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쌀케이크 사업 중단에 대한 단상
얼마 전 아래의 두 기사를 보았다. 2020년과 2021년에 군대에서 내가 먹은, 주문했던*(아래에 후술) 케이크들이 생각났다.
"군 쌀케이크 일방적 급식 중단에 소상공인·취약층 일자리 '직격탄'(이자현 기자 / 경인일보)"
http://www.kyeongin.com/main/view.php?device=pc&key=20220109010001429
"'군 급식 개선'에 장애인 케이크 퇴출‥"시간이라도 주세요"(홍의표 기자 / MBC)"
https://imnews.imbc.com/replay/2022/nwdesk/article/6333014_35744.html
군 쌀케이크(이하 쌀케이크) 보급 사업이 중단되었다. 작년부터 논란이 된 '부실 급식 개선방안'의 일환이다. 국방부 측은 부실 급식의 원인을 식품 조달 방식에 있다고 보고 대대적인 변화에 나섰다. 그 과정에서 쌀케이크는 1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졌다. 사실상 퇴출이다.
인터넷에서는 갑론을박이 한창이다. "맛이 없다", "그동안 짬처리(잔반 처리라는 군대 은어)였다", "장애인들이 만들었다고 군에 무조건 납품되어야 하느냐"라는 의견과 "나는 맛있었다", "갑자기 없애는 것은 역시 군대식 행정", "좋은 일이었는데 안타깝다"는 의견이 맞서는 모양새다. 쌀케이크에 대한 여러 추억이 있는 나는 아쉬운 감정이 든다.
쌀케이크를 처음 맛 본 곳은 훈련소였다. 갓 입대한 장병에게 생일은 사치다. 모든 것이 낯선 새로운 환경에서 하루하루 훈련과 일과를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핸드폰도 없지만 그저 '생일이기에' 인터넷 편지가 평소보다 두둑하기만을 기다린다.
그러던 와중에 방송 스피커로 몇 번 몇 번 훈련병들의 번호를 부른다. 해당 달에 생일이 있는 훈련병들이다. 그들에게 케이크를 나눠준다. 분홍색 케이스에 "생일을 축하합니다",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라는 글귀가 적혀있다. 16명 정도 되는 훈련분대라면 두어 명 정도는 생일이 있기 마련이다. 다 같이 나눠먹으면 몇 입 먹지도 못하지만, 그래도 그 날의 생일 케이크는 달콤한 기억이었고, 서먹했던 생활관 분위기는 음식을 함께 먹으며 조금씩 친해진다. 케이크 위에는 초콜릿이 있는데 '대한민국 국방부'라고 적혀있다. 유쾌한 단어는 아니지만, "군대라는 영 못마땅한 조직이 그래도 생일을 챙겨주기는 하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대에서 나의 보직은 인사행정병 소총수였다. 말단 독립초소 소총수 행정병의 삶이 대개 그렇듯, 인사업무는 중대의 모든 살림살이를 총괄한다. '사람'이 관련되어있으면 다 '인사'다. 휴가 관리, 전투력 현황 관리부터 보궐선거인 명부 관리까지 맡았던 기억이 난다. 그 중 월마다 해야 하는 업무가 있는데, '생일자 관리' 업무다. 구체적으로 '생일 케이크 조사 및 보고'의 일이다.
익월 생일자들을 부대행정업무로 조회하고, 어떤 케이크 맛을 선호하는지 조사(화이트, 초코, 모카, 딸기, 녹차)한다. 그 내역을 상급부대로 보내면, 월 초에 쌀케이크들을 실은 트럭이 중대에 온다. 쌀케이크를 분출하고, 확인하고, 서명을 받아 다시 상급부대에 보고하면 된다. 생일과 전입 기간이 애매한 신병이나 전월 누락자가 있으면 소급 신청을 한다.
조달 방식이 제법 허술한데, 근본적인 '맛 문제'와 더불어 쌀케이크에 대한 불만은 이곳에서 기인할 것이다. 일단 쌀케이크 보급 트럭이 한 달에 한 번 오기에 정확한 생일날에 먹는 케이크가 아니다. 그리고 만약 쌀케이크 불출일과 휴가 기간이 겹친다면 쌀케이크를 먹을 수도 없다. 유통기한이 짧기 때문이다. 그런 경우에는 해당 소대원들이 대신 먹는다. 가끔 해당 소대원들을 포함해 '입이 심심한' 야간 근무자들이 교대시간 야식으로 슬쩍 빼먹기도 한다. 또한 중대 행정병(인사 혹은 보급)의 자질 문제로 맛을 랜덤으로 시키는 경우가 있다. 나도 전임자에게 "대충 8명 정도가 생일이면 화이트 빼고 나머지 네 종류를 두 개씩 시켜라"라고 인수인계를 받았다. 그렇게 되면 자신들의 생일 케이크의 맛을 두고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선착순으로 가져가는 촌극이 발생한다. 이 미련한 일처리는 내가 한 번 행정보급관님께 혼나고서야 시정되었다. 아예 쌀케이크 신청을 깜빡하고 넘겨버리는 경우도 많다. "나 저 케이크 본 적도 없는데"라는 경우는 대개 담당 병사나 보급계 간부의 업무 소홀 탓이다.
