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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찬종 기자 Feb 08. 2020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가짜뉴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오늘(6일) 서초동에 새로 마련한 법무부 대변인실 사무실 '의정관' 개관 행사에서 기자들을 만나서  "미국도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그때 (공소장이) 공개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관계자들의 선거개입 혐의 사건에 대한 공소장의 국회 제출을 거부한 법무부 조치의 배경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이야기였습니다.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도 "미국 법무부는 공소장 전문 홈페이지 게재한다는 보도있었는데 오전 확인한 바 의하면 배심재판 열리고, 배심 재판에서 공소사실 요지가 진술된 이후에야 법무부 홈페이지에 첨부해서 보도자료 내는 걸로 알고 있"다면서 "그런 내용 포함해서 (의정관이) 팩트 충실한 팩트풀니스한 공간 되도록 노력하겠"다라는 말까지 덧붙였습니다.


추미애 "미국도 공판 개시돼야 공소장 공개"…입장 고수 (뉴스1 / 2020년 2월 6일)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421&aid=0004447809

결론부터 말하자면, 두 사람의 이야기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뒤, 저는 곧바로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다시 들아가봤습니다. 미국 연방정부 법무부가 보도자료를 올려놓는 'Justce News'에서 가장 기소 직후 보도자료를 배포한 최근 사례를 살펴봤습니다. 


2019년 12월 20일에 배포한 "1,500만 달러 규모의 폰지 사기에 관여한 혐의로 이사회 의장 겸 매니징 파트였던 인물을 기소했습니다. (Former Chairman and Managing Partner Charged for Role In $15 Million Ponzi Scheme)"라는 보도자료가 눈에 띄더군요. 제목을 눌러서 본문을 확인해봤습니다.


https://www.justice.gov/opa/pr/former-chairman-and-managing-partner-charged-role-15-million-ponzi-scheme

첫 문장은 이랬습니다. 


"한 에너지 회사의 이사회 의장이자 매니징 파트너였던 캘리포니아에 사는 한 남성이 피해자가 약 50명에 이르고 피해금액이 1천 5백만 달러 이상인 '폰지 사기'로 알려진 사건에 관여한 혐의로 오늘 공개된 공소장에 의해 기소됐다. 


(A California man who was the chairman and managing partner of an energy company was charged in an indictment unsealed today for his alleged operation of a Ponzi scheme involving approximately 50 victims and more than $15 million.)"


이 보도자료 하단에는 공소장(indictment)을 누구나 직접 다운로드 할 수 있는 링크가 있었습니다. 공소장 PDF 파일을 받아보니 공소제기가 된 날짜가 2019년 12월 19일이더군요.


https://www.justice.gov/opa/press-release/file/1228631/download

정리해보면 미국의 연방검사(US attorney)가 2019년 12월 19일에 기소한 사건의 공소장이 바로 하루 뒤인 2019년 12월 20일에 공개된 것입니다. 어떤 분은 보도자료가 12월 20일에 나온 것이고, 공소장 다운로드 링크가 첨부된 것은 그 후의 일이 아니냐고 말씀도 하시는데, 12월 20일에 배포된 보도자료 첫 문장에 "오늘 공개된 공소장 (an indictment unsealed today)"라고 분명하게 적혀 있습니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미국도 1회 공판기일이 열리면 그때 (공소장이) 공개된다."라는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말이나 "확인한 바 의하면 배심재판 열리고, 배심 재판에서 공소사실 요지가 진술된 이후에야 법무부에 홈피 첨부해서 보도자료 내는 걸로 알고 있다."라는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이 이야기는 분명히 사실과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기초적인 사실관계 확인도 정확히 안 하고 한 나라의 법무부 장관과 법무실장이 대변인실 사무실을 새로 연다며 기자들을 불러모아놓고 '가짜뉴스'를 유포한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덧붙이겠습니다. 미국에서는 공소장을 연방법원의 결정에 의해 공개(unseal)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위의 사례 그리고 미국 법무부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많은 사례에서 보듯이 법원이 공소장을 신속하게 공개하는 경우는 매우 흔합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도 역시 우리나라 형사소송법에 따라 법원에서 공판이 열리면 검사가 의무적으로 공소장에 나와 있는 공소사실 등을 낭독해야 한다는 사실은 인정합니다. 그래서 공판 이후에는 공소장 공개를 검토해볼 수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런 조치 자체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이하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큽니다. 국회 증언감정법 4조에는 공무원이 국회에서 증언이나 서류 제출을 요구받은 경우에는 직무상 비밀에 속한다는 이유로 거부할 수 없고, 다만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거부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추 장관의 말처럼 몇 달 뒤에 공판에서 어차피 공개되는 자료를 '공개될 경우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자료'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판에서 공개될 자료라는 것을 알면서도 국회의 자료제출 요구를 거부한 것은 국회 증언감정법에 위반된다고 해석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이용구 법무부 법무실장의 '가짜뉴스'와 국회 증언감정법 위반 가능성에 대해서 살펴봤습니다. 그러나 사실 이렇게 치밀하게 반박할 일인가 하는 회의감이 듭니다. 참여정부 때인 2005년부터 15년 가까이 이어져왔던 일을 '하필이면 우리 편이 중대한 혐의로 기소됐을 때부터' 중단하는 것이 정당화하기 어려운 일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서 꼭 이렇게까지 설명해야 하는지 의문입니다.

[추가] 

위 보도자료에는 "도슨은 오늘 아침에 체포되었고 캘리포니아 중앙지방법원 샤시 H. 크월라마니 치안판사(Magistrate Judge) 앞에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했다. (Dodson was arrested this morning and made an initial appearance before U.S. Magistrate Judge Shashi H. Kewalramani of the Central District of California.)"라는 문장이 있습니다. 이를 두고 추미애 장관이 말한 것 같은 '1회 공판기일이 열린 후'라고 오해할 수 있을 것 같아 덧붙입니다. 미국 형사사법체계에서 치안판사(Magistrate Judge)가 주관하는 최초출석(initial appearance) 절차는 통상 체포된 피의자를 보석할지 계속 구금할지 기소 이전에 정하는 절차로서, 우리 형사사법체계에는 보석심문이나 영장심사에 해당합니다. 다만, 공소장이 제출되기도 이전에 진행되는 기소 전 절차라는 점에서 '1회 공판기일이 열린 뒤'에 해당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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