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째
여자는 손바닥으로 물을 저었다. 손이 물을 밀고 나가는 느낌, 지그시 누르는 무게감. 여자는 방향을 바꾸어 손날로 물을 저었다. 물은 쉽게 썰려 나갔다. 마치 없는 것처럼, 때로는 공기처럼 가벼웠다. 여자에게 물은 언제나 투명하고 헤쳐 나아갈 수 있는 부드러운 물질이었다.
요즘 나는 몬스테라가 된 기분이야.
여자는 지독히도 자라지 않는 몬스테라를 떠올렸다. 계절이 바뀌어 기온이 오르고, 이름 모를 식물들이 모두 하룻밤 사이에 한 뼘씩 왕성히 자랄 때에도, 미동도 없던 몬스테라. 영양제를 주고, 잎에 부지런히 분무를 해주어도 소용없었다. 마치 이곳을 거부하는 것처럼, 조용한 항명을 하는 것처럼, 그렇게 몬스테라는 멈추어 있었다.
손바닥으로 물을 저으며 몬스테라를 생각한다는 것은 낭만적인 일이다. 여자는 스스로에게 설득조로 말했다. 나는 낭만적일 수 있을 만큼 풍족하고... 그러니까 행복해야지. 하지만 듣는 자신은 아무런 감흥을 받지 못한 듯했다. 흥, 그건 니 생각이고.
열대우림이랑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주면 돼요.
여자는 자신의 작은 서재로 몬스테라들을 옮기고, 난방을 틀고 가습기를 최대한으로 돌렸다. 예전 아마존 숲에 갔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피부가 축축하고 찐득하게 되도록 애썼다. 책들이 쿰쿰한 냄새를 풍기며 반응을 시작했고, 몬스테라의 잎에 물방울이 맺혀 컴퓨터나 키보드에 떨어지곤 했다. 2주가 지나기 전에 몇 달 동안 말려있던 새잎이 도르르 풀리며 반투명한 연두색 잎을 펼쳤다. 공중뿌리가 허공으로 뻗어나가려고 부풀어 올랐다. 잎맥이 덧그린듯이 짙어지고, 손등의 잔근육처럼 불거졌다. 겨우 2주 만에.
습하고 무거운 공기가 방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여자는 문득 자신에게 필요했던 것도, 더 무거운 무언가는 아니었을까, 가볍고 쉬운 것보다, 무겁고 거추장스러운 것, 나를 잡아끄는 것, 운명처럼 족쇄처럼 답답한 것이 아니었을까 자문했다.
내가 만날 수 있는 물든 너무 얕은 것뿐이어서, 그래서 착각했던 거야.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물질의 밀도가 옅을 때, 마음껏 그 속을 헤치고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을 때, 그럴 땐 현실이 한없이 경쾌하고 어려움은 장난처럼 가볍다. 공기를 장애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처럼, 아주 얇은 종이를 보면 쉽게 (찢고라도) 통과할 수 있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는 것처럼. 아마도, 수십 킬로미터에 이르는 물이 여자를 둘러싼다면, 바로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그 안에 갇혔다는 것을, 이 무거운 것을 지고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
여자는 오랜만에 파랗게 개인 하늘을 바라보며 해변의 얕고 투명한 물을 떠올렸다. 파도도 없이 잔잔한, 모래바닥과 그 속을 유영하던 작은 물고기들이 모두 보일만큼 투명했던, 어린 날의 나에게 허락되었던 바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깊은 심해를 떠올렸다. 무겁고 검은 심해. 이제부터 살아가야 할 곳은 거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