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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보리씨 Apr 16. 2020

2화_소개팅 만남의 마지노선,

한 번인가 세 번인가, 그 이상인가?



마지노선: 더 이상 허용할 수 없는 마지막 한계선





"호감이 안 생기더라도 세 번은 만나봐야 상대방을 알 수 있어"

"한 번 만나고도 첫 느낌이 별로면 두 번 이상 만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글을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선 하나의 소개팅에서 몇 번의 만남까지 이뤄져야 그다음 단계(연애로의 발전 혹은 끝)로 갈 수 있다 생각하시나요? 저의 경우는 그때그때 다르긴 하지만 후자 쪽에 가까웠어요. 크게 매력 없는 상대방이라 하더라도 첫 느낌이 괜찮다면 두-세 번이고 더 만나볼 수 있고 그 반대라면 과감하게 끊어냈었죠. 첫 느낌이 별로인데 더 만나봐야 서로에게 시간 낭비, 돈 낭비밖에 될 것 없다는 주의였어요(과거형).


소개팅을 많이 했던 것은 아니지만 몇 번의 소개팅을 통해 이건 정말 저와 맞지 않다 생각했죠. 생각보다 에너지 소비가 크더라고요. '그냥 밥 한 끼 공짜로 먹는다 생각하고 만나봐~'하는 말도 불편했던 것이, 내 에너지값을 생각하면 공짜도 아니더라고요. 더군다나 사주시는 밥을 얻어먹으면 불편해서라도 후식은 꼭 제가 계산하게 되고.


그랬던 제가 소개팅으로 구 남친(현 남편)을 만나게 되었다면 믿으시겠어요? 첫 마주침(1화)에 대해 좋았던 기억이 없어서 소개팅 첫 만남이라고 좋을 순 없었어요. 더 이상 만날 이유 없겠다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두 번째, 세 번째까지 만나게 되었고 세 번째 만남에서 남편은 진지하게 연애를 해보는 것이 어떠냐 물어왔죠. 패기 넘치게 거절했답니다. 남편은 아직도 어이없어해요. 세 번까지 만났으면 남자 쪽에서는 당연히 이 여자도 자기에게 호감이 있는 것이라 생각할 텐데 세 번까지 만났으면서 거절했다고. 남편을 세 번 만나고도 고백을 거절했던 이유는 세 번밖에 안 만났는데 어떻게 상대방을 다 알 수 있냐, 세 번은 모자랐다는 것이 저의 변명이었어요. 밀당이 아니라 저는 정말 이 사람을 만날 생각이 조금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결혼까지 할 수 있었냐고요? 지금부터 스토리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boryeomi/16










2017년 11월 24일. 소개팅 첫 만남이 이뤄졌다.

이 날짜를 기억하는 데에는 지금 사용 중인 폰의 약정 기간이 한몫했다. 2019년 11월 23일부로 약정 만료 및 단말기 보험 서비스가 끝났다는 알림 문자를 받았다. 폰을 바꾼 지 벌써 2년이 지났다니.


준우 오빠(가명)와 처음 소개팅을 했던 날은 내가 아이폰 X를 구입했던 날이었다. 겁도 없이 소개팅 두 시간 전에 폰을 바꾼 소개팅녀, 나야 나. 연락이 안 되는 상황을 생각 못했던 것은 아니나 X전에 쓰던 64기가 폰의 적은 용량 때문에 카톡 메시지도 안 뜨는 상황이 발생하자 안 되겠다 싶어 퇴근 후 바로 근처 판매점으로 발걸음해 쿨하게 개통시켰던 기억이다. 다행히 무사히 개통이 되었고, 전화번호 날림도 없이 카카오톡까지 무사히 동기화되어 한 시간 앞둔 소개팅을 무산시키는 개념 없는 소개팅녀가 되는 일은 면할 수 있었다.


준우 오빠는 당시 내가 살던 집 근처까지 와주겠다 했었다. 일단 본인의 퇴근시간이 불명확했을뿐더러 당시 11월 24일은 금요일이었던 터라 구미에서 대구까지의 교통상황에 따라 많이 늦어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첫 소개팅이니만큼 여자 입장에서는 조금 불쾌할 수도 있었는데, 이유를 명확하게 해 줄뿐더러 집 앞까지 오겠다 하니 나로서는 싫을 이유가 없었다. 저녁 8시 즈음 차나 한 잔 하자고 해서 식사가 아닌 점에 처음엔 적잖게 놀랐으나(이런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에) 티타임이니 오히려 부담 없이 가볍게 만나기 좋겠다 생각되었다.


