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고래는 원래 육지에 살았데. 아주 먼 옛날에 말이야. 아, 물론 모든 생물들은 물속에서 육지로 올라갔지. 고래의 조상도 물에서 땅으로 올라왔을 텐데, 왜 다시 물속으로 다시 들어갔는지는 모른데. 아마 뭔가 환경의 변화가 있었을 테고 먹이를 따라 물속으로 들어간 것 아닐까 싶어. 난 말이야, 고래가 아직도 폐를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육지 생활을 포기하지 않은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할 때가 있어. 5천만 년은 아가미를 만들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었는지도 모르지, 하지만, 뭔가, 그런 느낌이 든다는 거지. 몇 시간에 한 번씩 물 위로 올라와 숨을 쉬는 모습을 볼 때마다, 미련 같은 것이 느껴진달까, 이혼한 부부 사이에 남은 아이처럼, 끊을 수 없는 고리가 있는 것처럼 말이야.
인간이 돔으로 내려가 살기 시작하면서 난 고래를 종종 생각해. 고래를 따라 바다로 돌아가는 인간들의 행렬을 떠올려. 부드럽게 유영하는 고래 뒤를, 줄지어선 청어 떼처럼 따라가는 인간들, 몸은 장어처럼 매끈하고 창백하지. 바다 생물들은 흉물스러운 인간 떼의 등장에 불쾌함을 느껴. 돔 건설 초기엔 물속에서 숨을 쉬는 것도 부자연스러운 덜떨어진 인간들을 신기해하며 돌봐주는 동물들도 있었어. 하지만 이젠 아무 동물도 다가오지 않아. 어마어마한 쓰레기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돔을 아주 위험한 곳으로 여긴 거지.
난 말이야, 고래 낙하를 연구하기 위해서 돔에 살기로 결정했어. 원래 육지에서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분해하는 미생물을 연구했어. 전도유망한 분야였지, 요즘은 플라스틱 폐기물을 우주에 버리거나 육지에 버리잖아. 바다라는 보호막 안에 살게 되면서 인간은 완벽한 외부를 가지게 됐어. 흉한 것은 모두 갖다 버릴 수 있는 광활한 공간. 아무튼, 내가 연구하던 건 심해 벌레의 일종이었어. 바닥에 가라앉은 고래 사체에 뿌리를 내리고 고래뼈를 소화시켜서 영양분을 얻는 벌레, 좀비 벌레라고도 불러. 입도 없고 소화기관도 없이, 공생하는 박테리아의 도움을 받아 고래의 사체에서 영양분을 얻는 거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고래들이 인간이 만든 돔 근처로 와 죽는 일이 많아졌는데, 이 고래 사체라는 게 고농축 영양 물질이잖아. 농장에서 활용할 수 있을까 싶어 좀비 벌레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어.
고래 낙하는 운이 좋아야 볼 수 있어. 일단 고래 개체수가 많이 줄었으니까. 죽은 지 얼마 안 된 고래한테는 상어나 장어 같은 바다의 청소부들이 달려드니까 섣불리 다가갈 수 없고 말이야. 완전히 가라앉아서 좀비 벌레가 서식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려, 완전히 분해되는 데는 100년이 걸리니까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정말 운이 좋지. 이 돔에서 보이는 거리에 고래 낙하지점이 있으니 말이야.
은희가 돔으로 이주한 날, 은희는 “메이트”를 소개받았다. 독신인 이주자는 의무적으로 메이트와 주기적인 교류를 해야 했다. 적응을 도와주기도 하고, 운이 좋으면 친구가 되기도 했지만, 본질적으로는 새로 들어온 이주자를 감시하기 위한 제도였다. 은희의 메이트는 호리호리한 “조니”라는 남자였는데, 은희를 돕거나 감시하는 데는 큰 관심이 없는 듯했지만, 무슨 일을 하느냐는 물음에 강둑이 터진 듯 고래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풀어냈다.
고래 낙하.
은희도 돔 생활을 준비하며 본 영상에서 고래 낙하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었다. 수명을 다한 흰 수염고래가 낙하하는 모습, 처음에는 가스가 차올라 둥실 떠오른다. 상어나 새들이 살점을 뜯어먹고 가스가 빠지면 고래는 천천히 심해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크고 작은 물고기들이 고래의 살점을 뜯어먹고, 가라앉고, 살점을 뜯어먹고, 가라앉고….. 그렇게 해서 하얗고 깨끗하게 남은 뼈가 마침내 심해저에 닿았을 때, 노랗고 불그스름한 좀비벌레가 뿌리를 내렸다. 영상에서는 고래가 자신의 죽음을 일찍 알아차리고, 마지막 순간에 자신이 살던 곳에서 수백 킬로가 떨어진 곳까지 헤엄쳐 가 모든 힘을 다해 마지막 잠수를 한다고 했다. 이 마지막 잠수가 고래 낙하라고. 은희는 그 광경을 보며 거대한 것이 죽어갈 때는 그 죽음마저도 숭고하고, 거기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아마도, 고래들이 돔을 찾아와 마지막 잠수를 하는 것은, 어쩌면 인간에 대한 복수인지도 몰랐다. 이미 죽음을 앞둔 고래가, 육지를 망친 것으로도 모자라 바닷속도 망가뜨리고 있는 인간들에게 보내는 경고. 은희는 고래의 입장이 이해가 되면서도 항변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리도 살고 싶어, 너희들이 그랬듯이, 다시 바다로 돌아오고 싶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