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내가 그를 위해 울 수 있을까.
우린 추억 한 장 없다.
처음으로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낀 것은
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어렸을 땐 내게 아버지의 부재가
으레 당연했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결정되어진 일이었고,
어차피 기억 속에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별로 상처가 되는 일도 아니었다.
내게 그 부재를 느끼게 하지 않기 위해
엄마가 얼마나 수많은 노력들을 하셨는지도
너무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
열일곱.
여름이 끝나갈 때 즈음이었다.
누군가 나를 찾는다는 친구의 말을 듣고 갔던
교실 옆 화단에,
아버지가 서계셨다.
사진으로 몇 번 얼굴을 익히긴 했었지만,
실제로 그를 보는 것은
내가 아주 아기였을 때 빼고는 처음이었다.
그래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저기 서있는,
저토록 초라하고 가엾은 남자가
내 아버지라는 것을.
니가 너무 보고 싶어서 한번 와봤어.
그의 마지막 이 말만 기억이 난다.
정말 그 이후로는
이상하게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왜 내가 처음 보는 낯선 남자를 보고
그토록 오열을 했는지,
그 와중에 놀란 친구들 얼굴을 보고
창피하다는 생각을 했던 건 무슨 마음이었는지,
전화를 받자마자 학교로 달려온 엄마는
대체 무슨 심정이었을지,
왜 17년 동안 내게,
완벽하게 화려하고 멋진 아버지의 모습으로
날 속여왔어야 했는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도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다.
처음부터 기억에 있던 없던
가족의 부재는 분명 크면서
어떤 부작용이 따르게 마련이다.
나 역시도 그랬고,
심지어 현재도 진행 중이다.
원망을 한적도 많았다.
그들을 온전히 이해하기까지,
솔직히 너무 많은 시간들이 필요했으니까.
요즘 들어 자꾸 이런 것들을 생각하게 된다.
나의 어머니가 아닌 한 여자로서의 엄마의 삶,
잘못된 선택,
혹은 어쩔 수 없었던 선택,
그녀의 끔찍했던 외로움,
외할머니의 죽음,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오게 될
내 아버지의 죽음.
누가 들으면 웃을지도
아니면 욕을 할지도 모르겠다.
근데 난 가끔 진지하게 걱정했었다.
나중에 내 아버지의 장례식에 가서
눈물 한 방울조차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나도 슬프지 않으면 어떡하지. 하는.
이제 그를 위해 울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 날,
추억 한 장 없는 그를 보자마자
머리가 아플 정도로 펑펑 눈물을 쏟았던 것처럼.
언젠가 내가 지금보다 좀 더 괜찮은 어른이 돼서
작은 용기가 생기면,
꼭 한번 아버지를 만나 뵙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아버지.
엄마가 늘 제게 말씀하셨던 당신은
끝내주게 멋지고 완벽한 분이셨어요.
그냥 우리 둘 다 그렇게 기억 속에 남겼어요.
그리고 사실 저도 그동안
아버지가 궁금했고,
많이 보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