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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adme) 지구 끝의 온실(김초엽)

2월의 독서

by Jee

2월에는 한국의 SF 소설들을 읽었다. 이사하고 베란다 한편에 카페를 만들었는데, SF와 만화책으로 채우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에 찾아보니 만화책은 '위아 더좀비'가 전부이고, SF책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전부였다. 하여, 도서관에서 우리나라 SF 소설 몇 권을 빌렸다. 한국의 전래동화를 SF로 각색한 단편모음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 김초엽의 '지구 끝의 온실', 그리고 김영탁의 '곰탕'이라는 책이다. 'SNS수학문제'라는 책도 빌렸는데, 한 문제씩 푸는데 시간이 꽤 걸려서 문제만 찍어놓고 반납했다.


'당신의 간을 배달하기 위하여'는 심청전, 장화홍련전, 별주부전, 해님달님 등의 전래동화를 SF로 각색한 것인데, 이들이 그리는 미래는 모두 기술은 발달했지만, 꽤 황량했다. 인공안구를 뺏긴 심봉사를 위해 인당수라는 인공태양을 재가동시키는 임무를 맡은 엔지니어 심청이라거나, 시간여행이 가능한 행성에서 새엄마와 의붓오빠에게 죽을 뻔하는 우주비행사 장화홍련이라든가, 대전쟁의 영웅 용왕이 자신의 클론을 만들어 육지에서 키우고, 장기가 망가질 때마다 클론의 장기로 대체하는데, 클론들이 힘을 합쳐 용왕의 몸을 해킹한다든지(간은 장기들 중 최후의 퍼즐이다), 아주 오랜 기간 여행하는 도시크기의 우주선들이 있었는데 우주철이 발달하고는 쇠락한다, 어떤 곳은 낮만 있고 어떤 곳은 밤만, 어떤 곳은 남자만 있는 등 다양한 특색을 관광삼품 화한다, 등등. 스토리가 익숙해서인지 차이점이 눈에 들어왔는데, 특히 active 한 여성 캐릭터들이 스타워즈의 레아공주를 생각나게 했고, 페미니즘이 대세구나 하는 생각이 다시금 들었다.


'곰탕'은 시간 여행에 관한 책인데, 곰탕 비법과 재료를 찾아 시간여행을 한다는 왠지 아저씨 같은 소재가 내 스타일이 아니어서 몇 장 보다가 덮었다.


'지구 끝의 온실'은 기후변화를 한 방에 해결해 보겠다고 어떤 기업에서 개발하던 나노입자가 자가증식하여 '더스트'라는 재앙이 된다는 설정에서 출발한다. 더스트는 동식물을 죽이고 지구를 뒤덮었고 일부 돔 도시가 살아남았다. 회사에서 디스어셈블러를 개발해 돔 생활에서 해방된 줄 알고 살던 어느 날, 모스바나라는 잡초가 증식하는 현상이 발생한다. 알고 보니 레이첼이라는 식물학자가 유전자 편집을 통해 만든 슈퍼 잡초 모스바나에 더스트 흡착기능이 있었고, 이 공동체(온실을 중심으로 한 프림 마을)가 해체되면서 사람들이 모스바나를 전 세계에 심어 더스트의 1차 감소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밝히는 과정이 소설의 주된 스토리라인이다.


'지구 끝의 온실'에는 이런 기후변화와 관련된 얘기 외에, 레이첼과 희수간의 감정에 대한 서사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 레이첼은 인공장기로 신체를 대체해 인체 중 유기체 비율이 20%밖에 안되어 엔지니어인 희수가 계속 관리를 해줘야 했다. 희수가 레이첼에 대해 어떤 애착을 느끼고, 레이첼의 머릿속 진정 스위치를 켠 후 레이첼도 희수에게 애착을 느낀다. 희수와 폐쇄된 공동체에서 더 오래 함께하기 위해 모스바나를 더 빨리 숲 밖으로 퍼트릴 수 있었음에도 그러지 않는다. 소설은 두 사람의 감정이 어디서 왔고 언제부터 시작된 것인지에 대한 질문, 기계도 사랑할 수 있는가, 약물이나 다른 것의 영향을 받은 감정도 진짜 감정인가, 등의 의문을 독자에게 던진다.


다 보고 난 감상은 역시 세계관과 사건 중심의 SF보다는, 특정 질문에 답하는 SF(김보영, 테드 창) 소설이 내 취향이라는 것. 이 질문들은 예를 들어, 청력이 모두 사라진 세상에 들을 수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행동할까, 외모에 대해 둔감해지면 인간은 더 행복할까, 밤이 되어 잠이 드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 행성에서 잠을 자는 사람은 어떻게 살아갈까, 같은 질문들이다. 이런 질문들을 통해서 우리는 듣는다는 것의 의미를(듣는 사람들은 노래하고,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외적인 아름다움이 타인과 자신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좋기도 하고 나쁘기도 하다), 잠을 잔다는 것의 기이함(!)을 깨닫게 되는 것이다.


내가 쓰는 소설도 달라진 미래와 인간의 조건(상황)에 집중하기보다는, 달라졌지만 여전히 같은 또는 다를 인간의 행동과 생각, 감정에 집중하고 싶다. 무엇이 인간의 본질인가, 인간은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를 조금 낯선 상황에서 상상해보게 해주는 것이 SF의 매력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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