테이블 위의 커피 잔 사이로 소소한 얘기들이 오고 갔다. 소개팅 첫날에 두 남녀가 어색하게 마주 앉아 무슨 얘기를 했겠어, 할 말 없으니까 '저 오늘 폰 바꿨어요' 했던 것이 지금까지도 놀림감이 되고 있다. 사실 왜 이걸로 놀림받아야 하는 건진 아직도 모르겠으나... 남자들은 호감을 가지고 있는 이성의 예상치 못 한, 별 것 아닌 행동에 더 호감을 느끼고 그러나 보다. 놀림받을 때마다 조금 억울하긴 한데, 그 모습이 그의 눈엔 귀여웠으니 그러나 보다 하고, 지금은 그러려니 넘겨버린다.


하지만 이건 지금의 생각이고. 당시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얼마나 서로 할 얘기가 없었으면 바꾼 폰으로 대화를 이어갔을꼬. 기대감을 가지고 나갔던 것도 아니기에 스파크가 파바박하고 터지지 않는 이상 상대방을 이성으로 느끼기엔 힘이 드는 시간이었다. 다정한 목소리를 호감으로 느끼기엔 서로에 대한 질문도 없었고, 낯가림은 없으나 나도 대화를 이끌어가는 타입은 못 되는데 양쪽이 모두 그러고 있으니 소비되는 에너지가 장난이 아니었다. 대화를 리드해가길 바랬던 기대와 달리 이 사람은 굉장히 무뚝뚝했다, 심심했다, 재미가 없었다. 한계선에 다다랐을 때 (지금 생각하면 미친 짓이지만) 전 남자 친구(들)의 얘기를 꺼내었다. 사실 이 얘길 했다는 건 '너 out'이라는 뜻이었는데 '저에 대한 호감을 멈춰주세요 저 소개팅남 앞에서 전 남자 친구 얘기하는 미친 여자예요-'라고 돌려 말하는 중이었다. 아마도 이 남자 또한 '이 여자 왜 이러지?'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왜 이런 얘길 나한테 하는 거지?'


그 생각이 통했다면 우리의 만남은 여기서 끝이 났을 텐데 헤어질 즈음에 "우리, 다음엔 언제 만날까? 언제 시간 돼?"하고 능글맞게 치고 들어오는 남자. 사실 이건 내 계획에 없던 그림이었다. 지금까지 소개팅에서도 그랬듯 보통은 귀가 후 문자로 애프터를 논하곤 하는데 이렇게 얼굴을 마주한 상황에서 훅 하고 들어오니 반사적으로 '아, 네... 저 다음 주 주말에 시간 돼요'하고 대답해버린 것이다.








두 번째와 어쩌다 보니 세 번째 만남까지 성사되었다. 세 번째가 성사된 것도 이와 같은 루트였다. 방심하고 있다 또 당한 것이다. 얼굴 보고 정중히 거절 같은 거 잘 못하는 탓에 세 번째까지 가게 되었는데 이게 실수였는지 세 번째 때에 진지한 만남을 이어가 보는 것이 어떠냐 물어오는 물음에 나는 그때서야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바로 거절 의사를 밝힌 것은 아니고, 생각해보겠다 말하고는 한번 더 만남을 가진 후 거절을 했다. 이쯤 되면 내가 바로 밀당하는 나쁜 니연. 훗날 연애하면서 들은 건데 남편이 정말 마음에 스크레치를 크게 입었었다 했다. 남편은 자존감이 매우 높은 편. 더불어 자존심도 있는 편. 그런 그에게 그의 마지노선이었던 세 번까지 만나 놓고 네 번째에서, 그것도 냉정하게 돌아섰던 나에게 그는 속으로 욕도 했다 말해주었다. 응, 지금 다시 그때를 떠올려보니 욕먹어도 싸다, 나.


그렇게 우리는 소개팅을 하기 전 보다 더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이 것은 12월 초-중반의 일.

끝이 난 줄 알았던 우리 관계에 봄바람이 불어오는 일이 생기게 됩니다. 3화에서 만나요!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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