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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리씨 Jul 08. 2020

3화_ 소개팅에서 결혼까지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20대 중반부터 몇 차례의 소개팅을 가진 적이 있는데 그 몇 차례를 통해 나는 소개팅으로 누구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과감히 접었었다. 때문에 결혼까지는 더더욱 내 일과 멀다 생각했고.


2화에서 남남으로 시작해 남남으로 끝이 날 줄 알았던 우리의 만남에 다시 봄바람을 예고한 것은 돌변한 나의 결단에서부터였다. 여자가 사랑을 쟁취하는 데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못할 게 없다는 걸  그때의 나를 통해 알게 되었다. 다시, 준우 오빠(가명)에게 연락을 해보아야겠다는 결단. 나도 안다, 이 얼마나 기가 막히는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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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에서, 세 번의 소개팅 끝에 만남을 이어가 보는 것이 어떻겠냐 물어오는 준우 오빠의 물음에 '어떻게 세 번의 만남으로 상대방을 다 알 수 있나요?'라 되묻고는 칼같이 거절했던 사람이 나였다. 평균적으로 세 번까지 만났으면 그 만남은 긍정의 의미로 해석될 수 있어 남자는 암묵적으로 여자의 yes를 확신했을 터인데 나는 그 순간에 no를 뱉어버린 것이다. 그러고 지금, 다시 만나보려고 오히려 내가 들이대는 모습을 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힌 일인가.


'아니! 세 번까지 만나 놓고 왜 안 만났대?' 아직까지도 현 남편이 된 준우 오빠는 의문을 가진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때 나에게 차이고는 자존심에 큰 스크레치를 입었다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답을 주는 자리에서 내가 밥을 사고 no를 했던 것. 준우 오빠가 잠깐 화장실 간 사이에 밥값을 계산한 걸 보고 준우 오빠는 no를 예감했다 했다.






같은 건물에 있으니 안 마주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으나, 한 번씩 마주치게 되면 깜짝 놀라 눈을 피하곤 했다. 당당해도 내가 당당한 게 맞는데 오히려 내가 눈을 피하고 있고 준우 오빠가 그런 나에게 다가와서 안부를 묻는 그림이었다. 우리 사이에 아무 일이 없었다는 듯 '안녕? 잘 지냈어?' 했던 모습은 지금 떠올려도 놀랍다.


사실, 돌이켜보면 나도 그에게 아주 호감이 없진 않았던 것 같다. 자고로 여자는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에 마음이 녹기 마련인데, 준우 오빠와 처음 통화했을 때 목소리가 새삼 묵직한데 달콤하고 다정해서 굉장히 설레 했던 기억이다. 세-네 번의 만남을 통해 준우 오빠는 강한 스파크를 주는 사람이 아닌 어느 순간 옷을 젖게하는 가랑비 같은 사람임을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원래 가랑비란 그런 것이리라. 그는 부드러웠고 매사 다정했으며 싫은 소리 잘 못하는 한결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연애 1년 6개월, 결혼 1주년을 보낸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소개팅을 하기 전에 들리던 소문은 학벌, 외모 등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상하게 어느 순간부터 그의 평소 인성과 태도에 대해 듣게 되었다. 나와 오빠가 소개팅을 한 걸 알 리 없는 사람들인데 이상하게 내 앞으로 그의 담화가 왔다 갔다 하곤 했다. 그러니까, 많은 이들의 입에서 좋은 말들만 오르내렸던 그. 그런 사람이 어딨냐며 가식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완벽한 사람은 세상에 없다, 분명 하자가 있을 거다"라고 충분히 넘겨짚을 수 있었을 텐데 세-네 번의 만남을 통해 내 마음은 이미 그 사람을 인정하고 그 사실에 대해 증명이라도 한 듯했었나 보다. 이상하게 자꾸만 신경이 쓰이고 생각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결국 내가 사고를 치고 만다. 2017년 크리스마스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준우 오빠에게 '메리 크리스마스 되세요'라고 문자를 넣어버린 것. 그러면서 '시간 되시면 주중에 한 번 만났으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는데 '응 메리 크리스마스, 오빠 오늘 할머니 돌아가셔서 장례식장에 있어. 나중에 연락하자'라고 답이 왔다. 차라리 몰랐다면 괜찮았을 텐데, 알아버린 이상 장례식을 가야 할 것 같아 장례식장을 묻고 싶었는데 물어봐봐야 안 알려줄 것 같아 차마 그러질 못하고 긍긍해하던 차에, 당시 준우 오빠와 함께 팀으로 일하던 은혜(가명)로부터 장례식장을 다녀왔다는 얘기를 들은 것을 떠올렸다. 누구의 장례식이었는지 말해주지 않아 몰랐지만 그냥, 뭐랄까, 느낌이 왔다.


