 속에는 윤석열 나이가 나오지 않습니다.
서른넷의 영혜 씨는 제법 귀여운 얼굴에 164cm의 키에 통통한 골드미스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그 나이까지 시집 못 가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단 말이죠. 게다가 제가 또 보수적인 꼰대들의 도시, 대구가 고향입니다. 어른이 되기 직전까지 대구에서 살았습니다. 어휴, 말도 못 해요. 저는 어릴 때, 남녀 칠 세 부동석이라는 말을 들으며 컸다니까요? 그래서 남녀 칠 세 부동석이니까 동생 하고도 떨어져 앉아라, 뭐 그런 어른들이 있었단 말입니다.
전 제 글이 이래서 좋아요. 사실 오늘 보수 얘기할 것도 아니고요, 지역색 얘기할 것도 아닌데 이렇게 쓸데없는 이야기를 앞에 늘어놨단 말이죠. 그런데 이런 쓸데없는 이야기 하면 왠지 재미있지 않나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 아니고 다 재미있게 살자고 하는 일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제 글의 목적도 사실 대체로 '웃기기 위함'이에요. 제가 웃기려고 써놓은 문장에 대해 누군가 언급해 주면. 와 역시~ 평생 은인으로 모셔야겠다, 이런답니다.
하여간 영혜 씨와 저는 대구의 모 여중에서 만났습니다. 사실 그녀의 얼굴은 지금도 또렷한데... 그녀의 담당과목이 영어였는지, 가정이었는지가 생각이 안 나요. 아닌가, 수학이었나? 아무래도 코로나 후유증으로 기억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지금은 서른넷이라 하면 한창때인데, 그때의 서른넷은 진짜 구제불능의 노노노처녀 취급받을 때입니다. 사실 뭐 우리 같은 여중생이 볼 때야 그냥 결혼 안 하셨구나, 하고 별 생각이 없지만 실제로는 주변에서 핍박을 많이 받으셨겠지요? 제 고향이니까 막말을 편하게 하는 거 기도 하지만요, 골 때리는 남녀 차별의 도시랍니다. 결혼 상대자로 경상도는 무조건 거르라는 말도 요즘 인터넷에서 유행하더만요. 아들, 경상도 남자로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아차, 내가 널 낳은 줄 순간 착각했구나. 어쨌든 미안.
그러나 영혜 씨는 아무리 노처녀 소리를 들어도 늘 발랄하고 당당한,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그야말로 '빛나는' 골드 미스였습니다. 우리 옆 반 담임 선생님이었는데, 만인에게 톡톡 쏘는 말투가 밉지 않았습니다. 영혜 씨가 단어 선택이 강해서 그렇지, 틀린 말은 하나도 하지 않는 여성이었거든요.
영혜 씨에게 있어서 이정연은 그저 옆 반 실장이었습니다. 영혜 씨가 2학년 3반 담임 선생님이셨고, 이정연이 2학년 4반 실장이었습니다. 옆 반 학생이지만 익숙하고 만만한 아이.
그 누구에게나 이정연은 익숙한 얼굴이어서 알은척하고 심부름시키기 좋은 학생이기도 했습니다. 교무실이 거의 집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교무실에 한번 갔다가, 온갖 심부름을 다 하고 다음 쉬는 시간에 또 교무실에 가 있는 꼴이었습니다. 영혜 씨도 저만 보면 참지 못하고 심부름을 많이 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 영혜 씨와 어느 날, 아주 조용한 오후의 언제 중앙 계단에서 만났습니다. 하나는 오르고, 하나는 내려가는 그런 영화 같은 모양새의 만남. 저는 당연히 깍듯이 고개를 숙여서 인사를 했습니다. "안녕하십니까."
그 순간 영혜 씨는 가던 길을 멈추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습니다. "실장, 니 가지 말고 잠깐 서 있어 봐라." 하더니 이내 깔깔깔깔 웃었습니다.
"인자 보니까 니 진짜로 웃기게 생깄네? 왜 니만 보면 웃음이 나오는가 했더니 니 진짜 웃기게 생겼다, 야!"
지금 생각하면 사춘기 소녀 입장에서 자존심이 상할 법도 한 발언인데, 중2 이정연은 아무 생각이 없었습니다. 내가 재미를 주는 얼굴이구나, 하고 허허실실 하고 말았지요. "네, 제가 좀 웃기게 생겼습니다. 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크크."
살면서 우울할 때 나를 보고 깔깔 웃었던 서른넷의 영혜 씨가 가끔 떠오릅니다. 웃기게 생겼다는 말이 만만하고 못생겼다는 뜻이라기보다 상대를 기분 좋게 하는 얼굴이라는 말로 나에게 입력되어 있습니다. 고고한 골드미스도 웃긴 얼굴, 이라며 스스로 자부심을 갖자고 생각합니다. 신기해요. 별 것 아닌데도, 이렇게 잊을 수 없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