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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은 Aug 08. 2024

다시 시작

지역아동센터 2022


처음으로 찾아간 지역아동센터는 돌봄교실과 사뭇 달랐다. 주택가에 있었고, 센터 안은 가정집처럼 칸칸이 방이 나뉘어 있었다.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인사하자 안에 있던 선생님이 나를 보고 인사했다.

“안녕~ 어떻게 왔어?”

“멘토링 프로그램 봉사자로 왔습니다.”

내 말에 선생님이 민망한 듯 웃었다. 
“난 또, 여기 다니는 애들 중 한 명인 줄 알았네.”


대다수가 초등 저학년, 가장 나이 많은 5학년이 두 명뿐이었던 초등 돌봄교실과 달리 지역아동센터에는 교복 입은 아이들이 있었다. 센터마다 다 다르지만, 내가 다니게 된 센터는 중고등 청소년 반을 함께 운영하고 있었다. 오후 이른 시간까지는 초등반이 주로 있고, 저녁을 먹고 나서는 중고등반의 학습 지도를 하는 방식이었다. 

나는 초등 반의 학습 지도를 맡게 되었다. 시간 여건 상 중고등부를 맡는 게 더 좋았겠지만, 초등 저학년 수학도 간신히 가르치는 내가 중학생을 공부시킬 엄두는 나지 않았다.


선생님의 교탁이 아이들을 다 둘러볼 수 있는 널찍한 돌봄교실과 달리 아동센터는 집처럼 편안한 분위기다. 아이들이 아주 많은 집에 놀러온 것 같다. 낙서가 여기저기 있고, 벽지는 찢어졌으며 방석은 얼룩져있다. 아이들은 칸칸이 나뉜 방을 잘도 뛰어다니면서 논다. 

사실 센터에서 뛰면 안 된다. 새로운 선생님이 온 부산스러움을 틈 타 장난치던 아이들이 센터장의 호통에야 멈췄다. 내가 가자마자 제일 먼저 한 일도 뛰는 아이를 살살 말리는 것이었다.

“뛰면 안 돼.”

내 입에서 저절로 나오는 지시문. 내가 다시 돌봄을 빙자한 통제의 세계로 돌아왔구나! 


돌봄교실을 그만둔 뒤, 나는 이사를 했다. 장애인 활동지원사로 일을 시작했다. 지역아동센터에서 1년 간 학습지도를 하면 몇 백만원의 장학금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공들여 면접을 봤고, 인근 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다.

돌봄교실에서 일했다고 해서 이 곳에서 일하는 게 더 편하고 익숙할까? 아이들은 늘 그렇듯 활기찼지만 다  같은 사람이 없듯이 여기 아이들은 내가 만난 아이들과 또 다를 것이다. 이름도 모르고, 낯설기만 한 새로운 작은 사람들. 


한 아이가 내게 자기 이름을 말해주려는 사이 센터장님이 나를 불렀다. 간단한 자기소개와 센터 소개를 받았다. 

지역아동센터는 방과 후, 저녁 시간 등 돌봄이 필요한 아동이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만들어진 아동돌봄기관이다. 학습 지도, 체험 활동, 급식 등 여러 활동을 제공한다. 돌봄교실이 맞벌이 부부 위주 등 선별적으로 입소 아동을 받는만큼, 지역아동센터도 저소득층, 한부모, 다문화 등 취약 가정을 우선적으로 받는다.


“제가 이 일을 이십 년째 하는데, 우리 애들은 선생님들같은 대학생 봉사자랑 멘토링하는 사람들이 다 키운 거예요. 종사자들은 서류 처리하느라 바빠서 사무실에서 나오지도 못하는데, 누가 애들이랑 놀아주고 공부 가르치고 신경쓰고 하겠어요? 우리는 행정만 한 거고 키우는 건 젊은 청년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다 키워준 거지.”


확실히 어른은 이 센터장님의 원장실과 사무실에 세 분 계신다. 아이들의 공간에는 공익 근무 요원과 대학생 봉사자들이 있다. 돌봄 노동이라는 건 돌보는 일이 핵심 아니던가. 실무자가 행정과 서류에 치이는 동안 정작 아이들을 지켜보고 가르치는 핵심은 뜨내기 젊은이들로 굴러간다는 말일까. 사회복지사는 돌봄노동자일까 행정직일까…나는 의자에 허리쿠션을 끼우고 모니터만 들여다보고 있는 담당자를 보며 생각했다.


“그러니까 오래 하셔야 해요. 아이들에게 중요한 건 꾸준히, 안정적으로 계속 와 주는 거예요. 한 두달 하고 사라지면 또 아이들에게 좋지 않아요. 잘 부탁해요.” 


어딜 가나 아이들을 위해 오래 해 달라고 부탁한다. 아마 이게 강조되는 건 그만큼 교체되는 인원이 많기 때문이겠지. 그 많은 교체 인원들 중 얼마가 아이들이 싫어져서 떠났을까? 또 얼마가 계약 기간과 소속과 임금과 제도의 벽에 막혀 원하지 않게 나왔을까? 누군가는 그냥 세상에는 아이를 키우는 일보다 더 멋지고 중요한 일이 많기 때문에 그만 나오기로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이들에게 오래 일하는 선생님들이 필요한 게 사실이지만, 아이들의 필요는 늘 후순위로 밀리는 세상이라는 것도 사실이다. 


나 역시 일 년의 기간이 끝나고 빨리 돈이 들어오기만 기다린다. 


“제 이름은 준휘에요.”


아까 이름을 미처 못 들은 아이가 내게 와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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