사실, 크리스마스날 은혜 그리고 몇몇 친구들과 함께 포항에 송정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었는데 갑작스러운 장례식으로 은혜는 우리와의 여행에서 빠지게 되었었다. 나와 준우 오빠 사이를 알 리 없는 은혜에게 물어보지 못해 나는 같은 팀인 중석이(소개팅 중매인, 1화 참고)에게 연락했다. 역시나 중석이도 장례식장을 다녀왔다 했다. 준우 오빠가 같은 팀원에게만 말했다며 소문 돌기를 원치 않는다 하여 나에게도 안 알려주려는 중석이를 계속 귀찮게 했던 기억이다. 중석이도 의아했을 것이다; 준우 오빠와 나의 소개팅이 그리 좋은 결과를 내지 못했다는 걸 준우 오빠를 통해 들어 알고 있을 터인데, 장례식장에 가겠다고 소개팅녀가 중매인을 박박 긁는 꼴이라니. 결국 중석이로부터 장례식장을 알아내었고 그곳이 포항에 있는 한 장례식장이었다는 것을 알고 크게 탄식했다. 크리스마스 당일에 알았다면 포항 놀러 간 김에 들렀다 왔을 텐데 집으로 돌아온 후 알게 되어 그 다음날 퇴근하고 바로 포항으로 달려갔다.


장례식장에 도착하자마자 아는 사람이 없어 문 앞에서 서성이다 나와야만 했다. 다행히 나를 본 사람은 없었다. 준우 오빠도 없었다. 복도에 나와 전화를 걸었는데 때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던 준우 오빠를 발견했다. 신호가 가는 나의 전화를 끊고 "나중에 전화드려도 될까요?"의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 그 모습을 봐버린 나는 지나가는 준우 오빠를 용기 내어 부르지 못하고 문자를 남겼다.






문자를 확인하고는 바로 전화가 걸려온다.

나: 여보세요?

준우: 여보세요? 어~ 이 문자 무슨 뜻이야?

나: 나 왔다고.

준우: 어디를.

나: 여기 나 왔다고요.

준우: (복도에서 눈이 마주치며 깜짝 놀라 하는 모습)



일단 자세한 얘기는 이따 하기로 하고, 돌아가신 할머님께 먼저 인사를 드렸다. 어른들이 많이 놀라 하시고 관심 가져 주셨다. 대구에서 혼자, 그것도 여자 한 명이 할머님을 뵙겠다고 이 밤에 왔다고. 훗날 알게 되었지만 어른들은 당시 나를 눈여겨보셨다 했다. 결혼하겠다고 인사시키려 데려온 여자가 나여서 별로 놀라워하지도 않으시는 눈치였다. '그럼 그렇지' 하시는 반응. 하지만 정확히 우리 둘만 아는 사실은, 이 날 우리는 아무 사이도 아닌 진짜 남이었다는 것.


준우: 어떻게 알고 왔어?

나: 몰랐으면 안 왔죠 그런데 알아버렸잖아. 알게 됐으면 와야죠.


그러고는 자리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나: 할머님 잘 보내드리고, 나중에 정리되면 한번 만나요.

준우: 그래, 그러자. 와줘서 고마워, 잘 가.






