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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보름 Mar 21. 2022

연기를 통해 찾은 인간성

[4주차 액트오브킬링] by. 고사리


액트 오브 킬링(Act of Killing).


영화의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1965년 인도네시아에서 '반공'이라는 명분으로 100만명이 넘는 공산주의자와 중국인들을 살해한 가해자이자 주역인 '안와르 콩고'를 찾아가 그들이 당시 자행했던 일들에 대한 영화들을 만들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하게 된다.


그렇게 안와르 콩고와 그 주변인물들은 즐겁게 시나리오를 짜고 그 당시에 저지른 학살들을 재연하기 시작한다.




2시간 반정도의 조금 긴 러닝타임보다 나를 괴롭게 했던 것은 그들의 태도였다. 웃고 노래를 부르며 사람들을 얼마나 잔인하고 괴롭혔는지 이야기를 하곤 한다. 차라리 모르쇠를 하지. 뭐가 그렇게 잘나고 당당할 수 있을까. 심지어 그들은 취조의 이름을 쓴 고문을 일삼았던 사무실과 같은 건물의 신문사에서 근무하던 직원에게 당당하게 말하곤 한다. "우리는 사람을 죽이는 걸 숨긴 적이 없는데 진짜 몰랐다고?"



100만명. 실제 피해자는 더 많겠지만 추산된 피해자의 수가 100만명에 달한다. 참고로, 22년 2월 기준 울산광역시의 인구수가 111만명이라고 하니,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울산 광역시에 사는 모든 인구가 사라진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도 공산주의를 지지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만약 가해자를 만드는 것이 사회라면, 정말 그들이 원치 않음에도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었다면. 적어도 그랬다면 PTSD라도 겪었어야 했다. 박하사탕에서 동원 트라우마를 가지고 망가졌던 영호처럼. 평생 죄책감에 시달리며 괴로워하던 민주항쟁에 동원되었던 몇몇 군인들처럼. 하지만 그들은 웃으면서 본인들의 과거를 재연해나갔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영웅으로써 추앙받고 TV쇼에 출연을 하고, 헤르만은 국회의원으로까지 출마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당선되지 않았다는 결과보다 그 과정이다. 그는 학살의 주연이기에 당선되지 못한게 아니라, 국민들에게 한 표를 바라며 나눠줄 '선물(뇌물)' 이 없었기에 당선되지 못했다.


100만여명의 공산당을 학살한 끝에 이룩한 민주주의에는 선물이 필요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는 크게 세 가지 장면으로 구성되게 된다.


1. 제 3자(감독)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안와르와 그의 일당들의 현 모습


2. 당사자(안와르와 그의 일당들)의 시선과 재연으로 만들어지는 영화의 모습


3. 본인(안와르)이 인터뷰를 하며 제 3자가 되어 완성된 영화(2번)를 바라보는 모습.




영화 통해 본인들의 과거를 마주하며 죄책감을 느끼고 악몽을 꾸는 안와르를 보며 나는 옛 무한도전의 정신감정 특집이 떠올랐다. 멤버들은 다양한 치료기법 중 '거울 기법'이라는 방법을 사용하게 된다. '거울 기법'은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해 행동개선이 어려운 경우 자신을 거울에 투영시켜 강제적으로 객관적인 시각을 부여하는 기법을 뜻하는 사이코 드라마의 형식 중 하나라고 한다.




안와르는 시선이 바뀌어 가며 지난 날들에 대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인다. 재연드라마가 후반에 가까워질수록 피해자의 연기를 하던 안와르는 순간순간 울적한 표정을 짓곤 한다. 안대를 쓰고 목에 '금메달'이란 이름의 밧줄에 목이 감겨 쓰러지는 연기를 하던 안와르는 복잡한 표정으로 감독에게 묻는다. 그 사람들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그러자 감독은 대답한다. 당신은 연기임을 알고도 그런 기분이겠지만 그들은 진짜 죽었다고. 그게 진짜 반성일지 연기일지 모르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것이 연기는 아니라고 믿는다.


헤르만을 포함한 다른 일행들은 그것이 본인들이 가진 권위에 대한 도전이라고 여기곤 하니까. 그래서인지 악몽을 꾸며 고민하는 안와르에게도 반복적으로 얘기한다. "걔네가 약해서 죽었는데 더 약해진 영혼이 무슨 힘이 있어. 다 상상이야." "너무 그렇게 생각하지마. 긍정적으로 생각해." 이쪽이 우리에겐 더 익숙한 모습일지 모르겠다. 5.18 민주화항쟁의 우리나라의 그 분 또한 그랬으니까.




그 분은 이후 이런 말을 했다. 비극적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느끼고 있다, 후회한다고(1988.11.23).


 '불행한 사태'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든 책임 소재가 누구에게 귀속되건 간에 책임의 일부를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상처는 아물기 전에 건드리면 다시 커져 치유가 어려워진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이 문제가 남긴 상처를 근원적으로 치유,해결하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은 반성과 자책을 느끼고 있다.(1989.12.31)



후회는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다. 대체 무엇을 후회한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문득 안와르와 함께 집행자 역을 했던 '아디 줄카드리'가 감독에게 답한 말이 떠올랐다. 전쟁에서의 정의와 역사는 승자가 규정하는 것이라고. 혹시 후회 한다는 것이 더 완벽하게 성공하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건 아니었을까 의심이 되는 순간이다.




누군가에게 인간적이라고 할 때의 '인간성'이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본질 및 본성을 뜻한다. 시대와 문화, 개인마다 조금씩 생각하는 의미는 다를 수 있으나 나는 죄를 알고 뉘우칠 수 있는 것이 '인간성'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잘못을 아는 사람만이 더 나은 모습으로 변화하고 개선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후 영화를 만든 조슈아 감독은 이후 인터뷰에서 안와르 콩고와 마지막까지 연락을 하며 지냈다고 이야기했다. 그리고 그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인간적으로 느껴진다고 답했다. 안와르는 영화를 만들기 전 만나본 약 40여명의 가해자들 중 거의 유일하게 트라우마와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나 또한 그렇게 느꼈다. 그가 한 행위들은 결코 재평가 될 수 없는 일들이다. 그는 분명히도 가해자에 속했고 셀 수 없는 피해자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결국 본인의 죄를 마주보는데에 성공함으로써, 본인이 잃었던 인간성의 한 부분을 되찾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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