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달보름 Mar 21. 2022

악이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한 고찰

[4주차 액트오브킬링] by.보름



악이 만들어지는 이유에 대한 고찰 








10여년 전 호주에서 잠시 랭기지 스쿨을 다닐 때 같은 반에 인도네시아 친구에 들었던 자신의 조국에 대한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인도와 인도네시아도 잘 구분 못하는 교양 수준이 바닥을 치던 나는 인도네시아라곤 발리밖에 알지 못했었다. 그 친구 역시 ‘네가 아는 곳이라곤 ‘발리’뿐이겠지만 나는 ‘자카르타’출신’ 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친구는 어릴 적 태어난 도시 자카르타 시내 한 복판에서 어떤 사람이 누군가의 목을 베어 그것을 자랑스럽게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봤다고 했다. 당연히 진실이 아닐거라고 ‘거질말 하지 마.’라고 응수했던 나는 <액트 오브 킬링>을 보자마자 그 친구의 이야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친구의 나이가 나랑 비슷했다고 가정하면, 인도네시아 학살이 일어난 1998년에 친구는 초등학교 고학년, 많으면 중학생이었을테니 분명 그 일을 눈으로 목격했겠다 싶었다.




<액트 오브 킬링>은 그간 다큐에서 다루지 않았던 홀로코스트의 가해자의 시선을 따라간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주 4.3 사건에 대한 <지슬>이라는 영화가 있엇지만, 이 영화처럼 가해자 편에서 다루는 도발적인 영화는 아니었다. 2시간 36분이라는 다소 긴 러닝타임을 그들의 시선으로 바라보다 보면 어쩐지 나도 모르게 토할것 같은 역겨움이 올라온다. 영화의 러닝타임이 길어질수록, 안와르 콩고의 시선이 조금 바뀔 수록 그가 ‘진짜 반성’을 했는지 ‘가짜 반성’인지 헷갈려오지만, 그럴 수록 나는 나에게 끊임없는 질문을 던졌다. 선과 악에 대한 편가르기를 하며 가해자를 비난하기 보다는 가해자가 될 수 밖에 없었던 나라의 사회 문화와 맥락적인 측면을 떠올리게 되었다.




최근 니체 철학에 관심이 가서 여러권의 책을 보고 있다. 인문학 강사로 유명한 이진우 교수의 책이 그 중 가장 흥미로웠는데, 성격에 대한 철학적인 고찰을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낸 파트가 인상적이었다. 종합해서 말하자면, 복잡하고 이기적이고 합리적인 사회에서 사람은 도덕보다는 악덕을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연민과 공감이 더욱 중요시 되어야 한다는 것. 감정에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에 따라 우리 성격은 결정되고, 그것이 삶의 형식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나와 다른 생각을 하면 ‘악’이니 ‘위선’이니 ‘배신자’니 하는 세상이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에 끝난 선거에서 서로 다른 후보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서로에 대해 하는 이야기는 그 현상을 보여준다. 다수 정당(있어도 무의미한)이 존재하지 않고 양당제 체제가 해체되지 않는 한 이 현상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우리가 양당제에 어쩔 수 없는 '차악'을 선택하는 것 역시 도덕적 실현이 아닌 악덕에 힘을 실어주는 일이 아닐까? (물론 정치에 도덕이 있을지 부터 논해야겠지만..) 




물론 그와 비교했을 때도, 안와르 콩고와 헤르만 등 영화 속 가해자가 한 행위는 끔찍하다. 더 끔찍한 것은 그들이 자신의 과거의 이야기를 지우거나 감추려 하기 보다는 오히려 드러내며 대중의 관심을 즐긴다는 것이다. ‘겉으로 보기에’ 그들이 더 악마같은 이유는 아마 우리가 고려할 수 없는 인도네이사만의 사회 문화적인 측면이 범벅되어 태어난 그들의 모습 때문일 것이다. 선거 유세 하러 온 사람에게 ‘티셔츠라도 주세요.’라고 말하는 소시민들의 삶, 소상공인에게 아무렇지 않게 돈을 빼앗아가는 조직폭력배들, 부패한 정치인 등등. 그런 이유에서 이 영화는 나를 반성하게 했다. 누구든 자신이 처한 환경에 따라 까딱하면 가해자가 될 수 있다. 1-10까지의 단계가 있다면 1과 10의 갭은 크겠지만, 악덕을 선택하는 원인과 이유는 어쨌거나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선택이라는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감독은 <액트 오브 킬링>이 각종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이후에 인도네이사에 입국 금지 처분을 당했다고 한다. 그들이 밝히고 싶지 않았던 진실을 세상에 고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그이지만, 안와르 콩고가 사망하기 전까지 조슈아 감독은 안와르와 개인적으로 연락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게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인간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이 감독의 대답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토론까지 다 하고 나니, 감독이 말했던 ‘인간적’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우리가 안와르나 헤르만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고와 감정에 대한 훈련이 필요한지 다시 한번 상기시켜 준다.




작가의 이전글 인도네시아 학살로 본 집단행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