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니 Mar 11. 2022

80여 년의 밤을 밝히는 여성들

밝은 밤(최은영)

요즘 뜨거운 감자인 젠더 갈등, 성인지 감수성은 꼭 알아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혐오로 뒤덮여버린 이 감자를 꺼내 껍질을 까는 일을 최은영 작가가 도와줄 예정이다.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사회적인 것이라 했다. 우린 『밝은 밤』화자의 인생을 들여다 봄으로써 지금 세상도 볼 수 있다. 문화지체 뭐 이런 건 용납할 수 없으니, 여기에 조금이나마 도움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짧은 감상문을 썼다. 제목을 먼저 살펴보자. 밝은 밤. 밝은 밤이라. 일단 마그리트 <빛의 제국>이 떠오른다. 백야를 뜻하는 걸까. 처음 제목을 접했을 때 든 생각이었다. 아니야 그럼 그냥 백야라고 했겠지. 왜 밝은 밤이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잘 모르지만 왠지 마음에 드는 제목이다. 네 마음이 컴컴한 밤이라도 거기엔 밝음이 있다는 뜻일까. 꺼진 불도 다시 보게 만드는 최은영 작가다. 마음속 토치를 꺼내 들고 밝은 밤을 읽어보자.




감상문


2가지 정체성 위주로 글을 썼다. ¹ 세대갈등을 겪는 딸 ² 사회의 불합리가 익숙한 여성


¹ 회사를 다니며 점점 여유가 사라지던 시기가 있었는데 그때 나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었다. 위험한 짐승은 시방 누굴 이해하고 자시고 할 겨를이 없다. 그런 내게 부모님과의 세대 갈등이 찾아왔으니 이건 뭐 난감한 상황이었다. '네네'하고 싶지도 않고 그렇다고 열변하고 싶지도 않고 그 모든 게 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말고는 하고 싶은 게 없었다. 갈등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니 내가 선택한 건 도피였다. 도망은 언제나 빠르고 편리하다.


『밝은 밤』에서 감탄한 부분은 4대에 걸친 엄마-딸 갈등을 풀어내는 방식이다. 4대에 걸친 갈등이란 말은 듣기만 해도 그 복잡함이 느껴지는데 여기엔 세대, 역사, 개인의 문제가 한 데 섞여 엉망진창 와르르가 되어 있다. 와르르 맨션의 기초는 아무래도 결혼과 가족이다. 『밝은 밤』의 화자는 평범한 결혼생활을 이어나가는 직장인이었다. 어느 날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아차리기 전까지 그랬다. 다른 여자 흔적을 달고 들어오는 남자와 한 침대를 쓸 수 없다며 희령에 내려왔을 때 화자의 기분은 최악이었다. 최악은 기분만이 아니라 정신상태, 몸상태, 집 상태, 인생 상태 모두에 해당했고 그건 화자가 위기에 처했음을 의미했다. 위기는 곧 기회라 그랬는데 사실 현실에서 위기는 위기인 경우가 많다. 오히려 한꺼번에 오는 경향이 있어서 엄마와의 관계에도 찾아왔다. 그 첫 시작점은 3대를 거슬러 올라가야 하겠지만 지금 당장의 원인은 '노 이해'에 있다 할 수 있다. NO 이해.



나는 엄마의 그 작은 기대마저도 충족시키지 못했다. 엄마를 철저히 실망시켰다. 엄마에게 인정받기를 기대하고 번번이 상처받기보다는 내 일에서 인정받고 친구들에게 지지를 받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머리로는 아는 일을 내 가슴은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자식은 엄마가 전시할 기념품이 아니야. 마음속으로는 그렇게 소리치면서도, 엄마의 바람이 단지 사람들에게 딸을 전시한다고 싶은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아팠다.
밝은 밤 111p, 최은영


