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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찬종 기자 Feb 08. 2020

섬뜩한 예감, 불길한 예언

 윤서인 씨의 후회와 다짐을 보며 불안감을 느낀 이유


청와대 관계자들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검찰 간부들을 청와대가 교체하고, 청와대 사람들은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청와대 비서관은 기소되자 검찰총장을 고발하면서 '공수처가 수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의 지시를 무시한 뒤 법무부 장관에게 먼저 보고하고, 법무부는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아 청와대 관계자를 기소한 수사팀 검사들이 "날치기 기소"를 했다며 "감찰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하고...


이 모든 일이 '검찰개혁'이고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라고 말씀하시는 분이 많습니다. 조국 전 장관과 청와대 관계자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수사권과 기소권 남용'이기 때문에,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에게 주어진 인사권과 사무감독권으로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해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만약 정권이 바뀌어서, 지금 검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의 정당성을 주장하시는 분들의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이 집권해 검찰 인사권과 사무감독권을 장악했을 때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어떻게 반응하시겠습니까.

우리 편이 아닌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 있을 그때에도, 청와대 관계자들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검찰 간부들을 청와대가 교체하고, 청와대 사람들은 검찰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고, 청와대 비서관은 기소되자 검찰총장을 고발하면서 '공수처에서 수사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서울중앙지검장은 검찰총장의 지시를 무시한 뒤 법무부 장관에게 먼저 보고하고, 법무부는 검찰총장의 지시를 받아 청와대 관계자를 기소한 수사팀 검사들이 "날치기 기소"를 했다며 "감찰 필요성을 확인"했다고 발표하는 행동이 정당하다고 옹호하실 수 있겠습니까?


정권이 바뀐 뒤에도 이런 일은 '법률에 보장된 대통령의 인사권'과 '법무부 장관의 사무감독권'을 행사하는 것일 뿐입니다. 지금은 합법인데, 그때는 불법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때가 되면 어떤 논리로 이런 행동을 비판할 수 있겠습니까?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우파' 만화가이자 유튜버인 윤서인 씨가 쓴 글을 우연히 접했기 때문입니다. 윤서인 씨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사태를 보면서 "우리 욕만 할 게 아니라 한 번 잘 생각해보자. 솔직히 얘네들 너무 잘 하잖아? 권력은 이렇게 유지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하는 게 미개한 한반도에서는 그냥 정답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가 어딨음?"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왜 안 되는데? 민주주의를 죽여서? 헌법을 훼손해서? 원칙을 어겨서? 아니 그게 뭔데? 그거 잘 지키면 뭐가 좋은데? 지금 나라가 왜 이 꼴이 났지? 난 이런 거 볼때마다 누구 생각이 나서 정말 속 터진다. 지금 억울하게 고초를 겪고 계셔서 말하기가 참 조심스럽지만 ㅠㅠ 도대체 왜 그 분은 그 자리에서, 그 많은 권력과 의석수를 가진채로 그렇게나 무기력했을까?"라고 말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국정농단 사태 때 지금 문재인 정부의 행동처럼 대처했다면 탄핵을 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죠.

윤서인 씨는 "제발 이제는 이쪽에서도 이기는 지도자를 보고싶다. 민주주의 헌법 원칙 같은 거 지킨다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도자 같은 거 또 보고싶지 않다. 착한 거 질색."이라고 결론을 냅니다.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이 다시 집권한다면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고 있는 방식을 채택해서 권력을 유지하고 승리하기를 바란다는 뜻입니다.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윤서인 씨의 발언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대부분의 이슈에 대해 윤서인 씨와 생각을 달리 합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국가 권력을 부당하게 농단한 혐의로 탄핵되고 유죄를 선고받은 것이 맞으며, 박 전 대통령이 만약 자신을 수사하는 검사를 인사권을 행사해 교체하고, 특검을 틀어막았다면 더 큰 국민적 저항을 불러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지지하는 세력이 집권하면 "헌법 원칙 같은 거 지킨다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도자 같은 거 또 보고싶지 않다."라고 윤서인 씨가 말하는 대목에선 섬뜩함을 느낍니다. 자신들이 집권하면 지금 문재인 정부가 하듯이 인사권을 행사해 자신들을 수사하는 검찰을 무장해제시키고 "민주적으로 통제"하겠다고 다짐하는 장면은, 멀지 않은 미래에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일에 대한 불길한 예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조국 전 장관이나 청와대 관계자들의 혐의는 아직 재판에서 유죄인지 무죄인지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유죄인지 무죄인지, 그리고 검찰의 기소권 행사가 과도했는지 과도하지 않았는지 가려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청와대가 자신들을 수사하는 검찰 관계자들을 교체하고, 자신들을 수사하는 검찰총장을 압박하는 것은 "민주적 통제"가 아닙니다. "민주적 통제"라는 개념의 남용입니다. 


