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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명 May 15. 2016

방콕 #6. 낯설게 하기

이 곳을 한국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익숙해지면 여유로워진다. 좋은 점이기도 하지만 한 편으로는 '낯설게 하기'가 어려워진다는 단점도 있다. 현재 있는 곳을 낯설게 느끼지 못하면 발견에 둔감해진다. 발견에 둔감해지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여행의 반대편에 위치하는 현상이다. 반복되는 일상이라도 낯설게 하기가 가능하다면 매일의 삶은 여행이 될 수 있다. 반면 어딘가로 떠난 상태라도 하루하루 반복적인 패턴에 익숙해진다면 여행은 일상이 되는 것이다. '편안한 쉼'은 있을지 모르나 작은 것 하나하나에서 무언가를 발견하는 경이로움은 사라질지도 모른다. 여행은 여러 가지로 정의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 기준에 이것은 여행이 아니다. '떠나 있음'의 의미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bangkok, thailand. 2015


방콕에서 다른 지역으로 갈 생각은 없다. 그러나 숙소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스며들었다. 머무는 사람들 거의 다 장기 여행자들인데, 하루의 대부분을 숙소에 머무는 모습을 봤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나로 하여금 이곳이 '편안한 쉼'이 있는 '집'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집'이란 '둥지'다.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여행 중이겠지만, 그런 상태로 머물면서 장기 여행 중이라는 것 자체가 모순이 아닐까 싶었다. 한 도시에 오래 머무는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머무는 총량의 상대값 중 숙소에 머무는 시간이 길다면 그들은 여행 중인가, 아니면 또 다른 집에 있는 것인가. 도시를 느끼는 것인가 또 다른 집을 느끼는 것인가.


bangkok, thailand. 2015


어쩌면 내가 다양한 방식의 여행에 익숙한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나에겐 그런 방식이 맞지 않다. 그래서 숙소를 옮겼다. 태국에 머무는 동안 다른 도시에 갈 생각은 별로 없지만, 숙소라도 옮겨야 할 것 같았다. 나까지도 이 곳을 집처럼 여기게 되고 싶지 않았다. 그들은 친절했고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그런 모습에 스며들기는 싫었다. 약간은 불안정한 상태로 적응될만하면 자리를 옮기는 것이 나에게는 더 어울린다. 최소한, 숙소라도 옮겨야 감각이 살아나는 것 같다. 이 시간들을 낯설게 만들지 않으면 둔감해질 것 같다. 여행까지 와서 그렇게 되는 내 모습을 상상하게 되는 것이 싫다. 그런 모습은 떠나오기 전에도 많이 봤다. 적당히 익숙하되 낯선 느낌을 잃고 싶지 않다. 둔감해지고 싶지 않다. 이 곳을 한국으로 만들고 싶지 않다. 


bangkok, thailand.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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