예전처럼 며칠씩 서로 말도 붙이지 않을 정도로 신경전을 벌일 만한 일이 우리에게는 더 이상 없었다. 큰 불이 나기 전에 꺼버렸고, 상대에게 작은 불씨를 던졌다는 것에 문득 무안해지기도 하는 사이가 된 것이었다. 그건 우리가 그만큼 친밀한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서로에게 큰 상처를 입혔다가 돌이킬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우리는 눈빛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우리는 더 이상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되었다. 정말 끝이 날까 봐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가. 우리는 싱거운 이야기를 나누면서 산을 내려왔다.
밝은 밤 112p, 최은영



화자의 모친은 정상가족을 열망했다. 가부장적인 남편 비위를 맞추며 가정을 지켰으니 원하는 바를 이뤘다 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가정, 평범한 삶을 원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반면 화자의 이혼은 제도권을 박차고 나가는 일이었다. 남 부러울 것 없는 딸 인생에 오점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정상가족을 이루어 사는 것. 제도권에 머물며 그 일원이 되는 것. 엄마는 딸이 시민적 무관심을 누리길 바랐다. 하지만 그 결과로 얻은 건 '끝까지 싸울 수 없는 사이'였다. 끝까지 싸우다 선을 넘어버리면 안 되는 사이. 엄마와 딸 사이에 필요 이상 거리가 벌어졌다.



화자는 30대 사회인이지만 그 안엔 어린아이가 있다. 부모로부터 지지받고 싶어 하는 아이다. 우린 사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많이 들어왔다. 유년 시절에 결핍된 무엇, 성장기에 채워지지 않은 무엇, 이 무엇들이 쌓여 잘못된 구석이 생겼다고. 우리는 모두 뭔가 잘못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이 모여 '네가 잘못됐어' '아니야 네가 잘못이야'를 외치는 상황은 가슴이 답답하다. 다들 자신의 상처를 들이밀며 상대를 이해하지 않는 시방 위험한 짐승이기 때문이다. 화자의 이혼은 평소 말 한마디 나누지 않던 직장 동료도 입을 열게 하는 아주 구체적인 상처였지만 부모는 그 상처에 소금을 뿌린다.



엄마의 불우한 유년시절을 생각해보자. 체념하는 게 생존 방식이던 그 시절 평범한 삶을 바랐던 젊은 엄마 모습. 엄마에게 최선의 선택지였던 결혼이 화자에겐 최악의 상황이라 유감스럽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잖아, 내가 이렇게 상처받았을 때 품어줘야 하는 거잖아.' 쏘아붙이는 상상을 한다. '남자 도박 안 하고 여자 안 때리면 된다는 거, 그거 사람 취급 안 하는 거야. 이서방이 바람피운 거는 내가 뻣뻣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냥 그게 가능했기 때문이라고. 어디서 고개를 똑바로 드냐니. 고개는 원래 똑바로 드는 거야' 속은 시원하지만 찝찝한 뒷맛이 남는다. 이것도 저것도 최선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노 이해' 선언을 철회할 방법은 없나. 적어도 철회하고 싶은 마음이 들 수는 없을까. 이런 생각에 도달한 사람이라면 『밝은 밤』이 훌륭한 처방전이 될 거라 생각한다.



² 『밝은 밤』은 액자식 소설이다. 액자 밖의 배경은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고 액자 안은 한국 전쟁 발발과 그 이후다. 안의 이야기는 할머니 입을 통해 전개되기 때문에 당시 여성들의 고통스러운 현실이 잘 녹아있다.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성역할과 차별적인 발언들. 70년 전 차별이 지금 우리 마음에 와닿는 이유가 단순히 연민 때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어느 날 미선이가 전화해서 말하더라. 결혼할 사람이 생겼다고. 너희 아빠를 데리고 희령에 왔지. 난 이서방이 별로 마음에 차지 않았어. 하지만 미선이가 좋다는데 내가 뭐라고 하겠어. 그런데 하룻밤 자고 가면서 이서방이 그러는 거야. 미선이 아버지 이야기는 들어 알고 있다면서 자기가 부모님을 잘 설득하겠다는 말이었지. '그럼 자네 집에서는 미선이를 아직 허락하지 않은 건가?' 내가 물었더니 고개를 숙이더구나. 이서방을 앞에 두고 이야기했어. 우리 미선이가 환영받지 못할 결혼 하는 거 원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소용없었지. 결혼은 그대로 진행됐어. 상견례장에서 난 사돈 되는 사람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함을 표해야 했다. 부족한 저희 딸을 받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밝은 밤 263p, 최은영