1987년 민주화 항쟁으로 탄생한 6공화국의 거의 모든 대통령이 재임 중에 아들이나 형제, 측근의 비리와 관련한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했지만, 그럼에도 이런 일을 벌이지 않은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권한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형사사법 제도의 공정성을 흔드는 일이고, 무엇보다 상식적인 도덕과 윤리 기준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제 말을 받아들이시기 어렵다면, 윤서인 씨의 글을 다시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윤서인 씨는 '우리 편'이 집권하면 '바로 지금처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일이 벌어지길 바라십니까? 그때 가서는 어떤 논리로 '윤서인 씨가 지지하는 대통령'이 '바로 지금처럼 하는 일'을 비판하겠습니까?


민주주의와 선거제도의 미덕 중 하나는 권력을 상대 편에게 평화적으로 이양하는 방식을 제도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선거는 점점 권력의 평화적 이양과 거리가 먼 것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 '사화(士禍)'가 제도화되는 느낌입니다.


섬뜩한 예감, 불길한 예언이 부디 현실화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아래는 윤서인 씨가 1월 23일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글 전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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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인
1월 23일 오전 11:02 ·
우리 욕만 할 게 아니라 한 번 잘 생각해보자.

솔직히 얘네들 너무 잘 하잖아? 권력은 이렇게 유지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하는 게 미개한 한반도에서는 그냥 정답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그러면 안되지"가 어딨음?

왜 안 되는데? 민주주의를 죽여서? 헌법을 훼손해서? 원칙을 어겨서? 아니 그게 뭔데? 그거 잘 지키면 뭐가 좋은데? 지금 나라가 왜 이 꼴이 났지?

난 이런 거 볼때마다 누구 생각이 나서 정말 속 터진다. 지금 억울하게 고초를 겪고 계셔서 말하기가 참 조심스럽지만 ㅠㅠ

도대체 왜 그 분은 그 자리에서, 그 많은 권력과 의석수를 가진채로 그렇게나 무기력했을까?

배신을 당해서? 애초에 배신할 놈들을 뽑은 게 누군데.

저놈들이 나쁜짓을 해서? 아니 그럴 줄 몰랐음? 국가를 전복시키고 싶은 것들이 뭔 짓인들 안 할까? 나도 알고있는 걸 왜 모른 건데?

영악하지 못해서? 리더가 영악해야지. 저 더러운 전쟁터에서 영악하지 못한 건 너무나 큰 잘못 아닌가.

리더는 본인이 억울해질 게 아니라 상대편을 억울하게 만들어야 하는 자리잖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상대편을 억울하게 만들지 못하면 저렇게 본인이 억울해지는 게 바로 리더라는 자리다.

이렇게 해서 이기면 되는데. 이게 권력인데.
리더는 이기라고 뽑는 건데 뻔뻔하게 이겼어야지. 군대를 동원하든 광장에 서든 촛불집회에 나가 돌이라도 맞든 뭐라도 해서 이겼어야지. 대통령 힘이 이렇게 무소불위라는 걸 어떻게 저놈들을 보면서 배우고 있노.

제발 이제는 이쪽에서도 이기는 지도자를 보고싶다. 민주주의 헌법 원칙 같은 거 지킨다고 속절없이 무너지는 지도자 같은 거 또 보고싶지 않다. 착한 거 질색. 품위는 카메라 앞에서나 지키고 뒤에서는 이렇게 개같이 싸우라고. 제발 좀 ㅅㅣ발 진짜.

근데 지금 자유한국당 하는 짓 보면 희망이 1도 없다. 심지어 이 와중에도 얼어죽을 중도 코스프레 착한척 품위는 개뿔 하아 인간은 왜 이리도 어리석을까. 어디까지 내려가야 정신을 차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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