?



해가 지나가도록 새해 인사도 없고, 만나자는 연락도 오지 않는다. 12월 말에 할머니 장례식장에 와 주어 고맙다는 모두에게 돌리는 문자 말고는 만나자는 연락이 도통 오질 않는다. 그래서 결국 또, 내가 나서게 되었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까지 쟁취적인 일을 하다니, 연락이 없어 약간 약 올라하기도 했던 것 같다.


2018년 1월 초의 일이다.

신년 인사인 척하며 문자를 넣어(그러고 보면 시기도 한몫했지. 크리스마스, 연말, 연초 - 덕분에 연락할 수 있었다) 언제 만날 지에 대한 얘기를 한다. 다행히 답이 왔다. 언제가 괜찮냐 맞추다 보니 1월 12일로 조율되었다. 1월 12일이라, 그 날은... 나의 생일날이다.






저녁을 꽤나 근사한 곳에서 먹었다. 그곳에서의 대화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카페로 발걸음을 옮겨 뜸 들이다 어렵게 말을 꺼내었다. 혹시 아직도 만남을 이어가 보면 좋겠다는 마음이 남아있는지. 당연히 준우 오빠는 당황해하는 눈치였다. 사실 나는 내가 이렇게까지 했기 때문에 준우 오빠가 대충은 눈치를 채고 있을 줄 알았는데, 너무 놀라워하고 당황해해서 되려 내가 더 부끄러워진 그림이었다. 준우 오빠는 한 주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답변했다. 그리고 우리는 헤어졌다.


몰랐을 거란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 해서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런 남자의 심리는 뭐냐며 가까운 남사친인 곰 이에게 자문을 구했다. 곰이의 답변은 간단했다. "걱정 마, 그분은 이미 마음으로 결정을 내려놨을 거고 한 주의 시간을 달라 했지만 3일 내로 연락 올 거야".


정말 3일 내로 밥을 먹자는 답이 왔다. 그 주 주말로 시간을 잡고는 또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며칠 동안 가져야 했다. 솔직히 복수하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곰이의 의견은 이랬다. "봐봐, 3일 내로 연락 왔고, 밥을 먹자 했잖아? 그럼 그건 긍정의 기운인 거야".


시간이 지나고 주말이 되었다. 준우 오빠는 토요일임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했고, 때문에 우리의 저녁시간은 많이 늦어졌다. 준우 오빠의 차를 탄 후 뱃속에서 난 "꼬르륵" 소리 때문에 부끄러움은 배가 되었고 그 덕분인지 둘 사이의 긴장은 풀어졌다.


조용히 멕시칸 음식을 먹는데 오빠가 선물 하나를 건넨다. 충전식 손난로였다. 생일 축하한다며. 나도 선물을 건넸다. 핸드크림이었다. 준우 오빠는 나와 생일이 이틀 차이라는 걸 지난번 만남에서 우연히 알게 되었다. 사귀는 사이도 아니고 더군다나 남이 될지도 모르는 사이라 선물의 종류와 사이즈를 정하는 일이 힘들었다. 그런데 손난로라니, 이건 뭔가 따뜻한 기운이었다.


저녁을 먹고 차 한잔 하며, 준우 오빠는 조심스레 "만나보는 게 어떠냐"라고 답을 주었다. 그제야 나는 묵혀왔던 숨을 뱉어냈다. 그로서 1일. 우리는 돌아가는 길에 어색한 기운을 연장한 채, 손을 잡아야 할지 몸과 몸 사이의 거리는 어떻게 하고 걸어야 할지를 고민만 하며, 어색한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우리는 연애 1년 6개월 끝에 마침내, 결혼에 골인했다.

연애 1년 6개월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그때 마음고생한 것 생각하면 지금도 속이 타들어가지만 뭐, 다 지난 일이고 지금 결혼 생활이 너무 행복하니 다음 화부터는 연애 때의 얘기를 써내려 가 봐야겠다.


아무쪼록 우린,

결혼했다고요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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