여자를 자산으로 취급하던 시절에 관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레비스트로스가 쓴 책으로 기억하는데 당시 묘한 기분을 느끼며 책을 덮었다. 웃긴 건 친구들 결혼식장에서도 비슷한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버지 손을 잡고 등장한 딸이 남편의 손으로 건너가는 장면. 이때 나는 항상 묘한 기분을 느낀다. 소설 내용으로 돌아가자. 미선(화자의 모친)이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할머니(미선의 모친) 자신의 마음에 차지 않는 혼인임에도 사돈에게 감사 인사를 한다. 오래전 도망간 미선이 부친 때문에 그래야 했다. 할머니가 미선을 홀로 키워낸 건 대단한 일이었지만 동시에 누구 하나 신경 쓰지 않는 일이기도 했다. 그땐 남편이 도망가면 아내가 손가락질받는 시대였으니까. 그래 시대가 그랬지라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그건 다 옛날 일이고 요즘은 다르다고. 하지만 막상 이런 일에 맞닥뜨리면 왜 정상가족이 아닌지 그 이유가 궁금해진다. 이혼인가, 사별인가. 이혼이라면 이유가 무엇인가, 바람인가 폭력인가. 예나 지금이나 색안경 쓰기 좋은 환경이란 점엔 변함이 없다.



대놓고 할머니를 비난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자가 감쪽같이 속였을 리는 없다면서, 할머니도 분명 그에게 조강지처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결혼했으리라는 것이었다. '여자도 잘한 건 없다.' 그것이 사람들의 중론이라는 것을 할머니는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늘 그렇게 말했으니까. 남편이 아내를 때려도 여자도 잘한 것 없다고 했고, 남편이 바람을 피워도 여자도 잘한 것 없다고 했으니까. 남자가 그런 행동을 하도록 여자가 부추겼으리라는 생각이 그런 말의 핵심이었다.
밝은 밤 207p, 최은영



할머니(미선의 모친)는 사기 결혼을 당했다. 할머니는 사기 사건의 피해자인데 세간 사람들은 여자도 잘한 건 없다고 한다. 이런 논리는 성폭력 사건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여자도 잘한 건 없다'는 말로 요약되는 '네가 흘린 거 아니야' '남자 경험도 많은 게'라는 반응이 그것이다. 이런 말엔 피해자인 여성의 몫만 남아있다. 희롱이든 추행이든 폭행이든 그 행위는 여성의  태도와 관련이 없는데도 말이다. 그건 마치 남편이 아내의 태도를 미루어 보아 기혼 사실을 숨겨도 괜찮겠다, 문제없겠다고 판단했다 한들 자신이 기혼자임을 숨겼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것과 같다. 가해자의 가해 사실은 피해자의 태도와 상관없다는 뜻이다. 약혼녀에게 자신의 기혼 사실을 숨겼는가,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 위력을 행사했는가. 핵심은 가해자 행위에 있다.



술에 취했다는 건 무슨 짓을 하든 허락한다는 선언이 아니다. 하지만 술 취한 여성에게 발생한 성범죄는 '조심성 없이 쯧쯧'이라는 말이 붙는다. 반면 말을 보태지 않는 사람들은 현실적으로 생각하라고 한다. 물론 가해자가 잘못한 일이지만 여자 쪽에서 조심하고 예방해야 한다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을 제한하는 이 '조언'은 남성 중심사회가 건재하다는 방증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우리는 알고 있다는 거다. 공중화장실 문을 열며 강남역 살인사건을 떠올리는 여성과, 밤늦게 귀가하는 여성이 탄 택시 번호판을 찍는 남성 모두 같은 상황을 상상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밝은 밤을 통해 꺼진 불씨가 되살아났다. 소설 때문에 울어보는 것도 오랜만, 뜨끈한 기분이 드는 것도 오랜만이다. 앞으로 내게 있어 최은영 작가는 토치다.






작가의 이전글 관심 자본,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