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한낮은 덥다. 땀을 흠뻑 흘리며 귀가를 하였다. 어느 날은 너무 더워서 문간방 침대에 한없이 드러누워 있기도 하는 요즘. 그러나 오늘은 배가 고파서 누워있을 수가 없다.
딱히 무언가 먹고 싶다는 생각도 들지 않고, 대에충 한 끼 때우고 약이나 챙겨 먹고 싶은데 집에 먹을만한 것도 없고 참.
아참. 어제 정남이가 제육볶음을 했다고 하지 않았나? 어제 만들어둔 제육볶음을 오늘 아침에 먹고 조금 남은 거라도 있지 않을까? 식탁에 갔더니 제육볶음 한 주먹쯤 들어있는 냄비가 있다. 빙고.
정남이의 제육볶음을 빠르게 데웠다. 그리고 작은 햇반 하나를 데웠다. 사실 어제 정남이가 본인의 제육볶음이 역대급이라며 스스로 극찬을 했었는데, 나는 큰 기대 없이 정남의 제육볶음을 한 젓가락 입에 넣고 오물거렸다.
정남이는 요리 천재인 것이 분명하다. 어쩜 이렇게 살이 쫀득거리고 양파와 파의 식감이 적절히 아삭거리지. 양념도 강하지 않고 적절한 감칠맛에 마지막에 매콤함이 입안을 찰싹하고 쳐대는 이 제육볶음.
과연 정남이가 근래 들어 만든 제육볶음 중 최고라고극찬할만하다.
언제부턴가 정남이 요리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주말마다 뭔가를 만든다고 뚝딱거리는 모양이었다.
주말에 늘 회사에 있는 나는 그 요리의 실물을 볼 순 없었지만, 파스타 같은 것을 만들어 꼭 내게 사진을 찍어서 보내곤 했다. 그리고 식중독 균에 감염되어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정남은 유튜브로 음식관련된 영상을 꾸준히 보았다. 그 영상을 내게 전송하는 것은 물론 '먹고 싶다'는 코멘트도 잊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금식 중이었던 정남은 정말로 배가 고파 힘이 들었을게다.
원래 정남은 먹는 것을 좋아하고, 반찬투정을 할 줄 모르는 훌륭한 식성을 가졌다.
퇴원을 하고 회복을 하더니, 정남은 또다시 요리하기에 매진 중이다.
업무를 하느라 바빠 밥때를 놓쳐서 그냥 굶어버리는 날도 종종 있는데, 요즘은 퇴근하고 오면 정남이가 밥을 해준다. 지난주에는 고기 덮밥을 해주었는데 벌써 이전에도 몇 번 해준 요리이다.
고기를 센 불에 빠르게 볶다가 파를 넣어 아삭함과 풍미를 더한 후, 간장 등의 양념을 입힌다. 밥 위에 바로 그 양념된 고기를 얹어서 먹는 고기 덮밥이다. 단짠 한 맛에 향긋한 파가 아작작 씹혀서 정말 맛있다. 마지막에 깨로 장식까지 해주니 화룡점정.
특히나 지난주에는 나를 퇴근시키고, 주차를 하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빠르게 고기를 볶아서 따끈한 고기덮밥을 내주었다. 요즘 요리해 주는 정남의 다정함은 그 여느 엄마에 뒤지지 않는다.
사실 정남이 요리를 시작하면서 왜 남자 요리사가 압도적으로 많은지 알게 되었다. 역시 힘이 있으니 웍을 돌리기에 적합하다.
건강하던 시절에는 나도 요리하기를 즐겼다. 게다가 아픈 후에도, 젊었을 때는 요리를 했었다. 그런데 이제 체력이 달리니 요리를 할 수도, 하고 싶지도 않아 졌다. 그런 내게 요리하는 정남의 존재는 참으로 신기하고도 반갑지 않을 수가 없다.
고기덮밥을 여러 차례 해줄 때, 한 번은 정남이가 후추를 과하게 뿌린 적이 있다. 미각이 섬세한 정연의 혀에는 대번 후추가 과하다는 것이 느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맛있다는 핵심만 전달했다. 더운 날 기껏 힘들여서 요리를 해주었는데, 지적질부터 하고 싶지 않았다. 정남은 본인의 실수를 인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에게 굳이 말할 필요가 없지. 그래서 며칠이 지난 후, 기분이 매우 좋을 때가 되어서야 정남에게 고기 덮밥의 부족했던 부분 두어 가지를 이야기해 주었다.
정남은 매일 웍을 잡는다. 새벽에는 자신을 위해 파와 계란으로 계란볶음밥을 하고, 야근이 없는 저녁에는 가족들을 위해 요리를 한다. 평일 저녁에도 제육볶음을 두어 차례 시도했었다. 정남이가 한 요리들을 먹어보면 확실히 요리에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처음 했던 제육볶음도 무척 맛있었는데, 회를 거듭할수록 맛이 더욱 좋아진다.
이제 농담인 듯 진담인 듯 정남에게 이러저러한 메뉴를 요청할 수 있다. 일본식 카레를 해달라고 했더니, 레시피를 보내라고 했던 정남이가 오늘 아침에는 본인이 찾아낸 일본 카레 레시피 영상을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요아정, 요리에 진심이 돼 버린 것 같다.
이제 다음 메뉴인 일본식 카레는 언제 해주려나. 얼른 요아정의 카레가 먹고 싶다.
요아정이 요즘 한창 유행이라지? 요거트 아이스크림의 정석. 우리 집에는 다른 요아정이 유행 중이다. 요리하는 아름다운 정남. 난 유행하는 요아정보다, 우리 집의 요아정이 훨씬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