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닷없이 찾아와 시간을 훔쳐가는, 평생 따라다니는 강도 같은 존재
외로움에 대해 생각해본다.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고 해서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외로움은 언제나 있다. 다만 그것이 타인과 섞여 반응해야하는 것보다 쉽게 감당할 수 있는 일이기에 혼자가 편하고 좋은 것이다. 입버릇처럼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말을 하게 된 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그 말과 단독의 시간이 익숙해져 즐길 줄 알게 된 현재의 나를 알 뿐이다.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적잖이 귀찮기도 하지만, 망설여지는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상처 때문은 아니다. 나이 먹을수록 말 한마디 조심해야한다는 것을 느끼면서 편하게 이야기를 건네기도 어렵고, 리액션도 쉽진 않다. 그 밖의 모든 상호작용 중 내가 해야할 범위의 일들에서 가벼울 수 없다.
그러나 문득 '같이 있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런 생각은 보통 강도같이 찾아온다. 평화로운 하루를 보내고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러 와서 기다리는 시간, 노천 바에서 맥주 한잔 하는 시간, 쉬기 좋은 공원의 나무 그늘 아래 앉아있는 시간 등 결코 나쁘지 않은 순간들에 특히 더 그렇다. 좋은 공간에서 좋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머물러 있을 때 찾아오는 강도는 공간을 바꾸진 못하지만 시간을 바꾼다. 나는 시간을 살고 있는 것인가, 공간을 살고 있는 것인가.
집으로 돌아가서 샤워하고 잠자리에 누우면 강도에게 습격당한 잠시의 순간 탓에 모든 것을 잃은 느낌이다. 모든 것으로부터 톡 떨어져나온 상태가 된다. 그 때는 시간도 공간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럴 때의 나는 무엇인가.
힘들면 힘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왔다. 좀 쉬어가도 된다고 말해왔다. 그대로 있어도 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 모든 말들이 바닥에 깔려있는 먼지만도 못한 것이 된다. 외로움에게 모든 것을 털려버린 후에는. 외로움이란 무엇인가. 지속적이진 않지만 종종, 그리고 평생을 따라다니는 강도다. 순간 찾아와서 모든 것을 앗아간 후 아무것도 없는, 심지어 불빛 조차 없는 어느 모르는 길가에 나를 버려놓고 가는 강도다. 그 자체는 공허가 아니지만, 나를 공허로 던지는 강도다.
사람들은 그에게 당하는 것이 지겨워서 취미를 만들거나 연애를 하거나 사람들 사이에 섞이거나 결혼을 하는 등 갖은 예방책을 세워보지만 그 어떤 예방책도 그가 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가 오면, 또 다시 무기력하게 암흑의 길가에 버려진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혼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아이가 된 채로. 몇 살을 먹어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