맛 문제는 호불호가 갈릴 것이다. 일단 냉장 시설이 열악한 일부 부대에서는 맛이 변질될 우려도 크다. 그리고 장애인 노동자들이 사회적업체에서 생산하는 쌀케이크가 영외 유명 베이커리나 디저트 가게의 케이크에 비할 수 없다. 단가에서부터 차이가 난다. 쌀케이크 배정 단가가 10000원~15000원 정도이다. 유명 브랜드 케이크의 절반 수준이다. 그리고 격오지에 위치한 부대 배송 비용까지 고려하면 '맛과 외양이 화려한' 케이크는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렵다. 그리고 군대 보급 케이크는 '밀'이 아닌 '쌀'을 주원료로 하는데 이는 국가적으로 남아도는 쌀 소비를 위한 궁여지책이다. (이 점에서는 군인을 수단으로 삼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맞긴 하다.) 개인적으로는 쌀케이크를 먹으면서 맛에 불만을 가진 적은 없다. 분대원들과 나눠먹어서 그런 지는 몰라도 맛이 있었고, 쌀이 주원료여서 많이 먹어도 속이 불편하지 않았다.
여하튼 쌀케이크 트럭이 오는 날은 기쁜 날이다. 외롭고 지겹고 힘든 군 생활에서 생일이라고 작은 먹거리라도 오는 것은 소소한 행복이다. 소대원-분대원들이 나누어 먹는 것이기 때문에 맛을 두고 유쾌한 논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그나마 쌀케이크라도 있기에 노래도 부르고, 생일빵(?)도 때리고 제법 초보적인 축하 파티의 분위기도 난다. 퇴출된 쌀케이크 대신 도입된다는 '복지 포인트'로 과연 생일 축하송을 부를 수 있을까?
쌀케이크 퇴출 논쟁에서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상기의 기사들도 지적했듯이 장애인 노동자들의 일자리 문제다. 해당 사업이 중단되며 장애인들이 하루아침에 일자리를 잃을 위기에 처했다. 이들은 자폐와 장애의 중증으로 기존에 만들어오던 제빵 업무를 바꾸기도 어렵다. 처음 케이크 케이스를 보며 '이 케이크는 장애인들이 만들었습니다'라는 글을 보고, 참 의미 있는 케이크라고 생각했다. 중증장애인들도 군납 케이크를 만들며 '그들이 할 수 있는' 국방의 의무에 헌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이들은 영외에 있지만, 영내 사병들을 위해 쌀케이크를 만들며 병사들을 소소하지만 행복하게 해 준다. 각종 사건사고 및 괴롭힘으로 신문 사회면에 등장하는 '똥별' 아저씨들, 군 장병 비하 발언을 하는 일부 시민들보다 쌀케이크를 만드는 장애인 노동자들이 병영 사기 진작에 더 도움이 된다. 결국 사회적업체에서 쌀케이크를 만들 기회를 잃은 중증장애인들은 국방과 군을 위한 작은 임무, 그들에게는 막중했던 역할마저 잃게 되었다.
병영 급식 체계에 문제가 있다고 쌀케이크를 '갑작스레 퇴출' 하는 것은 전형적인 군대식 행정이다. 기사에 따르면 (맛이라든지 문제가 있으면 '이런 부분은 이렇다', 얘기해줄 수 있는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납품 안 할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통보를 받으니까 막막한 거죠.-사회복지사) 역시 '통보'였다. 행정예고도 없었다. 더 맛있는 케이크를 위해서 책정된 단가를 높이거나, 배송 및 불출 과정의 개선을 모색하거나, 행정 시스템 관리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큰 문제가 생기면, 파생되어 '보이는' 모든 문제들을 없애버리는 것. 군인들이 이유 없이 '뺑이 치던' 허탈감을 '(광의의 의미에서) 국방에 참여했던' 장애인 노동자들도 겪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맛없는' 쌀케이크가 '짬처리'라면, 미리 사회적업체 측에서 계란, 쌀, 포장지 등을 주문한 주인 없는 그 '짬'은 누가 치워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